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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균/선수 경력/20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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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즌 전2. 페넌트레이스
2.1. 5월2.2. 6월2.3. 7월2.4. 8월 이후
3. 은퇴 선언4. 총평

1. 시즌 전

FA로 단년 계약을 맺은 시즌이자 현역 마지막 시즌.

2. 페넌트레이스

2.1. 5월

5월 5일 개막전 첫 경기 인천 SK전 2회초, 2루타를 치고 출루한 선두타자 송광민을 깔끔하게 홈으로 불러들였고 이 안타는 그대로 결승타가 되었다.[1]이후엔 볼넷으로 출루했고, 정진호의 희생번트로 2루까지 진루했는데 대주자 장운호로 교체되어 개막전 경기를 마쳤다.

5월 6일 인천 SK전 마지막 타석에 펜스를 맞히는 2루타를 기록했다.

5월 7일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6회 초, 3번의 아웃카운트 전부 김태균 혼자서만 기록하는 전무후무한 일이 벌어졌다.

5월 15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대타로 나와 2연속 폭삼을 기록했다. 23타수 3안타로 타율이 .130까지 떨어졌다.

1할대의 타율, 심지어 OPS는 4할도 안 넘는상황인데, 19일 경기에 선발 1루수로 출전한다(...).[2] 이날 경기에서 2타수 무안타 1삼진을 기록하고 4회에 최승준과 교체됐다. 29타수 3안타 타율 .103으로 푼 단위까지 2타수 남았다.

결국 5월 20일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2.2. 6월

6월 3일 기준 김태균이 말소된 이후 팀은 2연승이 끝나자 마자 9연패를 질주하고 있다.

6월 3일 1군에 재등록되어 5번 타순에 배치되었고 3타수 무안타를 기록하다 9회 중견수 앞 안타로 출루했지만 득점하진 못했다. 팀은 10연패에 빠졌다...

6월 4일엔 아예 안타도 치지 못했을 뿐 아니라 7회 투수의 송구를 잡지 못하는 플레이로 팬들의 얼을 빼놓았다. 웃기게도 투수 실책으로 처리된 뒤 실점만 3점이 늘면서, 제발 더 망하기 전에 은퇴하라는 반응이 압도적. 게다가 허슬플레이를 보여주고 정교한 타격감을 유지중인 이대호와 비교되며 까이고 있다.

6월 5일 한용덕의 간절한 연패 탈출 바람으로 4번 타자로 투입되었으나 2타수 무안타를 기록한 뒤 대타 이성열로 교체되었다. 하필 같은 날 친구 이대호가 역전 쓰리런 홈런을 치면서 팬들은 한용덕 짤릴 때 같이 은퇴 선언하라며 대차게 까고 있다. 5일 기준 3,497루타를 기록하고 있으나 이 페이스대로 시즌을 완주하면 Swar -2.55(...)라는 심각한 수치를 기록하게 된다.

6월 6일에는 5번 타자로 투입되었는데, 한화의 기운이 모두 김태균에게 모여든 건지 2회에는 평범한 뜬공을 김성욱이 뒤로 자빠져서 놓쳤는데 이게 실책이 아닌 안타로 기록되었고[3], 그 뒤에 2타석 연속 안타를 쳐내며 안타를 치면 스탯타만 친다고 욕먹던 김태균이 27일만에 드디어 타점을 기록하게 되었다. 하지만 팀이 또 패배하면서 기록을 세우고도 스탯타만 치는(소위 '스찌질')이라며 욕을 먹고 말았다.
파일:김3500.jpg

이번 경기로 역대 4번째, 우타자 최초로 통산 3,500루타를 기록하게 되었다. 구창모를 상대로 올해 처음으로 멀티히트를 기록한 타자 기록은 덤.

6월 7일에는 3번에 배치되었는데 첫번째와 두번째 타석은 아웃되었으나 3번째 타석에서는 이재학을 상대로 11구까지 가는 접전 끝에 볼넷으로 출루하였지만 귀신같은 최진행의 병살타가 나오면서 팀은 14연패에 빠지게 되었다.

