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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0-08 06:06:54

김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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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昌永
파일:김창영.png
창씨명 金光昌永
출생 1891년 10월 4일
평안북도 강계군
사망 1967년 4월 2일 (향년 75세)
학력 평양고등보통학교 (졸업)
리츠메이칸대학 (법과 / 학사)
약력 금산군수
강원도·전라북도 경찰부 경무과 경시
전라남도 산업부장·광공부장
경성부 부부윤 겸 기획실장
1. 개요2. 상세3. 주요 친일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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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제강점기의 친일 관료·경찰. 미군정의 관료.

2. 상세

1891년 10월 4일 평안북도 강계군에서 태어났다. 평양고등보통학교 사범과를 졸업하고 강계공립보통학교에서 훈도로 있다 일본으로 유학, 1916년 리츠메이칸대학 법과를 졸업했다.

졸업 후 귀국하여 강계군 공북면 면장[1]을 지내다 경찰계에 투신[2], 강원도전라북도의 경찰부 경무과에서 경시로 근무했다. 1933년 전라북도 금산군[3]가 되었고 1937년 만주로 전입[4]하여 만주국 치안부에서 근무했다. 1943년 만주국 국무원 총무청 관방 참사관으로 승진했다.

1943년 귀국하여 전라남도 산업부 및 광공부 부장을 역임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자 당시 경성부윤이었던 일본인 쓰지 게이고(辻桂五)가 업무를 놓으면서 그가 경성부윤으로 추대되어 사무를 인계받아 경성부 행정을 관장했다. 미군정이 주둔하면서 경성부 민정관으로 전직되었고, 이후 경성부 부부윤(부시장) 겸 기획실장으로 임명되었다.

1949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체포되어 '공민권정지 3년'을 선고받았다.

1967년 4월 2일 돈암동 자택에서 향년 76세로 사망했다.

3. 주요 친일 행적


[1] 강계군수 유진호의 추천[2] 평안북도 지방과장 다케이가 강원도 경찰부장으로 전직하면서 추천하여 데려감[3] 경찰 출신 가운데 근무 성적이 좋아 군수로 영전한 것[4] 만주 거주 조선인들을 관리할 책임자로 이범익 등과 함께 선발됨.[5] 결국 실패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