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개
登戸硏究所(등호연구소)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도쿄에 만들어진 전쟁 무기용 실험연구소로, 당시의 정식 명칭은 제9육군기술연구소다.
지금은 메이지 대학 평화 교육 노보리토 연구소 자료관으로 이름이 바뀌어 각종 연구 자료는 물론 일본군의 전쟁범죄 자료까지 전시하고 있다.# 또 하나의 731부대라고 볼 수 있다.
2. 역사
중일전쟁이 일어났던 1937년 쇼와 덴노가 도쿄 근교에 세워진 일본 제국 육군의 비밀연구소 '노보리토 연구소'를 방문했으며 제2차 세계 대전이 터지자 이곳은 곧바로 살인무기연구소로 탈바꿈했다. 세균실험, 폭탄실험, 생물학 무기 실험 등 각종 다양한 실험들을 했으며 전쟁이 끝난 후 연합군 최고사령부에 의해서 점거되었고 실험 자료들을 미군에 전달하는 조건으로 관련자들은 단 한 명도, 아무도 처벌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3. 주요 실험 및 행적 목록
- 전파무기
'괴력선'이라고 불렀던 살인 전파로 적기를 추락시키는 당시로선 그야말로 최첨단무기를 연구했지만 날이 갈수록 전황이 불리해진 일본 제국에겐 이 실험을 지속시키기 힘들었을 것이다. - 세균무기
목적은 가축을 대상으로 한 세균 살포실험이었지만 전쟁에 쓰기 위해서 실험했다. 1943년 12월 연구소가 부산부의 조선총독부 축산위생연구소에 연구원을 파견했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실험에서 낙동강 하굿둑에 소 열 마리를 세워놓고 공중에서 세균을 살포했고 소 열 마리는 그대로 모두 죽었다고 한다. - 인체실험
요인암살용으로 개발한 각종 독극물들을 연합국 포로들을 대상으로 인체실험을 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731부대와 다르지 않다는 점이 바로 이런 것들 때문이다. - 위조화폐
의외로 당시 노보리토 연구소 산하 3과에서는 중일전쟁 당시 중국 본토의 경제를 혼란시키기 위해 위조화폐를 대량으로 찍어냈으며 이와 관련된 내용은 연구소 내에서도 소수의 관련자만 아는 일급기밀이었다고 한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중국에 유통되었던 절반 정도의 화폐가 이들이 찍어낸 화폐로 알려져 있다. 종전 후인 1961년에 1000엔권 지폐를 매우 정교하게 본뜬 위조화폐가 시중에 나온 사건이 있었는데 당시 수사기관은 노보리토 연구소 전 기술자들을 상대로 수사를 벌였으나 끝내 용의자를 찾지 못하고 결국 일본은행은 쇼토쿠 태자가 들어가 있었던 1000엔권 지폐의 도안을 이토 히로부미로 바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