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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3 13:46:43

도라 도라 도라(영화)

도라! 도라! 도라! (1970)
Tora! Tora! Tora!
파일:attachment/도라 도라 도라/tora_tora_tora_ver3.jpg
장르 전쟁, 액션
감독 리처드 플라이셔(미국 장면),
후카사쿠 킨지, 마스다 토시오(일본 장면)
각본 래리 포레스터(Larry Forrester)(미국 장면),
오구니 히데오(小国英雄), 기쿠시마 류조(菊島隆三)(일본 장면)
음악 제리 골드스미스
제작비 미화 2500만 달러
흥행수입 미화 3700만 달러
개봉일 1970년 9월 23일
상영 시간 144분
상영 등급 12세 관람가

1. 개요2. 예고편3. 제작4. 등장인물
4.1. 미국4.2. 일본
5. 명대사6. 흥행7. 평가8. 한국에서9. 이야깃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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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태평양 전쟁의 시작을 알린 진주만 공습을 소재로 한 1970년 작 미국·일본 합작 영화. 제작비로 2,500만 달러가 투입된 초대작 전쟁 영화다. 제목 도라 도라 도라는 진주만 공습 당시 일본군의 공격 개시 암호다. 1971년 아카데미 시각효과상을 수상했다. 특이하게도, 미국 장면과 일본 장면을 각각 미국과 일본의 감독과 각본가를 따로 기용해서 만든 진정한 의미의 합작 영화다. 미국 장면의 감독은 리처드 플라이셔, 일본 장면은 마스다 토시오, 후카사쿠 킨지가 감독했다. 때문에 미국 영화이면서도 과장이나 왜곡 없이 일본 내의 묘사가 상당히 정확하다.

개봉 당시에는 미국 평론가들로부터 지루하다는 악평을 들으면서 저조한 흥행 실적을 냈다. 대신 같은 해 개봉한 일본에서는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이후 영화의 다큐멘터리같은 접근 방식이 차차 재평가를 받으면서, 오늘날에는 진주만 공격을 가장 사실적으로 그려낸 영화라는 호평을 받고 있다.

이 영화의 일본어 대사에 삽입된 영어 자막들은 원문에 비해 생략된 부분이 상당히 많다. 영화를 제대로 감상하려면 영어 자막을 중역한 자막보다는 일본어를 직역한 자막을 구해서 감상하는 것이 낫다.
파일:toratoratora_japan_ad.jpg
일본판 극장 개봉 신문광고

2. 예고편


3. 제작

충실한 고증을 바탕으로 제작되어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높은 재현도를 보여준다. 진주만 기습과 관련된 일화들 중에선 일본 해군의 천심도용 함재어뢰 개조 및 조달 과정만 빠졌다. 그 이외에는 사소한 이벤트 하나하나까지 다 살렸다.

전투기도 일본미국기를 막론하고 당시 사용된 기종 중 비행 가능한 모든 기체들을 총동원했으며, A6M을 비롯한 일본기들은 레플리카에 가까운 T-6이나 BT-13 연습기의 개조 기체이기는 하지만 실제 해당 기종의 생산라인 기술자까지 고용해가며 거의 실물에 가깝게 개조한 끝에 비행 특성마저 실기를 따라갈 정도로 재현하는 등 집요할 정도의 고증이 이뤄졌다.

게다가 촬영 당시에는 촬영장을 방문한 진주만 참전 용사들이 "그때보다 더 시끄러운 것 같다"는 말까지 했을 정도로 공을 들였다. 비행기 조종사도 곡예비행 전문 비행사를 대규모로 고용해 일본식 공중전 기술까지 가르친 후 촬영한 덕분에 실제 일본 조종사들이나 하는 수준의 화려한 곡예 비행을 펼쳐 보여 어마어마한 박력의 공중전 장면을 재현했다.

지상 공격 장면도 멋지지만 P-40 워호크와 A6M 제로센의 공중전 장면에 이르면 정말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이 공중전 장면은 생존자 인터뷰에 근거해 거의 모든 시퀀스를 완벽하게 재현한 것으로 유명하다. 어떤 특정한 공중전 장면의 재현은 이 장면이 사실상 세계 최초다. 이후에도 이런 시도가 이뤄진 적은 없으며, 다만 CG 기술이 발달하면서 이 소재만 다루는 다큐멘터리가 제작되고는 있다. 대표적인게 실전최강 전투기 대전.

