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ffffff><colcolor=#800080> 더티 댄싱 (1987) Dirty Dancing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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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 드라마, 로맨스 |
감독 | 에밀 아돌리노 |
각본 | 엘리노 베르그슈타인 |
제작 | 린다 고트립 |
기획 | 미첼 캐놀드 스티븐 루터 |
출연 | 패트릭 스웨이지 제니퍼 그레이 외 |
촬영 | 제프 저르 |
편집 | 크리스 레븐존 빌리 웨버 |
음악 | 존 모리스 |
미술 | 데이비드 채프먼 마크 헥 스테판 J. 라인위버 클레이 A. 그리피스 |
의상 | 힐러리 로젠펠드 |
분장 | 램지 |
제작사 | 그레이트 아메리칸 필름 리미티드 파트너쉽 |
수입사 | 즐거운 시네마[재개봉] |
배급사 | 베스트론 픽처스 즐거운 시네마[재개봉] |
개봉일 | 1987년 8월 21일 1988년 1월 1일 2007년 11월 23일[재개봉] |
화면비 | |
상영 시간 | 100분 (1시간 40분) |
제작비 | 450만 달러 |
월드 박스오피스 | $214,577,242 |
북미 박스오피스 | $64,577,242 |
대한민국 총 관객수 | 157,725명 (서울 관객수) |
스트리밍 | | |
상영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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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에밀 아돌리노 연출[4], 패트릭 스웨이지, 제니퍼 그레이[5][6] 주연의 로맨스 영화로, 춤과 음악을 통해 꽃피는 두 남녀의 고난과 사랑을 그렸다.시기적으로는 1963년을 배경으로 하여 당시 기준으로는 레트로 물이라고 할 수 있다.
2. 시놉시스
1963년 베이비(제니퍼 그레이)라는 애칭의 프란시스는 의사인 아버지 제이크(제리 오바하)와 어머니 마조리, 언니 리사와 함께 켈러만 산장으로 피서를 간다. 같은 또래의 젊은이들이 많이 있는 그곳에서는 저녁이면 댄스 파티를 즐긴다. 그러다 베이비는 댄스 교사 자니(패트릭 스웨이즈)와 그의 파트너인 페니(신시아 로즈)가 추는 춤에 매료된다.
베이비는 임신한 페니 대신 댄스 경연대회에 나가기 위해 연습을 하고 춤을 추면서 자니와 베이비는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페니가 돌팔이 의사에게 중절수술을 받고 사경을 헤매게 되지만 의사인 베이비 아버지의 도움으로 살아나지만 자니는 아이의 아버지로 오인받고 해고된다. 피서 마지막 발표회에서 돌연 등장한 자니는 베이비와 환상적 더티댄싱을 선보인다.
다음 영화
베이비는 임신한 페니 대신 댄스 경연대회에 나가기 위해 연습을 하고 춤을 추면서 자니와 베이비는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페니가 돌팔이 의사에게 중절수술을 받고 사경을 헤매게 되지만 의사인 베이비 아버지의 도움으로 살아나지만 자니는 아이의 아버지로 오인받고 해고된다. 피서 마지막 발표회에서 돌연 등장한 자니는 베이비와 환상적 더티댄싱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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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예고편
4. 출연
- 제니퍼 그레이 - 프랜시스 "베이비" 하우스먼 역 (최덕희)
- 패트릭 스웨이지 - 조니 캐슬 역 (엄주환)
- 제리 오배치 - 제이크 하우스먼 역 (김규식)
- 신시아 로즈 - 페니 존슨 역 (이현선)
- 잭 웨스턴 - 맥스 켈러맨 역 (박상일)
- 제인 브룩커 - 리사 하우스먼 역 (이선)
- 켈리 비숍 - 마조리 하우스먼 역 (정희선)
- 론니 프라이스 - 닐 켈러맨 역 (김민석)
- 맥스 캔터 - 로비 굴드 역 (이주원)
- 찰스 호니 콜스 - 티토 수아레즈 역
- 닐 존스 - 빌리 코스테키 역 (김영훈)
- 웨인 나이트 - 스탠 역 (유영환)
- 마란다 개리슨 - 비비안 역 (강미형)
5. 줄거리
6. 흥행
5백만 달러의 저예산으로 제작해, 큰 홍보도 없이 입소문으로만 미국 6344만 달러, 해외 1억 5천만 달러, 모두 2억 1천만 달러가 넘는 수익을 거둬들였다. 중소 영화사 베스트론 사 최고 흥행작으로, OST는 3200만장이 넘는 엄청난 판매고를 올렸다.한국에는 1988년 1월 1일에 개봉해, 그야말로 대박을 쳐 종영한지 얼마되지 않았음에도 팬들의 요청에 의해 3주간 앵콜 상영을 했다. 한국영화연감에서는 한국 개봉 당시 서울 관객을 20만 정도로 추산해 1987, 88년 흥행 10위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청소년 관람불가에 개봉 당시 대형 극장을 못 잡아 그런 것으로 보인다.[7] 2007년 재개봉 당시에는 몇 개 안되는 상영관임에도 전국 15만 5,725명이 관람했다. 이는 재개봉 영화 역대 흥행 16위에 해당한다.
