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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1-17 00:39:55

농우회 사건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1. 개요2. 역사

1. 개요

농우회는 1930년 농촌 교인들이 조직한 종교협동조합이었다. 일본 제국은 협동조합의 성격을 띄는 농우회를 독립운동을 도모한다고 의심하였으며 이들을 탄압하는 과정에서 다수의 기독교 지도자를 검거한 사건이 농우회 사건이다.

2. 역사

농촌연구회는 원래 인프라 부족에 시달리던 촌락에서 교육과 신앙 보급을 목표로 유재기[1]를 비롯한 교인들과 농촌운동가들이 조직한 모임이었다.

그러나 곧 국내외로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다이쇼 데모크라시의 좌절 후 군국주의의 길을 걷던 일본이 중일전쟁을 일으킨 것이 발단이었다. 1938년 2월 ‘흥업구락부사건’으로 말미암아 기독교청년연합회(YMCA) 간부들이 검거되었고 YMCA의 흥업구락부운동과 농촌사업이 조선의 독립을 표방했다고 발표된 후 유재기 목사가 체포되었고 박학전, 송영길 부목사도 체포되었으며 주기철 등 신사참배에 반대하던 교회 인사들까지 위험인물로 몰려 검거되었다. 이들은 의성경찰서로 끌려갔으며 모진 고문을 받았다. 유재기는 농우회 사건 이후 건국훈장을 수여받았으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등록되면서 취소되었다.

[1] 숭실대학교에 입학하여 전문 농업지식을 배운 후 평양의 신학교에 입학하여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