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즌 전
마무리 훈련과 스프링캠프를 부상 없이 소화하면서 LCK 타선의 부활을 기대하게끔 만들었던 김상현은 그러나 시범경기에서 최악의 타격감을 보이면서 좀처럼 회복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과거 LG에 있었던 시절 타격코치였던 김용달과 상극을 보였던 적이 있었던지라 팬들이 우려를 씻었던 상황. 게다가 김주찬의 영입으로 인해 이용규-김주찬 주전이 확정된 상황에서 남은 외야 수비 한 자리를 놓고 나지완-김원섭-신종길과 자리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개막 엔트리에는 들기는 하였지만 아직까지는 의문인 외야 수비능력으로 인해 대타로만 나왔다.2. 3월 ~ 4월
대타 및 대수비로 나옴에도 여전히 타격감이 올라오지 않았던 김상현은 4월 4일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대타로 나와 드디어 시즌 첫 안타를 신고했다.4월 18일 무등 야구장 LG 트윈스전에서 우중간쪽 2루타를 날리며 타격감이 회복되기 시작했고, 우익수로 출장해 보살을 2개나 기록하는 등 수비에서도 좋은 활약을 하였으나 팀은 13:12로 졌다.
4월 21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 SK 와이번스전에서 팀이 5회초 최희섭의 솔로 홈런으로 1:0으로 리드하기 시작한 무사 1루 상황에서 마수걸이 투런 홈런을 터뜨렸다. 외야 뒤쪽 잔디석에 꽂힐 정도로 큰 타구를 날리며 장타력이 여전함을 과시했으며, 팀은 9:0으로 크게 승리했다.
4월 30일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두산 베어스전에서 3:0 3회초 2사 1루에서 좌측 담장을 넘기는 투런 홈런을 때렸고, 3회말 5:2 2사 만루에서는 이원석의 싹쓸이 적시타가 될 수 있었던 타구를 점프캐치로 잡아내며 MVP급 활약을 했다.
3. 5월
그런데 5월 6일, 뜬금없이 김상현, 진해수 ↔ 송은범, 신승현 트레이드로 SK 와이번스로 팀을 옮기게 되었다. 진해수도 함께 이적했으며, 대신 KIA로 온 선수는 신승현, 송은범. 팀에 대한 충성도가 높았던 선수였고, 2009년 V10의 주역이었기 때문에 많은 KIA팬들은 슬퍼했지만, 그래도 트레이드 자체는 KIA가 잘 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김주찬의 복귀로 미어터질 외야를 정리하고, 대신 빈약한 불펜진을 보강했기 때문. 적어도 이 당시에는 그랬다.[1]트레이드 소식을 당일 아침에 전달받았던 김상현은 매우 씁쓸했다는 입장이었고, 안타까운 것을 떠나 그야말로 멘붕 상태였다고.[2] 하지만 KIA에서는 외야가 포화상태라 2009년 정도의 임팩트가 없다면 주전 확보가 어려운 반면, 최정 말고는 이렇다 할 클린업이 없는[3] SK에선 주전 자리가 보장된다는 점에서 김상현에게는 또다른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5월 7일, 두산전에 4번타자로 선발출장해서 1회말에 볼넷을 따내고 조인성의 안타 때 홈을 밟으며 이적 후 첫 득점에 성공하고, 2회말에는 2사 1루 상황에서 우전안타를 기록한다. 비록 4회말 무사 만루상황에서 유격수 뜬공으로 물러났지만 6회말 선두타자로 김태영[4]에게 안타를 뽑아내며 멀티히트를 기록한다. 그리고 운명의 8회말. 무사 1루 상황에서 정재훈의 8구째 공이 높게 형성되자 김상현이 전력으로 휘두르고 방망이를 던졌다. 3:8로 달아나는 쐐기 투런포가 터져버렸다. 주먹을 불끈쥐며 베이스를 돌고,
이후 508 대첩에서 희대의 역전승이 나오면서 확실히 팀 타선에 활력소를 불어넣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본인도 팀에 잘 적응한 듯하다.