7. 제작 비화
마이클 더글러스 주연의 1980년 영화 <뉴욕소나타>[8]의 각본을 집필한 엘리노어 버그스틴이 1970년대부터 기획한 각본이 원작으로 실제 버그스틴이 어린 시절 겪은 이야기를 토대로 집필했다고 한다. 1940년대 후반 브룩클린 근처 유태인들이 많이 사는 거주 구역에 살던 버그스틴이 춤추다 된통 혼나 춤이 뭐가 문제냐고 대들은 경험이라고 한다.버그스틴은 이 각본을 토대로 남자 스포츠 선수와 여자 댄서의 사랑 이야기를 진지하게 만들려 했으나, 여러 사정으로 가벼운 러브 코미디로 만든 게 뉴욕소나타다. 하지만 흥행은 그저 그랬고, 각본은 최악이라며 골든 라즈베리 최악의 각본상을 받았다. 버그스틴으로서도 멋대로 각본을 뜯어고친 배급사 컬럼비아 트라이스타 픽처스에 대해 원망을 가졌다고.
이후 버그스틴은 각본을 바꿔 어릴적 경험을 토대로 보수적인 마을에서 춤으로 인한 기득권 갈등을 이야기 하려 했으나, 1984년에 비슷한 이야기인 <자유의 댄스>가 개봉했다. 케빈 베이컨 출세작이 된 자유의 댄스는 제작비 10배 가까운 수익을 벌며 성공을 거뒀고, 버그스틴의 각본을 가지고 영화를 제작하려던 MGM이나 유니버설 픽처스는 주저없이 제작을 포기했다. 그래서 에로틱한 춤을 추는 설정으로 다시 바꾸느라 1년 가까이 걸려야 했다고 한다.
하지만, 메이저 영화사들은 각본을 볼 생각도 하지 않고 무시만 할 뿐이라, 버그스틴은 어쩔 수 없이 중소 영화사들을 찾아갔으나 역시 무시당했다. 나이트메어 시리즈로 유명한 뉴라인 시네마 같은 여러 중소업체를 비롯하여 디즈니 계열 미라맥스 등 수십여 곳에서 모두 거절당한 버그스틴은 마지막으로 저예산 호러물을 주로 배급한 베스트론 픽처스에 각본을 가져갔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당시 회사 이름은 베스트론 비디오였다. 말 그대로, 저예산 영화를 주로 VHS 비디오로 출시하던 업체였다. 비로소, 여기서 관심을 보이긴 했지만, 제작자 린다 고틀립은 야한 춤을 상당수 편집하도록 요구하여 이것을 가지고 또 갈등이 벌어졌다. 그렇게 만들어봐야 자유의 댄스와 차이가 없기 때문에 결국 조절하여 합의를 봤다. 버그스틴은 영화 줄거리상 낙태 관련 장면은 반드시 나와야 하며, 1960년대의 여러 노래를 꼭 넣어야 한다는 고집을 버리지 않았다.
감독으로 에밀 아돌리노가 결정됐는데 그는 다큐멘터리 분야를 주로 연출한 사람이었다. 백남준을 세계로 알린 <굿모닝 미스터 오웰> 연출도 그가 맡았다. 댄스 다큐멘터리 He Makes Me Feel Like Dancin(1983)으로 아카데미 시상식 다큐멘터리상을 받은 아돌리노를 감독으로 선택한 것은 나쁘지 않긴 했지만, 다큐멘터리 이전에 저예산 단편이나 TV 영화 연출만 해봤을 뿐 장편 상업 영화 연출은 처음이라 아돌리노는 꽤 고생했다고 한다.
다음은 음악이었다. 음악 프로듀서 지미 아이너는 당시 무진장 고생했다고 투덜거렸는데 각본가의 요구대로 노래를 넣기 위해 1960년대 히트곡 판권사를 찾아가 빌면서 영화에 쓰이게끔 애원해야 했다고 한다. 겨우 여러 노래들을 영화에 넣기로 합의했는데 이번에는 영화 주제곡이 없는 것이 문제였다. 이에 음반 제작자이기도 한 아이너는 자신의 음반사 소속의 프랭크 프리바이트라는 작곡가에게 영화에 넣을 노래 작곡을 맡긴다. 헌데 제목만 보고 싸구려 에로틱 영화라며 프리바이트는 거부했다. 아이너가 설득하자 다시 마음을 바꿔 작곡한 노래가 (I've Had) The Time of My Life다.