경기가 끝난 후 감독이 자진 사퇴, 이후 베테랑들이 대거 숙청되는 와중에도 최고참 급에서 이용규와 함께 살아남았다. 기본적으로 한화에서 그의 위치가 다른 고참급들과 비교할 수 있는 급이 아닌 것도 있겠지만, 야구부장 유튜브에서 나온 이야기를 보면 연패의 가장 큰 원인을 구단에서 감독과 베테랑들이 기 싸움 끝에 팀이 전반적으로 무너진 것으로 보았고, 그 여파로 감독이 사퇴한 뒤 이 사태에 일조한 고참급들에게도 책임을 물으면서 대숙청이 일어난 듯 하다. 그 와중에 시즌 타율 1할을 찍고 있으면서도 살아남을 것을 보면, 이러한 내부 분열에는 참가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되며, 팀 분위기를 해치는 고참으로는 분류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4]

6월 9일 롯데전에서는 4타석동안 2안타 1볼넷 1사사구를 보여주며 4출루 경기를 했다. 하지만 팀은 15연패. 어린 선수들이 대거 투입되면서 호잉과 김태균 둘이 중심을 잡아주고 어린 선수들을 이끌어야 하는데, 다행스럽게도 사이클이 올라오고 있다. 김태균이 카리스마로 휘하 선수들을 통제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후배들을 잘 챙겨주면서 맏형 노릇은 하는 선수이기 때문에 어린 선수들을 잘 이끌어주며 유종의 미를 가지기를, 가능하다면 작년의 성적 정도를 회복하여 커리어를 이어가길 기대하는 팬들이 많다.

6월 12일 노시환이 4번 타자의 부담을 못 이기고 부진하자 다시 4번으로 복귀해 단타성 타구에 2루까지 전력질주하여 비디오 판독 끝에 2루타를 얻어냈고, 9회 중전 안타를 치고 대주자와 교체되면서 4타수 2안타를 기록했다. 허나 팀이 5실점하는 동안 2타점을 내며 패하면서 18연패를 막아내진 못했다.

팀의 19연패 여부가 걸린 6월 13일에는 1회초 팀이 2점을 내주고도 공수교대 후 정은원의 안타에 이어 투런 홈런을 때렸다. 시즌 1호. 이후 3회말 공격 도중 빗줄기가 경기를 진행할 수 없을 정도로 굵어져 결국 서스펜디드 게임이 선언되었다. 한화로서는 만신창이가 된 팀을 잠시나마 추스릴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 그리고 6월 14일, 서스펜디드로 이어진 게임에서 자신의 타순이 돌아올 때 마다 안타를 치거나 출루를 하며 4타수 3안타 1볼넷 합계 5출루를 하면서 전성기의 편린을 보여줬다. 허벅지에 날아오는 공을 피하지 않으면서까지 출루를 하던 이용규와 함께 공격의 활로를 뚫어내는 역할을 하며 자신이 해야하는 모든 역할을 충실히 발휘했다. 다만 여기에 집중했는지 서스펜디드 두번째 게임에서는 4타수 1안타(2루타)로 1경기만은 못한 성적을 보였다. 1할 중반에 있던 타율을 2할 4푼까지 끌어올리고 2루타, 홈런 등의 장타도 보여주면서 7일을 기점으로 확실하게 살아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팀은 다행히 두 경기를 다 잡으며 KBO 단독 최다 연패 기록 수립의 위기에서 벗어났다.

6월 14일 서스펜디드 게임에 이은 사실상 더블헤더를 앞두고 NC전에서 기록한 3500루타 시상식이 진행된다. 역대 4번째이자 우타자 최초로 세운, 엄연히 KBO 역사에 남을 기록이고, 정운찬 총재가 직접 수여하러 내려오기 때문에 진행되나, 이런 상황을 모르는 오해로 인해 팀이 19연패를 할 지도 모르는데 개인 수상을 챙긴다며 선술되었듯이 3500루타 시상식 기사마다 욕을 먹기도 하였다.

후배들에게 장비를 선물해준다거나 고기를 사주는 등의 선행이 보도되면서 후배들을 해외 전지훈련에 사비로 보내주던 이용규와 함께 그나마 욕을 덜 먹고 있다. 다만 이마저도 뜬금없는 구단의 사과문과 더불어 구단의 쓸데없는 언플같다며 싫다는 반응도 있다.