하지만 SK 이적 이후의 김상현의 성적은 좋지 아니하였고, 오히려 KIA에서 이적하기 전보다 타율이 더 내려간 상태이다. 기존에 비교적으로 하위타선에 배치되면서 타선을 뒷받침하던 역할을 하던 것이 4번타자로, 더군다나 이만수 감독이 김상현에게 홈런타자로써 큰 스윙을 주문하면서 김상현이 심리적으로 압박을 받았다는 설이 있다.
5월 16일 친정팀 KIA 타이거즈를 상대로 오랜만에 좋은 모습을 보였다. 5타수 2안타 2타점.
그다음달인 17일, 문학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전에선 4타수 3안타(2루타 2개) 1타점을 기록하며 맹활약 하였다. 팀도 4대3으로 승리. 이후로도 연속 안타를 치는 등 서서히 타격감이 오르고 있으며 타율도 2할 초반에서 2할 7푼까지 올라섰다.
4. 6월
홈런을 못 치는 등 부진에 시달리다가, 결국 7일에는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까지 되었다. 그러나 9일 한화전에서는 4타수 2안타를 기록하였으나 이재영이 핵폭탄을 터뜨리는 바람에 패배.11일 두산 베어스전 8회초에 오랜만에 홈런포가 터졌다!! 시즌 4호 솔로홈런으로 팀과 에이스 김광현을 구해낸 솔로포였다. 팀은 이날 5:7로 승리.
그러나 다시 선행주자를 사살하고 병살타 코스로 타구가 날아가서 SK 와이번스 갤러리에서 까이고 있다.
6월 한 달 동안 0.213의 낮은 타율과 2홈런 7타점의 성적[5] 으로 SK의 추락에 일조했다. 그지가 6월에만 3할, 5홈런 24타점으로 제 역할을 다 한것과 비교되는 성적이다. 5월달과 마찬가지로 이만수감독의 과도한 믿음이 선수에게 악영향을 준 것이라는게 팬들의 생각.
5. 7월
2일 친정팀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 8회 한동민의 대타로 나와 병살을 치며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결국 7월 7일 한화전을 앞두고 조인성, 나주환과 함께 2군으로 내려갔다. 한편 그 경기는 9월 21일로 우천 순연되었다.여기에 7월 11일, KIA 구단 홈페이지의 호랑이 사랑방에 송도 2군경기를 관전하러 온 KIA 팬에게 KIA팬임을 먼저 알아보고 기아의 김상현으로 싸인을 해줬다는 글이 올라오면서 SK 팬들의 복장을 뒤집어 놓았다. 여러 정황 증거와 SK 프런트의 확인 결과 사실로 판명되었고, 프런트는 SNS를 통한 간접 사과로 논란을 무마함으로써 김상현 본인에게 제대로 사과하게 하고 징계를 내리라는 팬들의 의견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모습을 보였다.
분노한 팬들은 프런트에서 관리하는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털며 분풀이를 하는 중.
이번 사태는 프로 선수가 소속 팀을 공개적으로 부정했으며[6] 그에 따른 적절한 징계가 일벌백계로 이루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방관하는 프런트의 행동은 팬들을 분노하게 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모기업의 이미지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건임에도 특정 팀에게 호의적인 언론과 사태를 대충 무마하려는 SK 프런트의 방관자적 태도는 지탄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
몇 년 후 사인을 받았던 팬에 대한 기사가 올라왔는데, 본인도 일이 이렇게 커질 줄 몰랐다며 미안했다고 한다. 사건과는 별개로 해당 인물은 KIA 타이거즈의 열렬한 팬으로, 700여개가 넘는 사인볼을 수집했다고 한다.