미니어처 및 세트 사용 역시 매우 수준급인데, 일본에서는 전함 나가토의 1:1 함 전체 세트와 항공모함 아카기의 비행 갑판 세트를 제작했으며, 미국에서도 영화 종반부의 미군측 주요 기함 중 하나인 네바다급 전함의 풀세트가 만들어졌다. 그 밖에도 진주만 기습에 참전한 일본 함대 대부분의 미니어처를 제작했다. 이 모형 군함들은 원래 골프 카트 엔진으로 움직이게 되어 있었는데, 바다(실은 수조)가 평온할 때는 괜찮았지만 일본 함대가 폭풍 속을 돌파하는 장면을 찍을 때는 출력이 부족해 배가 앞으로 나가지를 못했다. 그래서 유선으로 전력을 공급받는 대형 모터로 바꿔 촬영했다. 해상에서의 함재기 발함 후 편대비행 장면 재현에는 미 해군이 당시 보관한 2차대전형 에식스급 항공모함인 CV-16 렉싱턴이 일본 항공모함 아카기로 등장했다. 렉싱턴은 훗날 영화 진주만(2001)에도 사용되었다. 사실은 이 영화에 쓰인 거의 모든 세트가 진주만(2001)에 쓰였다. 여담으로 미드웨이(1976년 영화)에선 혼자서 요크타운, 엔터프라이즈 역할을 소화했다. 다만 아카기의 함교가 왼쪽에 있는 것은 렉싱턴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그냥 촬영해야 했다. 진주만(2001)에서는 아주 간단하게 해결했는데, 바로 렉싱턴을 후진시킨 것이다. 같은 방법으로 함교가 왼쪽에 있는 히류를 맡은 인트레피트도 함께 후진해야 했다.

이야기 진행과 인물들의 움직임 또한 가능한 실제 역사를 반영했다. 일본에서는 제독 야마모토 이소로쿠의 연합함대 사령관 취임식을 통해 보여주는 해군과 육군의 해묵은 앙금, 지나친 자신감으로 침략 전쟁을 결의하는 정계와 군부의 수뇌들, 야마모토 제독의 경고에 애매하게 답하는 일본 총리 고노에 후미마로, 작전을 실행할 항공함대 사령관들과 참모들 사이의 반목 등이 그려진다. 미국에서는 해군 소령 앨빈 크레머와 육군 대령 루퍼스 브레튼이 협력하여 일본의 공격 개시 날짜를 추리하는 과정, 자신의 판단을 높으신 분들에게 전하려는 브레튼의 고군분투, 해군 작전부장(참모총장) 대장 해럴드 스타크의 결정적인 실수, 함대 사령관 대장 허즈밴드 킴멜과 육군 사령관 중장 월터 쇼트의 판단 착오, 레이더에 포착된 적기를 그냥 넘겨버리는 통신 사관, 뒤늦은 최후 통첩에 국무장관 코델 헐이 분노하는 모습 등이 역사에 기록된 그대로 등장한다. 현장에서 떨어져 있으면서도 브레튼의 보고를 그냥 흘려버리지 않는 육군 참모총장 대장 조지 마셜의 면모나, 전쟁 중 화제가 된 중장 윌리엄 홀시의 싸움꾼 기질도 어김없이 묘사된다.

원래 일본 장면의 감독은 구로사와 아키라가 맡았고 초기 각본에도 관여했지만, 제작사에 실망해서 기행을 벌이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해고되었다.

