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tablebordercolor=#fff><tablebgcolor=#fff> | 경상북도 구미시 출신/활동 독립유공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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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000> 허위 | 의병 | 대한민국장 | |
박희광 | 만주방면 | 독립장 | |
권쾌복 | 학생운동 | 독립장 | |
장진홍 | 의열투쟁 | 독립장 | |
김정묵 | 임시정부 | 애국장 | |
송병우 | 의병 | 애국장 | |
송세호 | 국내항일 | 애국장 | |
이원길 | 국내항일 | 애국장 | |
허겸 | 의병 | 애국장 | |
허형 | 의병 | 애국장 | |
허훈 | 의병 | 애국장 | |
이내성 | 국내항일 | 애국장 | |
권오환 | 3.1 운동 | 애족장 | |
김영득 | 국내항일 | 애족장 | |
김종철 | 광복군 | 애족장 | |
남상순 | 국내항일 | 애족장 | |
육홍균 | 일본방면 | 애족장 | |
전재덕 | 광복군 | 애족장 | |
장재성 | 문화운동 | 애족장 | |
최재화 | 3.1 운동 | 애족장 | |
황진박 | 의열투쟁 | 애족장 | |
박명언 | 3.1 운동 | 애족장 | |
박몽득 | 국내항일 | 애족장 | |
박봉술 | 3.1 운동 | 애족장 | |
방하영 | 국내항일 | 애족장 | |
이상백 | 3.1 운동 | 애족장 | |
임봉선 | 3.1 운동 | 애족장 | |
장용희 | 국내항일 | 애족장 | |
김관묵 | 3.1 운동 | 애족장 | |
유경흥 | 국내항일 | 애족장 | |
장호관 | 학생운동 | 애족장 | |
장병묵 | 국내항일 | 애족장 | |
이종식 | 국내항일 | 애족장 | |
권영해 | 3.1 운동 | 애족장 | |
김의경 | 3.1 운동 | 건국포장 | |
박희목 | 3.1 운동 | 건국포장 | |
이능학 | 3.1 운동 | 건국포장 | |
장병옥 | 국내항일 | 건국포장 | |
전용신 | 3.1 운동 | 건국포장 | |
허필 | 만주방면 | 건국포장 | |
김구하 | 국내항일 | 건국포장 | |
임장수 | 국내항일 | 건국포장 | |
김구하 | 국내항일 | 건국포장 | |
노명일 | 국내항일 | 대통령표창 | |
권경보 | 3.1. 운동 | 대통령표창 | |
김도길 | 3.1. 운동 | 대통령표창 | |
김성윤 | 3.1. 운동 | 대통령표창 | |
박근술 | 3.1. 운동 | 대통령표창 | |
박명출 | 3.1. 운동 | 대통령표창 | |
박삼봉 | 3.1. 운동 | 대통령표창 | |
박순석 | 3.1. 운동 | 대통령표창 | |
서기옥 | 3.1. 운동 | 대통령표창 | |
서천수 | 3.1. 운동 | 대통령표창 | |
이영래 | 3.1. 운동 | 대통령표창 | |
이윤약 | 3.1. 운동 | 대통령표창 | |
임동석 | 3.1. 운동 | 대통령표창 | |
임삼선 | 3.1. 운동 | 대통령표창 | |
장준현 | 3.1. 운동 | 대통령표창 | |
임점석 | 3.1. 운동 | 대통령표창 | |
임용섭 | 3.1. 운동 | 대통령표창 | |
장주서 | 3.1. 운동 | 대통령표창 | |
장영직 | 3.1. 운동 | 대통령표창 | |
장상건 | 3.1. 운동 | 대통령표창 | |
김종권 | 일본방면 | 대통령표창 | |
이소열 | 3.1. 운동 | 대통령표창 | |
이범성 | 3.1. 운동 | 대통령표창 |
성명 | 장용희(張龍熙) |
본관 | 인동 장씨 |
생몰 | 1904년 5월 1일 ~ 1928년 7월 28일[1] |
출생지 | 경상북도 인동군 읍내면 임수동 (현 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2] |
사망지 | 미상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장용희는 1904년 5월 1일 경상북도 인동군 읍내면(현 구미시) 임수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경상도 선산군 몽대면 성수동(현 구미시 산동면 성수리)에서 장진홍, 김기용(金基用), 박관영(朴觀永), 이내성, 황진박 등과 교유하면서 지금까지의 구국 방법에 한계점을 절실히 느끼고 다 같이 결사대원이 되어 직접 행동으로 옮길 것을 맹세했다. 이후 안동에서 매약상으로 일하다가 친척인 장진홍의 권유를 받아들여 경찰서, 은행 등 안동의 주요 기관 파괴를 추진했다.이후의 행적에 대해서는 기록이 엇갈린다. 충남대학교 교수 이성우의 논문 '창여(滄旅) 장진홍의 생애와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의거'에 따르면, 장용희는 거사를 벌이기 직전에 병사했다고 하는데, 반면 송상도의 기려수필에 의하면, 장용희는 장진홍이 일본으로 망명간 후 피신 생활을 하다가 1928년 7월 28일에 자결했다고 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장용희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