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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1-28 02:09:32

금토패문




禁討牌文

1. 개요2. 배경3. 내용
3.1. 패문3.2. 답문
4. 기타

1. 개요

토벌을 금하는 패문[1]이라는 의미다. 임진왜란 당시에 명나라 황제의 선유도사[2]로 왔던 담종인이 보내온 패문으로, 왜군들을 공격하지 말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2. 배경

명(明)은 벽제관 전투에서의 패전 이후로 왜(倭)와의 강화교섭을 추진한다.[3]

담종인은 심유경을 대신하여 1593년 12월부터 거제도 동쪽 웅천의 고니시 유키나가군의 진영에 머물렀다. 1594년 봄이 되자 일본 수군은 진해만 내륙 등지에서 살인·납치·약탈을 일삼았는데, 이를 이순신이 털어버리는 일이 벌어지니, 이것이 제 2차 당항포 해전이다. 이에 겁먹은 왜군이 담종인을 설득하여 "왜군은 싸울 생각이 없으니 왜군에 대한 공격을 중지하고 이만 고이 돌려보내라(??)."는 내용의 패문을 보낸 것이 금토패문이다.

이에 격분한 이순신저 새끼들 순 나쁜 새끼들이니 개소리 하지 말라는 내용의 답서를 보낸 것이 답담도사종인금토패문(答譚都司宗仁禁討牌文)이다.

3. 내용

아래 내용은 패문과 답문의 전문으로, 당시 우의정이었던 약포(藥圃) 정탁(鄭琢)이 《임진기록》(壬辰記錄)에 옮겨적어놓은 이순신의 장계(狀啓) 초본에서 찾아볼 수 있다.[4] 아래 원문 및 번역은 군사편찬연구소에서 배포한 자료를 인용하였다. 임진기록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3.1. 패문

담종인이 조선군에 보낸 패문.

本府齎捧皇帝聖旨, 前來宣諭:

日本諸將莫不傾心歸化, 忠順效誠, 昨已具表奏請, 聽候明旨冊封. 卽具大事委來, 日本各將俱欲捲甲息兵, 盡歸本國. 爾朝鮮亦免兵戈之擾, 獲昇平之樂. 豈非兩國之利益乎. 近據哨報云. 爾朝鮮兵船, 近駐日本之營, 且將伊採柴之人殺死, 舡隻燒毁. 日本諸將俱要出兵, 與爾相殺. 本府與行長將軍, 再三禁止, 故不發兵. 擬合遣牌禁諭, 爲此牌仰朝鮮各官知悉. 爾各兵船速回本處地方, 毋得近住日本營寨, 攪擾生事, 以起釁端. 若爾等回來斫伐竹木, 幷無他意, 斫完速回. 若執迷不省, 駐箚于此, 仍復追殺零倭. 奪取船隻, 本府卽具呈經略宋總督軍門, 顧提督李摠兵劉及移文于爾國王. 嚴行査究. 各官軍召禍起釁之罪, 莫可逭矣. 爾朝鮮各官, 俱通文達理, 暗曉時務者故, 本府謓謓曉諭, 牌到卽具文回報. 須至牌者.

右牌仰朝鮮各陪臣, 準此是如施行牌文.

(번역)

본 도사부에서 황제의 성지[5]를 받들고 와 선유한다[6] :

일본의 장수들은 모두가 온 마음을 다 해 귀화하려 하고 있다. 충순함으로써 진심을 바쳐오면서 어제 이미 표문을 갖추어 주청했고, 지금은 성지의 책봉이 내려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이미 대사를 황제의 뜻에 맡겼기에 일본의 여러 장수들은 모두 무기를 내려놓고 병사들을 쉬게 하여 본국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이제 너희 조선도 전쟁의 소란을 면하고 태평성세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어찌 두 나라 모두에 이익 되는 일이 아니겠는가?

