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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토 유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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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금관총의 재구성 - 국립중앙박물관 <금관총과 이사지왕>
1. 개요
일제강점기인 1921년에 경상북도 경주시 노서동의 이사지왕의 무덤인 금관총에서 출토된 고신라시대 말띠꾸미개. 당시 신라인들이 오키나와 지역에서만 서식하는 이모가이(芋貝)라는 아열대 소라고둥을 공수해와 가공하여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이모가이는 일본어로 청자고둥이라는 뜻이다.
2. 내용
사진 출처 : 문화재청 홈페이지 - 월간문화재사랑, 같음이 만든 다름
1921년 금관총에서 금관총 금관 및 금제 관식 등의 여러 황금 유물들과 함께 발견된 고대 한국의 조개 장식품으로, 유물의 제작 연대는 확실치 않지만 대략 5세기 경(서기 400년대)으로 추정되고 있다.
당시 금관총에서는 순금제귀걸이, 금제와 은제 팔찌, 반지 등과 각종 구슬, 금제와 은제의 허리띠, 금동제신발 등의 각종 장신구를 비롯하여, 도검, 갑옷(甲胄), 창신(槍身), 쇠화살촉(鐵鏃), 쇠도끼(鐵斧) 등의 무기류와 말안장금구, 말방울, 말띠장식, 교구, 혁대금구 등의 말갖춤류(馬具類), 신라토기, 목칠기, 유리용기, 쇠솥(鐵釜), 금속제용기, 조개제품 등 많은 유물들이 부장되어 있었는데, 곡옥(曲玉)을 포함한 각종 구슬류만도 무려 3만 점이 넘었으며, 다른 유물까지 합쳐 약 4만점이 넘는 신라시대 화려한 문화재들이 쏟아져 나왔다.한국 미의 재발견 - 고분미술 : 금관총
이 말띠꾸미개는 현 일본 규슈지방 남부보다 더 남쪽바다인 오키나와 인근에서만 서식하는 "이모가이"라는 아열대 고동껍데기를 가공해 만들었다. 원뿔처럼 생긴 "이모가이"는 구멍주변이 편평하고 소용돌이처럼 둥굴게 말려 있는데 이 부분을 다듬어서 장식한 것이다. 금관총 이외에도 황남대총 북분, 천마총 등 신라무덤에서 자주 출토대는 "이모가이"는 4세기~5세기 경 당시 신라인들이 저 멀리 오키나와 주변까지 거친 바다를 뚫고 진출하여 활발한 교역 활동을 벌였음을 증명하는 자료가 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600여년 전에 신라인들이 오키나와 지역의 재료를 수입하여 만들어낸 조개 공예품으로, 천마총 야광조개국자, 황남대총 야광조개국자, 황남대총 남분 앵무조개잔 등과 함께 당시 신라의 조개공예 기술 및 국제 교역 활동에 대하여 연구해 볼 수 있는 자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