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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6-24 20:52:58

김광숙(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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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화* 신광호 장룡식 채주혁 구승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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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진혁 김주혁 최기혁* 현송월 황진영
김광숙* 전혜영 리분희 조금화 윤혜영
렴청 문경진* 조청미 최삼숙 서은향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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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숙
金光淑 | Kim Kwang Suk
파일:김광숙1만명.jpg
출생 1964년 1월
평양시 대성구역
사망 2018년 1월 14일 (향년 53~54세)
국적
[[북한|]][[틀:국기|]][[틀:국기|]]
전직 보천보전자악단 가수
평양학생소년궁전 예술창조과 성악지도교원
주요서훈 공훈배우, 인민배우
정당

파일:조선로동당 로고타입.svg
학력 평양인흥중학교
금성학원(북한)[1]
가족 시아버지 전동우[2]
배우자 전권[3]

1. 개요2. 생애3. 대표곡

[clearfix]

1. 개요

파일:20Ye.jpg
파일:김광숙비둘기.jpg
북한의 가수. 보천보전자악단의 대표 가수였다.
1980년대 후반~1990년대 북한의 대표 가수였으며 단연 시대를 대표했던 가수이다.

2. 생애

파일:광후.jpg
20대의 김광숙
파일:Kimkwangsuk.jpg
50대의 김광숙
1964년 평양시에서 태어났다.
학생 시절부터 노래에 소질을 보여 평양학생소년예술단에서 활동했으며 1983년 일본 공연에 참가했다.

평양인흥고등중학교를 졸업하고 평양청년예술단에서 성악배우로 활동하다가 1986년 보천보전자악단에 입단했다.
1988년 공훈배우 칭호, 1992년 인민배우 칭호를 받았다.
80년대 북한에 전자음악 열풍을 불러일으킨 원조 가수이며 바로 다음해 전혜영이, 1990년대 초반 리경숙, 리분희, 조금화가 등장하여 전자음악 열풍을 일으켰다.

1983년 평양학생소년예술단 일본공연, 1991년 보천보전자악단 일본공연에 참가했다.
가수 생활을 은퇴하고, 2011년 왕재산경음악단 공연, 2015년 추억의 노래 등에 출연하며 평양학생소년궁전 예술창조과 성악지도교원으로 있다가 심장마비로 2018년 1월 14일에 향년 54세로 눈을 감았다.

다음날인 1월 15일 로동신문조선중앙텔레비죤에 부고가 났고 김정은이 직접 조화를 보냈다고 보도되었다.
외부 세계에는 전혜영, 리경숙이 잘 알려져 있지만 북한 주민들에게는 이들보다 인기 많은 가수였다고 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3. 대표곡

파일:김광숙1집.jpg
1991년 1집 앨범


[1] 당시 금성고등중학교[2] 김일성상을 받은 북한의 대표적 시인, 김광숙의 노래도 몇곡 작사했다[3] 1965년생으로 前 보천보전자악단의 피아노 연주자이자 現 왕재산예술단 당비서[4] 영화 '민족의 태양' 주제가, 역시 영화음악이라 본인이 원곡이 아니다.[5] 영화 '생의 흔적' 주제가, 최삼숙 원곡[6] 1960년 창작된 노래를 편곡[7] 1966년 창작된 노래를 편곡[8] 1972년 창작된 노래를 편곡, 혁명가극 음악[9] 1986년에 독일의 전자 음악 그룹 모던 토킹이 부른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