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피드 국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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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피드족 3대 군주 Giesmus | 기스무스 | ||
제호 | 한국어 | 기스무스 |
라틴어 | Giesmus | |
생몰 년도 | 미상 ~ 480년대 | |
재위 기간 | 미상 ~ 480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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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역사 기록에 전해지는 게피드족 3번째 군주.2. 행적
기스무스에 대한 기록은 일천하다. 요안니스 말라라스와 참회자 테오파네스에 따르면, 문두스는 게피드 왕 기스무스의 아들이라고 한다. 요르다네스에 따르면, 문두스는 훈족의 왕 아틸라의 친척이라고 한다. 또한 마르켈리누스 코미투스에 따르면, 문두스는 고트족 출신이라고 한다. 현대 학계에서도 문두스 가문의 혈통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문두스가 게피드족 출신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그의 아버지 기스무스는 아르다리크 왕과 아틸라의 딸 사이의 아들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문두스가 훈족 출신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기스무스가 아틸라의 아들이며, 그의 누이는 아르다리크의 아내라고 추정한다.454년 아르다리크가 네다오 전투에서 훈족을 상대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고 게피드 왕국을 건국했다. 아르다리크 사후 기스무스가 뒤를 이었지만, 이 사건이 언제, 어떤 상황에서 발생했는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동로마 제국 측 기록에 따르면, 게피드족은 5세기 후반에 로마 제국의 속주였던 다키아와 다뉴브 강과 티서 강 사이의 영토를 소유했다고 한다.
게피드족은 수에비족, 스키리족, 사르마티아 및 여러 종족이 형성한 연합에 가담해 판노니아에 정착한 동고트족을 상대로 전쟁을 벌였다. 이 전쟁은 468년 볼리아 전투에서 동로마 제국과 연합한 동고트족이 승리하면서 종결되었다. 473년 동고트 지도자 테오데미르가 동로마 제국이 보조금 지급을 지불한 것을 보복하기 위해 일리리아로 쳐들어가면서 발칸 반도에 혼란이 발생하자, 게피드족은 그 틈을 노려 이탈리아와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잇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도시인 시르미움을 점령했다. 이 일련의 사건은 기스무스의 치세에 벌어졌을 가능성이 있으나 분명하지 않다.
현대 학자들은 기스무스가 480년대에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의 아들 문두스는 아직 어렸기에, 기스무스의 처남인 트라우스틸라가 게피드 장로들의 선택을 받아 왕위에 올랐다. 그 후 문두스는 504년 트라우스틸라의 아들 트라사리크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켰다가, 나중에 동로마 제국에 귀순한 뒤 유스티니아누스 1세에 의해 일리리쿰의 마기스테르 밀리툼에 선임되었고, 니카의 반란 진압에 일조했으며, 535년 동고트 왕국과의 전쟁에 참전해 달마티아에서 동고트족을 상대로 살로나를 탈취했다. 536년 동고트군이 아들 마우리키우스를 살해하자 이들을 공격해 격파했지만, 추격하던 중에 전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