6. 8월
8월 13일 SK 대 KIA 문학경기에서 1회초 김광현이 난조에 빠져 만들어 준 만루 상황에서 이범호가 친 홈런성 타구를 담장 위로 글러브를 들어올려 잡아내는 환상적인 호수비로 만루홈런을 희생플라이로 바꾸어놓았다. SK팬들은 환호하며 "오늘은 병살타를 쳐도 용서해 주겠다"며 일일 까방권을 주었다. 경기는 9:2로 SK의 승리.[7]그러나 그 경기 외에는 별다른 활약이 없었다.
7. 9월
9월 들어서도 성적은 오를 기미를 보이지를 않는 상황이다. 9월 성적은 타율 2할에 45타수 9안타 2타점 2득점 13피삼진 2병살로 홈런이나 장타는 전혀 없이 꼴아박았으며, 타율도 2할 3푼대로 떨어진 상황.8. 총평
시즌 최종 성적은 113경기 322타수 타율 0.236 76안타 7홈런 37타점 39득점으로 제대로 꼴아박았다. 특히 병살은 17개로 리그 4위이며 팀내 압도적 1위[8]인데, 18개를 찍은 공동 1위 3명은 모두 350타수 이상을 찍었다. 병살타 10위권의 선수들 중 350타수 미만 타자는 김태균과 김상현밖에 없는데, 김태균을 김상현과 비교하기엔 너무 차이가 많이난다 삼진도 1위 최정 다음으로 많다.[1] 일부 트레이드를 반대하던 쪽에서는, V10의 일등공신이자 팀내 충성도가 높던 선수(+부친상으로 안 그래도 멘탈이 어수선한 선수)를 무턱대고 다른 팀으로 보내면 팀케미가 엉망이 될 거라는 걱정을 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이 트레이드를 기점으로 KIA는 추락하기 시작했으니,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 된 셈이다.[2] 실제로 트레이드 날 당일 광주 KBS에서 방송된 베이스볼 매거진 야호에서 KIA 담당기자가 김상현에게 전화했을 때 첫 대답이 "친구야, 아프다"였었고, 공동진행자인 김봉연 교수 역시 같은 등번호를 달았던 군산상고 후배에게 기회가 많이 주어지지 않고 다른 팀으로 옮겨가는 것에 안타까워했다. 가족들이 이미 광주에 정착한 상태였고, 더 이상 연고지 팀을 떠나기 싫었던 본인 입장에서는 더 힘들었을 것이다.[3] 박정권, 안치용은 시즌 시작부터 부진하고 있고, 한동민이나 조성우는 이제 막 싹트기 시작한 유망주다. 수비 부담이 큰 포수인 조인성이나 정상호에게 클린업을 맡기기에도 무리가 있다.[4] 2013시즌 종료후 김상현에서 김태영으로 개명하였고 KIA로 이적하였다.[5] 20타수 적게 출장한 박재상이 6월에 1홈런 6타점이었다. 게다가 박재상은 상/하위타선에 있고 김상현은 클린업에 중용되었는데도 비슷한 성적이라는 것은...[6] 선수 본인의 생각이 어떻든 간에 소속 팀을 부정한 것은 프로 의식의 부재라고밖에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전 소속팀과 현 소속팀 팬 모두에게 사랑받았던 이 분과 비교해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7] 사실 SK에서 장기간의 활약도 없었고 이후에 그리 오래 남아 있지 못했던 김상현에 대해 큰 애정은 남아 있지 않았던 SK팬들이지만, 그의 이적 첫 경기와 이 경기까지 두 경기만은 대부분의 팬들이 기억하고 있다. 특히 SK의 영원한 아이돌 김광현을 크게 구원했던 이 호수비는 수많은 SK팬들이 김상현에 대해 가지고 있는 극소수의 매우 좋은 기억이다. SK에서 타팀으로 이적한 선수들 중에 김상현이 성적이나 경력(SK의 2009년 준우승에 영향을 미친 선수들을 살펴 볼때, 당시 우승팀 기아의 홈런왕이었던 김상현 역시 큰 몫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대비 비호감 이미지가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8] 2위는 최정으로 10개. 3위는 김강민의 9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