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발생연월일 | 명칭 | 규모 | 최대진도 | 쓰나미 |
1872년 3월 14일 | ■하마다 지진 | M7.1 | |||
1891년 10월 28일 | ■노비 지진 | M8.0 | 격렬 | ||
1894년 10월 22일 | ■쇼나이 지진 | M7.0 | 열진 | ||
1896년 6월 15일 | ■메이지 산리쿠 지진 | M8.2 | 강진 | 최대 38.2m | |
1896년 8월 31일 | ■리쿠 지진 | M7.2 | |||
1923년 9월 1일 | ■다이쇼 간토 지진 (관동 대지진) | M8.1 | 6 | 최대 12m | |
1925년 5월 23일 | ■기타타지마 지진 | M6.8 | 6 | ||
1927년 3월 7일 | ■기타탄고 지진 | M7.3 | 6 | 최대 1.5m | |
1930년 11월 26일 | ■기타이즈 지진 | M7.3 | 6 | ||
1933년 3월 3일 | ■쇼와 산리쿠 지진 | M8.1 | 5 | 최대 28.5m | |
1943년 9월 10일 | ■돗토리 지진 | M7.2 | 6 | ||
1944년 12월 7일 | ■쇼와 도난카이 지진 | M7.9 | 6 | 최대 9m | |
1945년 1월 13일 | ■미카와 지진 | M6.8 | 5 | ||
1946년 12월 21일 | ■쇼와 난카이 지진 | M8.0 | 5 | 최대 6.57m | |
1948년 6월 28일 | ■후쿠이 지진 | M7.1 | 6 | ||
1960년 5월 23일 | ■칠레 지진의 쓰나미 | M9.5 | 최대 6.1m(일본) | ||
1961년 8월 19일 | 기타미노 지진 | M7.0 | 4 | ||
1962년 4월 30일 | 미야기현 북부 지진 | M6.5 | 4 | ||
1963년 3월 27일 | 에치젠곶 해역 지진 | M6.9 | 5 | ||
1964년 6월 16일 | 니가타 지진 | M7.5 | 5 | 최대 6m | |
1966년 4월 5일 | 마츠시로 군발지진 | M5.4 | 5 | ||
1968년 2월 21일 | 에비노 지진 | M6.1 | 6 | ||
1968년 4월 1일 | 1968년 휴가나다 지진 | M7.5 | 5 | 최대 3m | |
1968년 5월 16일 | 1968년 도카치 해역 지진 | M7.9 | 5 | 최대 2.7m | |
1972년 12월 4일 | 1972년 12월 4일 하치조섬 동쪽 해역 지진 | M7.2 | 6 | 최대 50cm | |
1973년 6월 17일 | 1973년 6월 17일 네무로반도 해역 지진 | M7.4 | 5 | 최대 2.8m | |
1974년 5월 9일 | 1974년 이즈반도 해역 지진 | M6.9 | 5 | 12cm | |
1978년 1월 14일 | 1978년 이즈오시마 해역 지진 | M7.0 | 5 | 최대 70cm | |
1978년 6월 12일 | 1978년 미야기현 해역 지진 | M7.4 | 5 | 최대 37cm | |
1982년 3월 21일 | 쇼와 57년(1982년) 우라카와 해역 지진 | M7.1 | 6 | 최대 80cm | |
1983년 5월 26일 | ■쇼와 58년(1983년) 동해 중부 지진 | M7.7 | 5 | 최대 14m | |
1984년 9월 19일 | 쇼와 59년(1984년) 나가노현 서부 지진 | M6.8 | 4 | ||
1993년 1월 15일 | 헤이세이 5년(1993년) 구시로 해역 지진 | M7.5 | 6 | ||
1993년 7월 12일 | ■헤이세이 5년(1993년) 홋카이도 남서쪽 해역 지진 | M7.8 | 5 | 최대 16.8m | |
1994년 10월 4일 | 헤이세이 6년(1994년) 홋카이도 동쪽 해역 지진 | M8.2 | 6 | 최대 1.73m | |
1994년 12월 28일 | 헤이세이 6년(1994년) 산리쿠 먼바다 지진 | M7.6 | 6 | 최대 55cm | |
1995년 1월 17일 | ■헤이세이 7년(1995년) 효고현 남부 지진 (고베 대지진) | M7.3 | 7 | ||
2000년 10월 6일 | 헤이세이 12년(2000년) 돗토리현 서부 지진 | M7.3 | 6+ | ||
2001년 3월 24일 | 헤이세이 13년(2001년) 게이요 지진 | M6.7 | 6- | ||
2003년 9월 26일 | 헤이세이 15년(2003년) 도가치 해역 지진 | M8.0 | 6- | 최대 2.55m | |
2004년 10월 23일 | 헤이세이 16년(2004년) 니가타현 주에쓰 지진 | M6.8 | 7 | ||
2007년 3월 25일 | 헤이세이 19년(2007년) 노토반도 지진 | M6.9 | 6+ | 최대 20cm | |
2007년 7월 16일 | 헤이세이 19년(2007년) 니가타현 주에쓰 해역 지진 | M6.8 | 6+ | 최대 1m | |
2008년 6월 14일 | 헤이세이 20년(2008년) 이와테·미야기 내륙 지진 | M7.2 | 6+ | ||
2011년 3월 11일 | ■헤이세이 23년(2011년)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 (동일본 대지진) | M9.1 | 7 | 최대 40.1m | |
