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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18년 11월 독일 제국이 붕괴되면서 제1차 세계 대전이 종전되고 바이마르 공화국이 탄생하는 계기가 된 혁명.2. 경과
1918년 여름이 되자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의 패전이 거의 확실해졌고 10월 초에 막시밀리안 폰 바덴 수상이 이끄는 내각이 성립되어 휴전 교섭을 진행했다. 이런 상황에서 10월 말에 해군 지도부가 실패할 것이 분명한 공격 명령을 내렸는데 이에 수병들은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구하기로 하고 11월 3일 킬 항구에서 항명을 일으켰다.이 항명을 기점으로 수병들에 이어 킬에 있던 노동자들도 호응해 항명에 가담하면서 노동자, 병사 소비에트가 구성되었고 소비에트가 킬의 실권을 장악했다. 그리고 사건은 독일 전역으로 급속히 확산하여 곳곳에서 병사와 수병, 노동자들이 만든 급진적인 소비에트가 기존의 지방정부를 대체했다.
베를린도 혁명의 열기에 휩싸였는데 이때 사회민주당은 무장 반란에 반대했었다. 결국 11월 9일 황제 빌헬름 2세가 네덜란드로 망명하면서 제정이 무너졌고 바로 그날 공화국이 선포되었다.
공화국 선포 직후 총리가 된 프리드리히 에베르트는 빌헬름 그뢰너 장군과 협약을 맺었는데 그 내용은 '공화국을 온건한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동시에 과격한 소비에트 운동을 억압한다'는 것이었다.
혁명 직후 로자 룩셈부르크를 비롯한 과격파들은 에베르트의 온건 노선에 반발해 독립사민당을 탈당하고 독일 공산당(KPD)을 창당했으며 이듬해 1919년 1월에 폭동을 일으켰다. 그러나 온건파인 프리드리히 에베르트는 의회민주주의를 주창한 인물로, 내전 발발과 과격파 세력의 대두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구체제 인사들을 포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사민당의 우파 인사인 국방장관 구스타프 노스케가 조직한 민병대인 자유군단(Freikorps)에 의해 스파르타쿠스 연맹을 비롯한 독일 공산당 세력은 진압당했고 로자 룩셈부르크는 민병대에 체포되어 재판 없이 처형당했으며[1] 함께 체포된 카를 리프크네히트도 처형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