근자에 초소에서 들어온 보고에 의거하면, 너희 조선의 병선이 일본 군영 가까이에 주둔하고서 이채시지(伊採柴之)라는 사람을 죽이고 배도 불태웠다고 한다. 이에 일본의 여러 장수들도 모두 출병하여 너희와 더불어 서로 죽이려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본부와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장군이 재삼 금지한 끝에 군사를 내보내지 않을 수 있었다. 이에 마땅히 패문을 보내어 금지를 고하고자 하니, 이 패문을 조선의 각 관리들은 우러러 받들도록 하라.

너희 각 병선들은 속히 본래의 고장으로 돌아가도록 하고 일본 진영 근처에 진을 치고 어지러이 소란을 일으킴으로써 사단을 만들지 말도록 하라. 만약 너희들이 오고 가며 대나무와 나무나 벨 뿐 별다른 뜻이 없다면 다 베고 난 후에 속히 돌아가도록 하라. 만약 어리석게 깨닫지 못하고 이곳에 주둔하면서 여전히 몇 명 남지 않은 왜인을 추살하고 배를 탈취한다면, 본부에서는 경략 송 총독 군문에 정문을 보내어 이 제독유 총병으로 하여금 너희 국왕에게 이문을 보내어 엄중히 조사토록 할 것이다. 그리되면 각 관군들은 화를 자초하고 불화를 일으킨 죄로부터 도망칠 수 없을 것이다. 너희 조선의 각 관원들은 모두 문리(文理)에 통달하고 시무에 밝은 자들이기에 본부에서 엄중히 고유하는 바이다. 패문이 도착하는 즉시 공문을 갖추어 회보하라. 수지(須至)[7]. 패문을 작성한 자로부터.

이상의 패문을 조선의 각 배신(陪臣)들은 우러러 받들도록 하고, 이에 준거하여 시행토록 하라.

당장 제 2차 당항포 해전만 놓고 보더라도, 일본 수군이 우리 영토 내 민간에 자행한 살육과 약탈이 원인이었음을 기억하자. 특히 이때는 강화교섭이 일어나던 시기였다. 그럼에도 이를 진압한 본국 군대에게 "소란스럽게 사단을 일으키지 말라"는 것은 사건의 본질과 이쪽 입장은 완전히 무시한 처사다. 이에 삼도수군통제사[8]였던 이순신 장군은 전염병으로 10여일 넘게 앓아누워있던 와중에 격분하여 아래와 같은 답장을 보낸다.

3.2. 답문

이순신 장군이 담종인에게 보낸 답문.

朝鮮陪臣等, 謹答呈于天朝宣諭都司大人前.

倭人自開釁端, 連兵渡海, 殺我無辜生靈, 又犯京都, 行凶作惡, 無所紀極. 一國臣民, 痛入骨髓, 誓不與此賊共戴一天. 各道舟艦, 無數整理, 處處屯駐, 東西策應, 謀與陸地神將等, 水陸合攻, 使殘兇餘孼, 隻櫓不返, 擬雪國家之讐怨. 本月初三日領先鋒舡二百餘隻, 將欲直入巨濟, 蕩滅巢穴, 次次殲剿, 俾無遺種, 而倭舡三十餘隻, 聞入固城鎭海之境, 焚蕩閭家, 殺戮遺民, 又多擄去, 輸瓦斫竹, 滿載其舡. 原其情狀, 尤極痛憤. 撞破其舡隻, 追逐其兇徒, 馳報于舟師都帥府, 領大軍合勢直擣之際, 都司大人宣諭牌文, 不意到陣. 奉讀再三諄諄懇懇, 極矣盡矣. 但牌文曰: 日本諸將, 莫不傾心歸化, 俱欲捲甲息兵, 盡歸本國, 爾各兵舡速回本處地方, 毋得近駐日本營寨, 以起釁端云, 倭人屯據巨濟ㆍ熊川ㆍ金海ㆍ東萊等地, 是皆我土. 而謂我近日本之營寨云者, 何也? 謂我速回本處云, 本處地方, 亦未知在何所耶? 慝起釁端者, 非我也, 倭也. 日本之人變詐萬端, 自古未聞守信之義也. 兇彼之徒, 尙不稔惡, 退去沿海, 經年不退, 豕突諸處, 劫掠人物, 有倍前日. 捲甲渡海之言, 果安在哉? 今之講和, 實涉詐僞. 然大人之敎, 不敢違越, 姑寬其限, 馳啓國王, 伏惟大人, 通曉此意, 俾知逆順之道, 千萬幸甚.”