18연패를 끊은 이후 부진하면서 타율이 2할 1푼까지 떨어졌다.

6월 20일 NC전에서 4타수 2안타 1타점으로 활약했다. 첫타석 적시타는 결승타가 되었다. 다만 6회 무사 23루에서 외야 플라이후 평범한 중계 플레이를 잡지 못해 공이 흘렀으나 이것이 오히려 3루주자 박민우가 홈으로 들어오게 만들게 되었고 그대로 홈에서 박민우를 잡으며 2사 2루로 만들어버리게 되면서 위기를 탈출하는데 일조하였다. 큰 그림오지는 부분, 아마 그대로 점수가 먹혔으면 가루가 되게 까였을 텐데 김설계. 더불어 오늘 경기에서 멀티히트를 기록해서 드디어 안타 수 > 삼진 수가 되었다.

6월 23일 삼성전에서 3타수 2안타 1홈런 1타점 1볼넷으로 활약하였다. 첫타석은 중견수 플라이로 물러났지만 두번째 타석에 2루타를 치고 3번째 타석에서는 2볼 0스트라이크의 유리한 볼카운트에서 최채흥의 135km 직구를 받아쳐서 동점 솔로포로 시즌 2호 홈런을 기록하였다, 7회 1사 1,3루에서도 볼넷을 골라내 출루하였다. 오늘 경기에서 홈런과 2루타를 쳐내며 드디어 장타율 0.371 출루율 0.333으로 장타율이 출루율을 넘어섰고 OPS도 0.704로 7할을 돌파하였다. 하지만 팀은 키스톤의 실책 이후 대량실점으로 졌다.

6월 24일 3번 타자로 나와 1타점 2루타와 2볼넷으로 활약했으나 어처구니 없는 수비 방해로 병살타를 삼중살로 만드는 바람에 까였다.

6월 25일 안타를 치면서 한화 이글스 팀 통산 39,000안타를 달성했다. 반등은 꿈도 못 꿀 것 같던 시즌 초의 분위기와는 달리 조금씩 반등하는 중.

6월 26일 3회 1사 2,3루에서 2타점 적시타를 포함해 4타수 2안타 2타점을 기록하여 여전히 좋은 타격감을 이어가고 있다. 시즌 성적이 너무 개판이라 눈에 안 띄는데 6월 한달 성적이 OPS 9할로 어느 팀에 가도 주전은 가볍게 먹을 수준이며 한용덕 감독 경질 후 성적이 김태균 부활급이라 진지하게 한용덕 감독과의 상성이 안 좋았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물론 단기간 오버런하는 것일수도 있고, 여러 변수가 있어 어느정도 걸러 들어야 하겠지만 그만큼 페이스가 좋긴 하다. 인터뷰로 정경배, 정현석 코치가 하체 위주의 스윙을 하도록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고 밝혔다.

2.3. 7월

7월 1일 KIA전에서 1루수로 출장했으나 타격 밸런스가 좋지 않았는지 1회부터 1사 1, 3루에서 병살을 치는 등 4번타자임에도 5타석동안 4타수 무안타 1삼진을 기록하고 노태형과 교체되었다. 2015년 8월 27일 NC전 이후 무려 5년만의 희생번트[5]를 대긴 했지만, 9회초 2점차에서 신인 정해영에 무기력하게 3구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나면서 팀의 끝내기 패배에 기여했다. 희생플라이 하나 못 쳐주면서 전날 2홈런 5타점을 친 동갑내기 친구와 비교당하는 수모까지 당했다. 진지하게 내년 개막식에서 은퇴식을 치러줘야 할 듯.

7월 2일에도 3타수 3삼진으로 부진했다.

7월 3일 두산전에서 선취점을 가져오는 적시타와 볼넷으로 멀티출루를 하며 활약했으나 팀은 2대 1로 지고말았다.

7월 4일 두산전 3타수 무안타 2타점으로 땅볼로만 2타점을 올렸다.

7월 8일 롯데전 4타수 1안타 2타점을 기록했고, 팀은 2대6으로 패했다. 타점을 기대할 만한 선수가 82년생 1루수 딱 하나뿐이라는 게 참으로 암울한 팀의 현 현신을 보여준다.