완성하고 보니 이번에는 부를 가수가 문제였다. 라이오넬 리치, 도나 서머에게 듀엣으로 불러달라고 했으나 즉각 거부당했다. 결국 빌 메들리와 제니퍼 원스의 듀엣으로 결정됐다.
제니퍼 그레이와 패트릭 스웨이지는 촬영 전 카메라 테스트 때부터 서로 대놓고 욕할 정도로 사이가 안 좋았는데, 이 둘은 이미 이전에 영화 레드 던에 같이 출연해 거기서도 사이가 나빴다. 스웨이지는 그레이가 어리고 순진하다고 생각해 영 마음에 안 들었고, 그레이 역시 그런 스웨이지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영화가 개봉하면서 둘의 사이가 개선되긴 했지만 관계자들이 첨언하길 두 사람은 애증의 관계였다고.
아무튼, 이렇게 해서 Great American Films Limited Partnership이라는 중소 영화사 제작으로 만들고 베스트론에서 투자와 배급을 맡아 1987년 초에 완성해 그해 칸 영화제에서 상영했는데 반응이 좋았다. 그러나 개봉 당시 처음에는 무명의 중소 제작사라 홍보하는데 어려움을 겪었고, 삼류 에로 영화로 오해받기 딱 좋은 제목 때문에 스타트가 늦었지만 관객들의 입소문이 퍼지면서 흥행에 불이 붙었고, 그 결과 제작비의 40배에 가까운 흥행 수익을 기록한 영화가 탄생했다.
남자 주인공 자니 역을 맡을 후보 중엔 당시 신인이던 빌리 제인도 포함되어 카메라 테스트도 했으나 최종 후보에선 탈락했다는 후문이 있다. 외모는 나무랄데가 없었지만 춤 실력이 제작진을 만족시키지 못했다고...
8. 사운드트랙
Nostalgie 선정 500대 명반 123위 |
빌 메들리와 제니퍼 원스가 부른 영화의 주제가 (I've Had) The Time of My Life가 매우 유명하다. 빌보드 핫 100에서 1위를 거두며 이 음반은 무려 3200만장이나 팔려 당시 사운드트랙 판매 역대 3위 기록[9]까지 거뒀을 정도이다.[10] 이 노래로 메들리와 원스는 1988년 아카데미 시상식과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최우수 주제곡상을 받았다. 또한 그래미상에서도 수상했다. 노래를 작곡한 프랭크 프리바이트는 이 노래와 Hungry Eyes의 대히트로 큰 돈을 벌어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삽입곡 She's Like the Wind는 스웨이지가 직접 작사, 작곡해 부른 노래다. 원래는 이 영화 제작 2년전에 나온 영화 '그랜드뷰 USA'라는 영화도 저예산으로 만들면서 영화 삽입곡으로서 만들었지만 영화에 들어가지못하고 창고 속에 처박혀 있던 것을 활용했다. 그랜드뷰는 흥행에 참패하여 잊혀졌다.
'All By Myself'로 알려졌던 에릭 카르멘(1949~2024)이 부른 Hungry Eyes. 이 노래도 프랭크 프리바이트가 작곡한 노래이다.
영화 시작하자 나오는 The Ronettes가 부른 Be My Baby.
한국에는 TV 광고나 방송에서 우스꽝스런 분위기에 자주 나온 The Four Seasons의 Big Girls Don't Cry도 삽입됐다.
The Contours의 Do You Love Me.
각본가가 요구한 대로 1960년대 많은 히트곡을 영화에 넣어 사운드트랙을 들어보면 어디선가 들어 본 듯한 친숙한 곡들이 꽤 있다. 상술한 것처럼 음악 프로듀서 지미 아이너가 투덜거린, 한정된 돈을 가지고 이 많은 히트곡 판권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했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Dirty Dancing (Original Motion Picture Soundtrack) | |||||
트랙 | 제목 | 아티스트 | 재생 시간 | 듣기 | 비고 |
1 | (I've Had) The Time of My Life | 빌 메들리 & 제니퍼 원스 | 4:50 | ||
2 | Be My Baby | 로네츠 | 2:39 | ||
3 | She’s Like the Wind (feat. Wendy Fraser) | 패트릭 스웨이지 | 3:52 | ||
4 | Hungry Eyes | Eric Carmen | 4:08 | ||
5 | Stay | Maurice Williams & The Zodiacs | 1:34 | ||
6 | Yes | Merry Clayton | 3:18 | ||
7 | You Don’t Own Me | The Blow Monkeys | 3:01 | ||
8 | Hey Baby | Bruce Channel | 2:23 | ||
9 | Overload | 차파코스타 | 3:42 | ||
10 | Love Is Strange | Mickey & Sylvia | 2:53 | ||
11 | Where Are You Tonight | Tom Johnston | 4:01 | ||
12 | (I'll Remember) In The Still of The Night | The Five Satins | 3:05 |
9. 기타
- 베스트론이 1991년에 문닫은 뒤로 판권은 라이브 엔터테인먼트로 넘어갔는데 그래서 한국 첫 개봉 당시나 비디오에는 베스트론 픽처스 로고가 나왔으나 이후 SBS 방영분에는 라이브 엔터테인먼트 로고가 나온다. 이후 1998년 라이브 프로덕션이 아티샌 엔터테인먼트(Artisan Entertainment)으로 이름을 바꾸고 라이언스게이트에 합병되면서 블루레이에는 라이언스게이트 로고가 나온다.