4. 등장인물

4.1. 미국

4.2. 일본

5. 명대사

"차라리 내가 이 총알에 맞는 편이 낫겠군."
일본의 진주만 공습이 한창 진행되던 중, 본부 유리창을 뚫고 맞은 기관총탄을 보면서. 당시 허즈번드 킴멜이 실제로 한 발언이다.
"확증이 필요하다고 하셨습니까, 대령님? 저기 있습니다! 증거가 저기 있으니까 직접 눈으로 확인하십쇼!"
카민스키 대위. 공습 직전 USS 워드가 진주만 인근 해역에 침투한 일본 잠수정을 격침시켰다는 보고를 전하고 경계태세 격상을 건의한 기지 본부 행정관 카민스키 대위가, "확증이 필요해. 알겠나? 증거를 가져오란 말이야, 증거를."이라며 묵살한 직속 상관 얼 대령이 행정실에 도착하자 눈을 부릅뜨고 한 말이다.
"50년이 넘는 공직생활 동안, 이처럼 거짓과 왜곡으로 가득찬 문서는 처음 봅니다. 도를 넘은 정도가 너무나 터무니 없어서 지구상에 이런 정부가 있다는 걸 믿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코델 헐이 일본이 전달한 대미 최후통첩 문서를 읽고서. 이 시점에 일본은 이미 진주만을 공습하고 있었다.
"많은 일본인들이 미국에 대해서 환상을 품고 있다. 개인주의와 향략에 찌들고, 겉보기에만 그럴싸한 나약한 국가이라고 말이다. 터무니없는 착각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일 전쟁을 하게 된다면, 미국은 일본이 맞닥뜨린 가장 강력한 적이 될 것이라는 것을 명심하라! 이것은 경계를 풀지 말라는 충고가 아니다. 이 내가,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한 사실이다."
야마모토 이소로쿠가 미국을 과소평가하는 휘하 장교들에게 하는 말이다.
"이것은 잠자는 거인을 깨워 그 분노를 일으켰을 뿐이다."
영화 종반 진주만 공습의 성공으로 일본 해군이 축제 분위기에 싸여있을 때 야마모토 이소로쿠가 한 말. 이는 영화 제작시 그의 일기장에서 발췌한 발언이라고 하는데 교차검증이 되지 않아 정확하다고 보긴 어렵다. 어쨌든 이후로도 진주만 공습을 다룬 작품에서는 이소로쿠가 한번쯤 하는 대사가 되었다.

6. 흥행

당시 한창 기세등등하던 시절의 미국인들에게는 자국이 완벽하게 박살나는 과정을 담은 이 영화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듯 하다. 1970년이면 전해의 아폴로 11호 달 착륙을 계기로 미국의 자부심이 하늘을 찌르던 시절이다. 또한 베트남 전쟁과 반전 운동의 여파로 전쟁 혐오증이 커져서 전쟁 영화에 호의적인 분위기는 아니었다.

결국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들인 제작비와 미일합작에 쏟은 공에 비해 흥행수입은 미국 내 2,950만 달러에 그쳤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흥행수입 1억 9천만 엔으로 꽤 히트를 쳤다.참조 이후 2차 매체 시장에서 수익을 거두어 손익 분기는 넘겼다.

7. 평가

비록 흥행에서는 별 재미를 보지 못했지만 훗날에 와서야 재조명을 받은 비운의 명작이라 할 수 있다. 2001년에 만들어진 마이클 베이 감독의 진주만은 이 영화와 비교해서 시각효과를 제외한 모든 면에서 퇴보했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상대적으로 본작의 평가가 더욱 올라갔다.

개봉 당시에는 전쟁 스펙터클은 볼만 하지만, 내용이 너무 지루하다는 평이 다수였다. 대표적으로 로저 이버트는 "가장 생기 없고 따분한 블록버스터 중 하나(one of the deadest, dullest blockbusters ever made)"라고 비판했다(#).

개봉 했을 때는 외면 당한 다큐멘터리 같은 사실 묘사와, 인간 군상의 드라마보다 진주만 공격이라는 큰 사건을 그리는 데에 집중하는 방식은 이후 차차 재평가를 받으면서 영화의 평가도 올라갔다. 주요 관련 인물들과 전투 장면들을 뛰어난 재현도로 구현해서, 밀리터리 팬들이라면 감상할 가치가 있는 수작이다.

베트남전을 통해서 돈독해진 미일관계 때문에 나름대로 공정한 시각으로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는 시각도 있다. 60년대까지는 태평양 전쟁의 참전용사들이 중장년층을 이루던 시기라 일본에 대한 적대감이 강했다. 그러면서도 매카시즘이 극에 달한 그 시절 반공의 동반자인 일본을 까는 영화를 만들 수도 없었다. 이래도 문제 저래도 문제이니 아예 언급을 피할 수 밖에 없다.

전쟁 당시 일본과 미국의 모습을 각 해당 국가의 제작진들이 각본, 감독을 맡아 따로 만든다는, 그 때나 지금이나 보기 드문 시도를 했다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21세기 들어 영화계의 논란의 핵이 된 소위 "정치적 올바름" 문제에 대한 원천적인 해법을 반세기 전에 이미 제시한 셈이다.

