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은희 車銀姬 | |
본명 | 최은섭 (崔恩燮) |
출생 | 1937년 9월 15일 |
서울특별시 중구 장충동 | |
사망 | 2023년 10월 29일 (향년 86세) |
학력 | 데레사여자고등학교 (졸업) |
데뷔 | 1956년 ‘한 많은 오륙도’ |
약력 | 부산연예협회 가수분과 위원장 현인기념사업회 부회장 부산 양로원 회장 |
가족 | 남편 이춘식, 슬하 2남 1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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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가수.2. 생애
그녀는 1937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부터 노래를 즐겨불렀다. 이후 숙명여중 재학 시절 한국전쟁이 터져 부산으로 피란을 떠났다. 그리고 고등학교 3학년 때 유명 아코디언 연주자 심성락의 권유로 콩쿠르에 나가 '아메리카 차이나타운'이라는 노래로 1등을 따냈다. 이런 그녀는 고교 졸업 후 HLKB[1] 전속가수로 발탁돼 부산·경남 지역을 돌며 공연을 펼쳤다. 이때 그녀가 1등을 차지한 콩쿠르의 심사위원을 맡았던 작곡가 이재호가 '차은희'라는 예명을 지어줬다. 그녀는 1956년 '한 많은 오륙도'로 정식 데뷔하였고 '꽃 파는 차은희'(1960)에서 볼 수 있듯 자신의 이름 석 자를 노래 제목에 넣을 정도로 큰 인기를 자랑했다. 그녀는 1962년 그동안 몸담고 있던 신세기레코드사를 떠나 아세아레코드사로 전속을 옮겼다. 아세아는 ‘보이소’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신세기 영업부장 최치수가 설립한 회사였다. 그녀는 같은 해에 결혼도 하게 되었고 결혼 후 자녀 양육 등을 위해 1965년 취입(신곡 발표)을 중단했다. 이후 간간이 활동을 이어왔고 2020년대에는 투병으로 누워 있다가도 TV에서 임영웅의 목소리가 나오면 '벌떡' 일어날 정도로 임영웅을 무척 좋아했다. 그녀는 "평생 본 가수들 가운데 표정이나 표현력이 최고다. 선배로서 기회가 된다면 용돈이라도 주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3. 사망
2023년 10월 29일 지병으로 사망했다. 향년 86세.[1] 現 KBS 부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