2016년 4월 16일 | ■헤이세이 28년(2016년) 구마모토 지진 | M7.3 | 7 | ||
2018년 9월 6일 | 헤이세이 30년 홋카이도 이부리 동부 지진 | M6.7 | 7 | ||
2024년 1월 1일 | ■레이와 6년 노토반도 지진 | M7.6 | 7 | 최대 5.9m | |
일본 주요 지진은 메이지 유신 이후 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일본에서 100명 이상의 사망자를 기록한 지진 또는 큰 피해가 발생하여 일본 기상청에서 명명한 지진이다. 지진의 명칭은 일본 기상청 기준이다.## ■ 사망자 100명 이상 / ■ 1000명 이상 / ■ 5000명 이상 / ■ 10000명 이상 |
<colbgcolor=#3d5f7e><colcolor=#fff> 메이지 24년(1891년) 미노·오와리 지진 明治24年美濃・尾張地震 | ||
명칭 | 1891년 노비 지진 | |
발생 시간 | 1891년 10월 28일 6시 38분(UTC+9) | |
진앙 위치 | 일본 기후현 모토스군 니시네오촌 (現 기후현 모토스시) | |
진원 깊이 | 10km | |
규모 | Ms 8.4 / Mj 8.0 / Mw 7.5 | |
최대 진도 | 7(격렬)[1] 후쿠이현 이마다테군 사바에정, 아이치현 하구리군 오타시마촌, 히가시가스가이군 가치가와정 | |
MMI 진도[2] XI ~XII(추정) | ||
분류 | 판 내부 직하형 지진 | |
쓰나미 | 없음 | |
전진 | Mj 6.0[3] | |
인명 피해 | <colbgcolor=#3d5f7e><colcolor=#fff> 사망 | 7,273명 |
부상 | 17,157명 | |
재산 피해 | 가옥 142,177채 완파 가옥 80,324채 반파 산사태 10,224회 | |
각 도도부현의 최대진도 목록 | ||
7(격렬) | 기후[4] , 후쿠이, 아이치 | |
6(열진) | 시가, 미에, 야마나시, 시즈오카, 군마, 나라, 오사카, 교토, 효고 | |
4~5(강진) | 도쿄, 가나가와, 사이타마, 치바, 이바라키, 도치기, 후쿠시마, 니가타, 이시카와, 돗토리, 시마네, 히로시마, 오카야마, 카가와, 도쿠시마 | |
2~3(약진) | 후쿠오카, 나가사키, 오이타, 에히메, 고치, 야마구치 | |
1(미진) | 구마모토, 가고시마, 미야기, 아키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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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노비지진(濃尾地震) 또는 미노·오와리 지진(美濃・尾張地震)은 1891년 10월 28일 일본 기후현 노비평야에서 일어난 일본 역사상 최대의 육지 지각 내 직하형지진이다. 일본 내에서는 신묘년에 일어난 지진이라 신묘진재(辛卯震災)라고 부른다.2. 상세
진원 단층인 네오다니 단층은 길이 약 30km, 최대 수평변위 8m, 최대 수직변위 6m에 이르는 거대 활성단층이다. 천년에 약 2m씩 주향이동하는 단층으로, 평균 3천년에 1번 꼴로 대규모의 지진이 발생한다. 일본 지진조사연구추진본부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진 발생 시 가능한 최대규모로 M 7.9를 예상하고 있으며 향후 30년간 지진 발생 확률이 거의 없는 Z급 단층으로 평가하고 있다.# 또한 이 지진으로 인해 단층이 위치한 지역의 땅이 엄청난 폭으로 갈라졌다고 한다.3. 피해
규모 8급의 지진이 도시를 직하했으니 당연히 인근 지역은 산산조각 났다. "신편일본피해지진총람"에 따르면 사망자 7,273명, 부상자 17,175명, 가옥 붕괴수가 무려 142,177채에 달한다. 기후시의 괴멸을 전한 뉴스 1보에서는 "기후, 없어지다"(ギフナクナル, 岐阜、無くなる)라는 보도로 전했을 정도이다. 네오다니 단층이 지나가는 기후현 모토스군과 기소 삼강[5] 합류점에서는 주택 파괴율 100% 라는 기록을 썼다.[6] 산사태도 1만회가 넘게 발생하였고, 기후현의 산들은 이 지진으로 민둥산이 되었다는 전설도 있다.4. 영향
학술적으로 일본의 지진학자인 오모리 후사키치(大森房吉, 1868~1923)는 노비 지진을 통하여 본진이 일어난 시각에서 여진 발생 확률이 점차 빠르게 감소한다는 '오모리 공식'을 발표하여 세계적인 인기를 누렸다.[7] 그리고 이 지진이 워낙 극심했던 피해를 가져다 준 탓에 '지진을 예측할 순 없어도 예방은 가능하다'는 취지로 지진 방재에 대한 폭 넓은 조사가 시작되어 '지진 예지', '건물의 내진성 향상', '과거 지진사 편찬' 작업이 이루어졌다.기후현은 노비 지진이 일어난 10월 28일을 "기후현 지진방재의 날"로 정해 지진방재의 인식을 높이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매월 28일을 "기후현 방재점검의 날"로 지정하여 기후현민들에게 매달 방재 태세 점검을 홍보하고 있다.
