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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24년 2월 8일 ([age(1924-02-08)]세) |
프랑스령 라오스 참파삭 | |
재임기간 | 제4대 국가주석 |
1998년 2월 24일 ~ 2006년 6월 8일 | |
종교 | 불교 |
소속 정당 | [include(틀:글배경br, 배경색=#CC0000, 사이즈=.9em, 글자색=#FFD700, 내용=라오 인민혁명당)] |
약력 | 제12대 라오인민민주공화국 정부 수상[1] 제2대 라오 인민혁명당 중앙위원회 주석[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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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라오스의 정치인. 제4대 주석으로 재임하였다.2. 생애
1954년 인도차이나 공산당에 입당해 국회의원이 되는 것으로 정치 인생이 시작된다. 1957년부터 1959년까지 라오 인민혁명당 중앙판공청 주임, 1960년 당 중앙군사책임자 겸 라오스 전투부대 총사령관, 1971년 정부 부수상 겸 국방부장, 인민군 총사령관직을 역임하였다. 1991년~1998년 라오스 정부의 수상, 1992년 라오 인민혁명당 당대표 및 중앙국방치안국 국장을 거쳐 1998년 2월 24일 라오인민민주공화국 제4대 주석으로 국민의회 선거를 통해 당선된다. 1998년 2월 24일부터 2006년 6월 8일까지 국가주석 재임 후, 2006년 정계에서 은퇴하였다.3. 여담
- 노무현 전 대통령과 라오스 주석부(귀빈초청지역)에서 한·라오스 정상회담 당시 한·라오스 조약서명식에 서명하였다.
- 20[age(2000-01-01)]년 현재 생존해 있는 전현직 국가원수 및 정부수반들 중 2번째로 장수하고 있는 인물이다. 1위는 기예르모 로드리게스(1923년 11월 4일생 - [age(1923-11-04)]세), 3위는 무라야마 도미이치(1924년 3월 3일생 - [age(1924-03-03)]세), 4위가 지미 카터(1924년 10월 1일생 - [age(1924-10-01)]세)로, 로드리게스를 제외한 세 명 전원이 1924년생이지만 시판돈이 가장 생일이 빠르다. 2024년 2월 8일 100세를 넘겼다.[3]
- 그의 자녀들도 정치인이다. 아들 쏜싸이 시판돈은 2006년부터 당 중앙위원회의 일원이 되었으며, 2016년에는 부수상(서열 11위)로서 제10기 당 중앙정치국의 위치까지 올라갔다. 2021년 제11기 당 중앙정치국에서도 부수상(서열 9위)직을 유지하였는데, 다음 해인 2022년 12월 30일 건강 문제로 은퇴한 판캄 위파완(서열 2위)의 후임으로 정부 수상에 임명됐다. 딸 위앙통 시판돈 역시 현재 당 중앙위원회 위원이자 중앙위원회 서기처 서기이며, 딸의 남편(사위)인 캄펭 싸이쏨펭 역시 전직 장관이자 현직 당 중앙위원회 위원이다.
[1] 1991년 8월 15일 ~ 1998년 2월 24일[2] 1992년 11월 24일 ~ 2006년 3월 21일[3] 여담으로 라오스의 평균수명은 68세에 불과한 편인데, 라오스 전체로 보면 상당히 장수한 셈이다. 당장 국가주석으로 취임했을 당시에도 라오스의 평균수명을 한참 뛰어넘은 74세였으며, 82세에 퇴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