미국 장면들의 각본을 맡은 래리 포레스터는 주로 TV 에피소드들을 쓰던 인물로 영화 쪽 경력은 거의 없지만, 일본 장면의 각본을 쓴 오구니 히데오와 기쿠시마 류조는 일본 영화계의 거물급 각본가로 명성이 높은 인물들이다. 일본 영화계의 거장인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작품으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7인의 사무라이(오구니 히데오)와 거미집의 성(기쿠시마 류조), 숨은 요새의 세 악인(오구니, 기쿠시마) 등이 이들의 대표작이다. 일본의 유명 감독과 각본가들이 참여한 덕분에 본작의 일본 장면들은 미국인들이 그리는 일본인의 캐리커처 이미지가 아닌,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면서도 생동감 있는 인물들을 보여준다. 이런 장점은 21세기에 미국에서 만들어진 태평양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들과 비교하면 더욱 뚜렷해진다.

8. 한국에서

한국에서는 1971년에 개봉하여 서울 관객 17만 3천여명으로 외화 흥행 5위라는 상당한 성적을 거둬들였다. 당시 매일경제신문 기사에 의하면, 왜색이 있어 여러 말이 있었다고 보도되었다지만, 아무튼 무사히 개봉했다. 지상파 방영으로는 1980년 11월 22일 TBC에서 더빙해 주말극장이라는 코너로 방영한 것이 처음이다. VHS 비디오로는 1992년 5월에 대우비디오에서 상하로 나눠 출시했으며, MBC에서 더빙해 1993년 광복절 오후 1시 35분에 특선영화로 방영했으며 1996년 8월 23일 SBS 일요특선에서 재더빙하여 방영했다.

9. 이야깃거리

진주만 공습 씬에서 활주로를 벗어난 비행기를 피해 사람들이 허겁지겁 도망가는 씬은 연출이 아니라 실제 사고다. 원래 비행기가 직선으로 활주로를 달려야 하는데 옆으로 이탈하면서 엑스트라들을 덮친 것. 워낙 리얼해서 감독이 빼지 않고 넣었다고 한다.

제작비 2,500만 달러가 어느 정도 규모인지 비교하자면, 같은 해에 나온 007 다이아몬드는 영원히의 제작비가 700만 달러, 1년 전에 제작한 당대 최대 제작비의 전쟁 영화로 유명한 공군 대전략이 1,200만 달러, 7년 뒤의 초대작 전쟁 영화 머나먼 다리도 제작비가 2,200만 달러다. 1970년 이후 달러 가치의 상승 수준을 생각하면, 이 영화보다 제작비가 많이 들어간 최초의 전쟁 영화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된다. 2014년 기준 인플레이션을 반영해 계산하면 제작비가 무려 1억 4,685만 달러에 달한다.

상영 시간은 블루레이에 수록된 일본 개봉판 기준 2시간 28분으로 그리 긴 편은 아니지만 고전 에픽물처럼 전/후반으로 나눠지는 구성 및 전반부의 지루한 전개로 인해 굉장히 길게 느껴진다. 진주만 공습보다도 그 전의 지리한 외교 과정 및 전쟁 준비 과정이 더 길다. 리얼리티는 뛰어난 편이지만, 전투 씬을 기대하고 본다면 막상 전투 씬엔 졸기 십상이다.

이 작품이 개봉한지 6년 후인 1976년, 유니버설 영화사에서 미드웨이 해전을 중심으로 자국을 띄워주고 애절한 연애 드라마도 곁들인 영화 미드웨이를 도라 도라 도라 제작비의 절반 수준으로 만들어 제작비 4배에 달하는 흥행 수익을 거둔다. 미국 독립 200주년 기념 타이틀을 달고 개봉했는데 <도라 도라 도라>에 나오는 진주만 공습 장면, 1960년대 일본 전쟁 영화 '연합 함대-야마모토 이소로쿠', '태평양의 폭풍'의 전투 장면 등 1944년 당시의 필름에 신규 촬영의 드라마 파트를 짜깁기해 만든 엽기적인 작품이다. 조금 허접하지만 1980년대 말에 제작한 '전쟁과 추억'의 미드웨이 부분이 차라리 이 영화보다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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