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김복수 金福綏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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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김복완(金福緩) |
출생 | 1872년 12월 2일 |
사망 | 1950년 6월 10일 (향년 77세) |
경력 | 애국금차회 회장 |
가족 | 배우자 윤덕영 |
비고 | 친일인명사전 등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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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제강점기의 친일반민족행위자. 이완용과 함께 나라를 팔아먹은 1등 공신 경술국적 윤덕영의 아내로, 순정효황후의 큰어머니이기도 하다. 그녀 역시 매국노인 남편을 따라 친일단체 애국금차회 회장을 맡으면서 일제의 침략전쟁을 지원하는 등 친일 활동에 앞장섰다.2. 생애
1872년 12월 2일에 태어났다.1928년 11월 쇼와 덴노 즉위기념 대례기념장을 받았다. 1937년 8월 중일전쟁을 지원하기 위해 조직된 친일단체인 애국금자회 회장을 맡았다.[1] 단체 결성 직후인 9월 애국금차회 간부들과 함께 용산 육군병원을 방문하여 중일전쟁에서 부상을 입고 후송된 일본군들을 위문했다.
활동 시기 당시 김복수를 비롯한 애국금차회 간부들은 조선군사령부 후카자와 중장에게 금비녀와 금반지 등을 증정했는데, 1937년 11월 친일 화가 김은호가 이 장면을 「금차봉납도(金釵奉納圖)」라는 작품으로 그려 조선총독 미나미 지로에게 증정했다.
『매일신보』 1938년 1월 1일자에 게재된 「조선인의 진로와 각오」라는 설문에 애국금차회 회장으로써 "조선 1천만 여성이여 규방에서 가두로, 애국 대행진하라"라고 답변했다. 『경성일보』 1939년 7월 5일자에 게재된 「가정, 사변 2주년을 앞두고」라는 칼럼에 "몸뻬 모습으로 감격, 금차회의 활동도 철저"라고 소감을 발표했다. 1940년 11월 기원2600년축전기념장을 받았다.
해방 이후 1950년 6월 10일 향년 7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사후인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편찬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