(번역)

조선국의 배신(陪臣=신하)이 삼가 명나라 선유도사 대인 앞에 답서를 올립니다.

왜인들이 스스로 트집을 잡아 군사들을 이끌고 바다를 건너와서 우리의 무고한 백성들을 죽였으며, 또 서울을 침범하여 자행한 흉악한 짓이 끝도 없습니다. 이에 한 나라의 신하와 백성들은 통분이 골수에 사무쳐 이 적들과 같은 하늘 아래 살지 않겠노라 맹서했습니다. 그리하여 각 도의 전함들을 수도 없이 정비하여 곳곳에 주둔시키면서 동서에서 책략으로 호응하고 육지의 신장(神將)들과 함께 수륙으로 합공함으로써 남아 있는 잔당들의 배 단 한 척도 못 돌아가게 하여 나라의 원수를 갚으려 하였습니다.

이달 3일에 선봉선 200여 척을 거느리고 곧장 거제에 들어가 적의 소굴을 소탕하고, 차례로 무찔러 씨조차 남기지 않으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왜선 30여 척이 고성 및 진해 등지로 들어와서 여염집을 불사르고 남아 있는 백성들을 죽였을 뿐만 아니라, 수없이 많은 사람을 포로로 잡아가고 기와를 실어 나르고 대나무까지 베어다 배 한 가득 실었습니다. 그 정상(情狀=사정과 형편)을 따져보자면 참으로 분통이 터집니다. 이에 그 배들을 쳐부수고 흉악한 무리들을 추격한 다음 수군 도수부에 급히 보고하여 대군과 합세해 이끌고 가 곧장 적을 섬멸하려던 차에, 뜻하지 않게 도사 대인의 선유 패문을 받았습니다. 이를 받들어 읽어보니 재삼 간곡하신 깨우침의 말씀이 참으로 극진하였습니다.

다만 패문에서 말씀하시기를 '일본의 장수들은 모두가 온 마음을 다 해 귀화하려 하고 있다. 모두 무기를 내려놓고 병사들을 쉬게 하여 본국으로 돌아가고자 하고 있다. 너희도 각기 여러 병선들을 이끌고 속히 제 고장으로 돌아가고 일본 군사들의 진영 가까이 머무르면서 불화를 야기하거나 혼란을 일으키지 말라.'고 하였는데, 왜인들이 진을 친 채 점거하고 있는 거제·웅천·김해·동래 등은 모두 우리나라 땅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일본 진영에 가까이 가지 말라는 것이 대체 무슨 뜻입니까? 우리에게 속히 제 고장으로 돌아가라 하였는데, 제 고장이란 대체 어디를 말합니까? 명나라 놈아, 상황파악 안되냐?

불화와 혼란을 일으킨 자도 우리가 아니라 왜입니다. 왜인은 권모술수와 거짓에 능하여, 예로부터 신용을 지키는 의로움이 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저 흉악한 무리들이 아직도 악행을 멈추지 않은 채 연안으로 물러나 한 해가 다 가도록 돌아가지 않고 있으며, 이곳저곳을 날뛰며 사람과 재물을 약탈하는 것이 전보나 배나 더하니, 무기를 집어넣고 바다를 건너가고자 하는 뜻이 과연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지금 저들이 강화하겠다는 말은 실로 거짓입니다.

그러나 대인의 뜻을 감히 어길 수 없으니, 우선 시일을 넉넉히 주시면 곧 우리 임금께 급히 보고하도록 하겠습니다. 엎드려 비옵건대 대인께서 이 뜻을 살펴주시어 따르고 거스르는 도리를 알게 하여 주신다면 천 번 만 번 다행한 일이겠나이다.


