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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09 21:47:43

김용만(가수)

<colbgcolor=#595959><colcolor=#FFF> 김용만
金用萬 | Kim Yong Man
파일:김용만 가수.jpg
출생 1933년 1월 22일 / 10월 27일 [1]
경기도 경성부 종로방
(現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5가)
사망 2024년 9월 27일 (향년 90~91세)
종교 불교
가족 아버지 김대근, 동생 김용남, 아들 김계홍
직업 가수, 작곡가, 작사가, 영화배우
데뷔 1953년 <남원의 애수>

1. 개요2. 생애3. 드라마4. 영화5. 대표곡6. 수상7.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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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가수.

2. 생애

1933년 前 경기도 경성부 종로방, 現 서울특별시 종로구에서 경기 민요를 하는 국악인 김대근 선생의 5남 4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여담으로 김용만 선생의 셋째 동생인 김용남 선생 또한 대금 연주와 악기 제작까지 해온 국악인으로서 음악가 집안이다.

1953년, 그는 남원의 애수 라는 곡으로 처음 가수로서 데뷔했으며, 그의 대표곡이자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은 히트곡으로 남원의 애수, 회전의자, 청산유수, 효녀심청, 청춘의 꿈 등이 있다.

작사 • 작곡가로서도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수많은 명작을 남겼으며, 「잘 있거라 부산항」, 「못난 내 청춘」, 「왈순 아지매」, 「행운을 드립니다」, 「두 마음」, 「명동 블루스」, 「나비야 청산가자」, 등 100여곡 이상을 직접 작사 • 작곡 하였고 희극인 서영춘, 영화배우 김희갑, 가수 오기택, 손인호, 황금심, 이미자, 이금희, 김세레나, 이명주, 김용임, 남미랑, 차은희, 박가연, 박지연, 위키리, 나비소녀 (나비자매), 강병철과 삼태기 등이 대거 참여했다.

그는 가수로서 외에도 영화 계에서도 활발히 활동했으며 「월하의 공동묘지」를 통해 영화 음악 감독으로 데뷔한 후에 단역 배우로도 활동하면서 수많은 영화 주제가를 불러 인기를 얻었다.

구순이 넘은 상당히 고령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건강하고 정정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몸 관리를 매우 잘 했는지 겉으로는 전혀 90대로 안 보일 정도로 엄청난 동안이며,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도 가요무대와 같은 음악 프로그램에 꾸준히 출연하는 등 앨범만 발매하지 않았을 뿐 현역으로 활발히 활동했다.[2]

2024년 9월 27일, 91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여담으로 그가 별세하기 대략 한 달 전 쯤에 부인과 사별했는데 사별한 뒤에 안타깝게도 그의 건강이 급격하게 나빠졌다고 한다. #[3]

3. 드라마

4. 영화

5. 대표곡

6. 수상

7. 여담



[1] 호적상 1935년 출생.[2] 그의 마지막 방송 활동은 2024년 7월 8일 방송분에 출연한 KBS 1TV 프로그램 가요무대 (1857회). #[3] 다수의 기사나 뉴스 같은 곳에서는 호적 상의 나이 때문인지 90~91세가 아닌 향년 89세로 표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