7월 22일 1타수 무안타 2볼넷 1타점을 기록했다. 양현종을 상대로 얻어낸 밀어내기 타점이 팀의 유일한 점수였고 팀은 1대 2로 지고 말았다.

7월 24일 SK전에서 통산 2,200안타를 기록했지만, 팀이 4대 7로 패배하면서 스탯타밖에 모르는 똑딱이라는 비아냥만 듣는 신세가 되었다.

7월 29일 삼성전에서 5타수 3안타 1타점 2득점으로 팀의 12대 7 대승을 견인했다.

7월 30일 삼성전에서 2타수 무안타를 기록했다.

7월 31일 LG전에서 4번 타자 1루수로 출장해 오랜만에 2루타를 치며 4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9회말 1사 2루에서 안타성 타구를 잡아낸 뒤 바로 2루에 던지며 더블 플레이를 만드는 등 수비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다.

2.4. 8월 이후

8월 9일 대전 kt전 4타수 1안타[6] 2삼진을 기록했다.

8월 15일 3타수 무안타를 기록하는 등[7] 4번 타자로서 위압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다가 8월 16일 왼팔꿈치 충돌증후군으로 1군에서 말소되었다. 김태균의 부재 기간동안 4번 타자 자리는 여러 사람에게 번갈아가면서 주어졌으나 최종적으로는 반즈에게 주어지는 쪽으로 굳어지는 분위기이다.

한참 재활에 신경쓰던 도중 신정락의 코로나 확진으로 2군 및 육성 / 재활군 전원이 자가격리에 들어가게 되었고 이로 인해 훈련 루틴이 끊어지며 복귀에 차질이 빚어지게 되었다.

10월 14일 아직 재활이 다 끝나지 않았다는 소식이 최원호 감독 대행을 통해 전해졌다. 사실상 시즌 아웃.

3. 은퇴 선언

선수 경력 문서에 쓰여 있듯 10월 21일 은퇴를 선언했다.

4. 총평

결국 2018 시즌부터 보이던 에이징 커브가 극에 달해 터진 시즌이었다. 그래도 작년엔 투고타저 속에서 한화 타자 중 유일하게 3할 타율이라도 가져갔지, 이번 시즌에 김태균이 얻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사실상 김태균의 커리어 로우이자 최악의 시즌이라도 봐도 무방하다. 전성기 시절의 선구안과 정확성, 파워는 온데간데 없어져 버렸고 War은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등 과거의 김태균이라고는 볼 수 없는 성적을 기록한 채로 선수 생활을 마감하게 되었다.

결국 시즌 말미 은퇴를 선언하면서 아쉽게 선수 생활을 마치게 되었다.


[1] 이후 개막전을 승리하면서 2020년 첫 타점과 결승타를 가져갔다.[2] 김회성도 타격감이 썩 좋지않은데다가 최승준은 2군에서는 성적이 좋아도 1군에서는 어떨지 모른다. 물론, 어차피 코너내야 자원들이 모조리 타격감이 안좋은가운데 김회성은 몰라도 최승준은 등록한 김에 한번 써볼만하긴 하다.[3] 해설도 2회 출루를 실책으로 착각하고 3번째 안타를 쳐냈을 때에서야 이번 시즌 최초로 구창모에게 멀티히트를 기록했다고 이야기했을 정도. 외야수에겐 실책이 잘 주어지지 않기에 나온 해프닝으로 보인다.[4] 물론 야구계에 몸담고 있는 선수나 선출 야구인들이 좁은 사회에서 대놓고 '다 항명했소' 드러낼 리는 없고, 팀이 20연패를 바라보는 지경이라 별별 추측들이 나돌기에 그냥 썰로 넘기는 게 속편하다. 다만 팬들도 콕 집어 항명했던 선수들을 추측하고 있고, 19시즌 여러 경로로 팀 내 갈등이 드러났던 만큼 한용덕이 감독으로서 선수단 장악에 실패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5] 벤치 지시는 아니었다고 한다.[6] 이후 은퇴를 선언하며 이 안타가 마지막 2,209안타가 되었다.[7] 2020년을 끝으로 은퇴하게 되면서 이날 기록한 3루 땅볼이 현역 마지막 타석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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