패문의 내용이 너무 편파적이고 어이가 없었기 때문에 이순신은 답장을 하기에 앞서, 패문을 갖고 온 명나라 병사 두 명을 불러 경위에 대해 물었다는 내용이 임진기록에 전한다. 이에 명나라 병사가 대답하길, '담종인이 작년 11월달부터 강화사절로 와있었는데, 근래에 왜인들이 수군의 위세에 겁내어 상심하고 낙담한 끝에 담종인에게 갖가지로 애걸하므로 패문을 작성했다'는 것이었다. 즉, "황제 폐하의 성지" 운운했으나 왜군 측의 로비에 의한 패문이었다는 소리다.

이에 이순신은 지휘부였던 경략, 제독, 총병에게서 왜인을 참하지 말라는 분부가 없었으며, 다만 담종인이 강화사절로서 패문을 전달한 점, 남해 현령 기효근 또한 패문을 받고 공문을 완성해 이미 답을 보낸 점, 그리고 우리 수군 병력이 아직 결집하지 않아 미처 전세를 갖추지 못한 점 등으로 인해 일단 회답을 써주되 '공세를 멈추지 않겠다'는 뜻을 보였다고 밝혔다.[9]

4. 기타


[1] 원래는 상급 관청이 하급 관청에 전달하는 공문이란 의미. 여기서는 명나라가 조선에 전달하는 공문이다.[2] 병란 등에 있어 백성에게 황제의 훈(訓)을 전달하던 벼슬. 임진왜란 당시 강화사절이라고 생각하면 된다.[3] 1593년은 명/왜 간의 전투소강기이자 강화교섭기였다. 물론 조선군은 피 터지게 싸웠지만. 이때 고니시 유키나가측으로 파견된 것이 바로 심유경이다. 즉, 고니시 유키나가와 함께 거짓 강화를 모의했다고 잘 알려져있는 사건의 배경이 되는 시기이다.비록 허구로 판명났지만 자세한 것은 심유경, 고니시 유키나가, 임진왜란 항목을 참고하자.[4] 2016년 12월에 이순신 연구가인 노승석 여해고전연구소장이 이를 확인하여 『교감완역 난중일기 개정판(도서출판 여해, 이순신 저/노승석 역)』에 실었고, 2020년 1월에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가 임진기록을 완역하여 군사편찬연구소 홈페이지에서 누구나 무료로 열람할 수 있도록 배포하였으니 참고하자. 국방부 보도자료[5] 임금의 뜻(=聖旨)[6] 다만 만력제나 명나라 조정 혹은 파견된 군 지휘부에서 직접 이러한 지시를 내린 것은 아니고, '선유관으로서 왜국과 강화하라는 황제의 뜻을 대신하여 왔으니, 내가 받은 강화교섭권을 행사하겠다' 정도의 의미이다. 이는 뒤에 이순신의 반박문에 드러난 정황으로 유추할 수 있다.[7] 공문의 마지막에 붙는 상투어. 반드시 알아서 시행하도록 하라는 뜻.[8] 오늘날의 해군참모총장에 대입해보자.[9] 이 답문에 원균과 이억기의 이름을 함께 적어넣었다고 돼있다.[10] 징비록, 2014, 구지현 역, 올재클래식스 출판[11] 실제로 이순신도 소수 정찰병력을 매우 잘 활용한 장수이며, 치밀하고 지속적인 정찰활동은 그의 백전백승의 원인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12] 해당 대목은 명나라에서 온 임세록을 평양성에서 접견한 류성룡이 함께 연광정에 올라 왜군의 정찰병을 발견한 후, 임세록이 '뭐 크게 많이 몰려오진 않았나봐?'라는 의미로 던진 말에 대한 대답으로 한 말이다. 물론 척후병 두 세명이 보인다고 실제로 적 병력이 적을 것이라 생각하진 않았을 것이고, 류성룡도 소수 병력으로 정찰하는 게 비겁하다고 생각해서 얘기한 말은 아닐 것이다.둘 다 바보는 아니니까 임세록의 경우, 명나라 조정에서 '왜가 조선을 침략해서 임금도 피난하고 난리라던데? 진짠지 엄살인지, 아니면 설마 얘네 서로 짜고 같이 쳐들어올려는 건지 니가 가서 소상히 조사 좀 해봐'라는 명을 받고 온 관리임을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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