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0-13 11:54:34

권영해(독립운동가)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fff><tablebgcolor=#fff> 파일:구미시 CI.svg경상북도 구미시 출신/활동
독립유공자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rowcolor=#000,#fff> 성명 운동계열 훈격
<colcolor=#000> 허위 의병 대한민국장
박희광 만주방면 독립장
권쾌복 학생운동 독립장
장진홍 의열투쟁 독립장
김정묵 임시정부 애국장
송병우 의병 애국장
송세호 국내항일 애국장
이원길 국내항일 애국장
허겸 의병 애국장
허형 의병 애국장
허훈 의병 애국장
이내성 국내항일 애국장
권오환 3.1 운동 애족장
김영득 국내항일 애족장
김종철 광복군 애족장
남상순 국내항일 애족장
육홍균 일본방면 애족장
전재덕 광복군 애족장
장재성 문화운동 애족장
최재화 3.1 운동 애족장
황진박 의열투쟁 애족장
박명언 3.1 운동 애족장
박몽득 국내항일 애족장
박봉술 3.1 운동 애족장
방하영 국내항일 애족장
이상백 3.1 운동 애족장
임봉선 3.1 운동 애족장
장용희 국내항일 애족장
김관묵 3.1 운동 애족장
유경흥 국내항일 애족장
장호관 학생운동 애족장
장병묵 국내항일 애족장
이종식 국내항일 애족장
권영해 3.1 운동 애족장
김의경 3.1 운동 건국포장
박희목 3.1 운동 건국포장
이능학 3.1 운동 건국포장
장병옥 국내항일 건국포장
전용신 3.1 운동 건국포장
허필 만주방면 건국포장
김구하 국내항일 건국포장
임장수 국내항일 건국포장
김구하 국내항일 건국포장
노명일 국내항일 대통령표창
권경보 3.1. 운동 대통령표창
김도길 3.1. 운동 대통령표창
김성윤 3.1. 운동 대통령표창
박근술 3.1. 운동 대통령표창
박명출 3.1. 운동 대통령표창
박삼봉 3.1. 운동 대통령표창
박순석 3.1. 운동 대통령표창
서기옥 3.1. 운동 대통령표창
서천수 3.1. 운동 대통령표창
이영래 3.1. 운동 대통령표창
이윤약 3.1. 운동 대통령표창
임동석 3.1. 운동 대통령표창
임삼선 3.1. 운동 대통령표창
장준현 3.1. 운동 대통령표창
임점석 3.1. 운동 대통령표창
임용섭 3.1. 운동 대통령표창
장주서 3.1. 운동 대통령표창
장영직 3.1. 운동 대통령표창
장상건 3.1. 운동 대통령표창
김종권 일본방면 대통령표창
이소열 3.1. 운동 대통령표창
이범성 3.1. 운동 대통령표창
}}}}}}}}} ||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산남(山南)
본관 안동 권씨
출생 1885년 8월 12일
경상도 대구도호부 달서면 내당동
(현 대구광역시 서구 내당동)
사망 1947년 6월 23일
서울특별시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권영해는 1885년 8월 12일 경상도 대구도호부 달서면 내당동(현 대구광역시 서구 내당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경북 칠곡군 인동면 진평동에 소재한 진평교회(眞坪敎會) 목사로 재직하고 있던 중 3.1 운동 소식을 전해듣고 이상백·이내성 등과 함께 3월 12일에 동민을 규합하여 대대적인 시위를 하기로 결의하였다. 약속한 3월 12일이 되자 미리 준비해 둔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동민에게 배포하고 동리 곳곳에 불을 붙였으며 오후 8시에는 뒷산에서 300여명의 동민을 규합하여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를 주도하다가 강제로 해산당하였다.

그 후 다시 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결심한 그는 3월 14일 오후 9시경에 2백 명의 동민과 더불어 뒷산에서 다시 독립만세를 부르고 시위를 주도하다가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그 후 1919년 4월 2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형을 언도 받아 1년여의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일제 형사의 감시를 받으며 어렵게 지내다가 8.15 광복 후 서울에서 조용히 살았고 1947년 6월 23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권영해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