한 편, 난카이 해곡 거대지진에 영향을 주었다는 설이 학계에서 인정 받고 있다. 노비 지진이 도카이 지진 발생 영역인 스루가 만의 왜곡을 해소하고, 도리어 도난카이 지진과 난카이 지진이 발생하는 난카이 해곡의 왜곡을 일으켜 결과적으로는 난카이 지진과 도난카이 지진은 주기가 덜 됐음에도 이례적으로 빨리 터지고, 반대로 도카이 지진은 주기가 지났음에도 아직 일어나지 않고 있게 되었다.
이때 발생한 네오다니 단층이 매우 뚜렷하여, 100여년이 흐른 뒤 기후현 모토스시에서 네오다니지진단층관찰관(根尾谷断層地震断層観察館)을 1992년부터 개관하여 운영중에 있다.
5. 둘러보기
문서가 존재하는 19세기 지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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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68e96> 1810. 2. 19. | M 6.7 | 1810년 부령 지진 | |
1811. 12. 16. ~1812. 2. 7. | M 8.8 | 뉴마드리드 지진 | |
1833. 11. 25. | M 9.0 | 1833년 남아시아 대지진 | |
1891. 10. 28. | M 8.4 | 노비 지진 | |
1896. 6. 15. | M 8.5 | 1896년 산리쿠 해역 지진 | |
1897. 6. 12. | M 8.3 | 1897년 아삼 지진 | |
1899. 1. 15. | M 6.3 | 1899년 대한제국 지진 |
[1] 1891년 당시 지진 관측은 일본 중앙기상대(현 일본 기상청) 기상관측소 외에 군, 관공서 위탁관측소에서도 이루어져 일본 중앙기상대로 보고되었다. 당시 일본 기상청 진도 계급은 '열진'(진도 6 정도), '강진'(진도 4-5), '약진'(진도 2-3), '미진'(진도 1)으로 4단계였지만 1891년 노비 지진은 매우 강렬한 지진으로 기록되어 당시 계급으로 "격렬"로 표현되었다.[2] 수정 메르칼리 진도 계급 (I부터 XII까지 로마숫자로 12단계)[3] 3시간 전, 이비강 하구에서 발생하였다.[4] 당시 진도계급으로 "격렬" 판정을 받지는 않았으나, 기후현 모토스군의 주택 파괴율이 100% 였던 것을 감안하여 추정 진도 7로 추정한다.[5] 노비평야를 흐르는 기소강, 이비강, 나가라강의 총칭.[6] 진도 7이 도입된 1949년 부터 계측진도가 도입되기 이전인 1996년 까지는 한 지역의 주택 파괴율이 30% 이상일 경우 진도 7로 판정했다. 그런데 파괴율이 100% 에 달할 정도였으니 얼마나 맹렬한 지진인지 실감이 되는 대목이나 당시엔 건축 내진설계 기술이 거의 없다시피 하여 피해를 더욱 부추긴 면이 있긴 하다.[7] 그러나 이후 오모리는 큰 실책을 저지르게 되는데, 인지도를 이용하여 같은 지진학자였던 이마무라 아키쓰네(1870~1948)의 1905년부터 50년 안에 간토 지방에서 대지진이 일어날 것으로 예측하고, 피해를 줄이기 위해 등유 점화 기구 금지, 신축 건물 간격 확대 등 지진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경고를 강도 높게 비난하여 묵살시켰다. 결국 이마무라가 경고했던 그 지진이 일어나게 되고, 오모리는 지진에 의해 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