- 제작사 베스트론 필름과 독점 계약을 맺은 오아시스 비디오에서 VHS 비디오로 출시했고, 1997년 9월 12일에 SBS 영화특급에서 더빙 방영했으며 정확히 10년 후인 2007년 9월에 재방영했다.
10. 관련 영화
90년 초반에 비디오로 멋대로 더티 댄싱 2라는 제목으로 낸 영화가 나온 바 있다. 정보도 알려지지 않았으며 그야말로 듣보잡으로 사라졌다.10.1. 더티 댄싱 2: 원 라스트 댄싱
더티 댄싱 2 (2003) One Last Dance | |
2003년에 스웨이지가 출연하고 리사 니에미가 감독, 주연을 맡은 영화가 더티 댄싱 2라는 제목으로 한국에 개봉했으나 캐나다 영화로 원제는 One Last Dance, 즉 더티 댄싱과 전혀 상관 없는 영화다.
10.2. 더티 댄싱: 하바나 나이트
더티 댄싱: 하바나 나이트 (2004) Dirty Dancing: Havana Nights | |
더티 댄싱 판권을 보유한 라이언스게이트가 미라맥스와 공동으로 배급한 속편 격이다. 그러나, 전편에 나온 배우들이라곤 고작해야 패트릭 스웨이지가 잠깐 나오는 수준이다. 2500만 달러의 제작비로 제작비도 못 건지는 2700만 달러를 벌어들이는데 그쳤으며 한국 개봉 당시 전국 관객은 6만도 채 보지 않았다.
10.3. 기타
2010년에 더티 댄싱 3: 카포에라 나이트(Dirty Dancing 3: Capoeira Nights)라는 비디오 영화가 나왔으나 묻혔다.2013년 마이클 잭슨의 마지막 이야기를 다룬 마이클 잭슨의 디스 이즈 잇을 연출한 케빈 오르테가가 감독을 맡고 라이언스게이트에서 새롭게 제작하여 개봉할 예정이었으나 무기한 연기되었다.
2017년에 미국 ABC에서 TV 영화로 리메이크했으나 IMDb 평점 3.1점로 평가가 매우 좋지 않다. #
제니퍼 그레이가 출연하고 제작을 맡은 후속편의 제작을 발표했다. #
[재개봉] [재개봉] [재개봉] [4] 1943~1993. 다른 작품으로 우피 골드버그 주연의 《시스터 액트》가 있으며, 유작은 맥컬리 컬킨이 조연으로 나온 《호두까기 인형》과 TV 영화 《집시》가 있다.[5] 필 콜슨 역할로 유명한 배우 클락 그레그와 2001년에 결혼했으나 2020년에 이혼했다. 그녀의 아버지 조엘 그레이는 《레모》에서 한국인 스승 천으로 출연했다. 유대계 백인이나 분장한 탓에 백인 배우인지 모르는 경우가 있었다. 조엘 그레이는 영화 카바레에서 멋진 연기를 선보여 1973년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조연상을 수상하였다.[6] 제니퍼 그레이는 더티 댄싱 오디션도 뮤지컬 배우 출신 아버지가 등 떠밀어 반강제로 본 것이라고 한다.[7] 당시에는 단관 개봉이다보니, 서울시네마, 대한, 피카디리, 단성사 같은 천석이 넘는 대형극장을 잡는게 매우 중요했다.[8] 1990년에 나온 대우비디오 출시 제목으로 It's My Turn이 원제이며, 다이애나 로스가 부른 주제곡과 같은 제목이다.[9] 당시 1위는 3800만장이 팔린 그리스, 2위가 3500만장이 팔린 토요일 밤의 열기였다. 1992년 개봉한 영화 보디가드가 4200만장이 팔려 30년 넘도록 아직까지도 사운드트랙 판매 1위 기록이 되면서 더티 댄싱은 역대 사운드트랙 판매 4위.[10] 이후 블랙 아이드 피스가 이 곡을 샘플링한 The Time (Dirty Bit)을 발매했다.[11] 다만 저 세개의 작품 후에는 폭풍 속으로 외에 별다른 작품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