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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07 00:14:34

국자감


1. 중국사의 국자감2. 고려의 국자감3. 유사기구
3.1. 한국
3.1.1. 국립3.1.2. 사립
3.2. 외국

1. 중국사의 국자감

수나라 때 중국 주요 도시에 설치됐고 이후 청나라까지 중국 역대 왕조의 중앙 최고학부 교육기관으로 기능했다.

진무제 사마염이 국자학을 설립한 것이 기원이며, 수양제 시기에 국자감으로 개명되었다. 당,송 시기를 거치면서 국자감은 국가교육관리기관으로서 산하의 태학, 사문학 등을 관장하였으며 각 기구를 관리하는 박사와 제사를 주관하는 제주를 두었다.

명대에 이르러서는 한층 규모가 확대되어 교육관리기관 역할과 최고 학부로서의 두가지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1382년 명태조 홍무제가 남경에, 1403년 명성조 영락제가 북경에 각각 국자감을 설립하여 양감(两监)체제로 운영되었다.

국자감에서 수학하는 학생을 ‘감생(监生)’이라 불렀으며, 중국 각지의 유력 집안 자제 뿐 아니라 해외의 유학생도 수학 할 수 있었다.

2. 고려의 국자감

국자감(國子監)을 세우고 유관(儒官)을 선택한 인원이 완벽하게 구비되어 있었으며, 횡사(黌舍 학교를 말함)를 새로 열어 태학(太學)의 월서계고(月書季考)하는 제도를 퍽 잘 지켜서 제생(諸生)의 등급을 매긴다.
서긍의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 中

992년(고려 성종 11)에 설립되었고[1] 명칭은 중국의 것을 가져와 국자감이라 짓고 내부적으로는 신라국학을 계승했다. 고려시대에는 국자감 명칭을 가장 오래 사용했다가 이후 명칭을 국학, 성균감을 거쳐 성균관으로 바꾼다. 조선왕조 성립 이후 기존 개성의 성균관은 개성 성균관으로 하고 한양에 새로운 성균관을 만들었다.

개성 성균관 문서 참조. 현재의 고려성균관은 1992년 개교한 학교이다.
국자감
유학부 기술학부
국자학 태학 사문학 율학 서학 산학
국자감에는 율학, 산학, 서학과 같은 기술학부와 국자학, 태학, 사문학 등의 유학부가 있었다.

오른쪽부터 읽어서 감자국이라고 하는 고전 유머가 있다.[2]

3. 유사기구

3.1. 한국

3.1.1. 국립

3.1.2. 사립

3.2. 외국


[1] 성종 때 설립되었다는 말은 아직 불분명하고 그냥 정비되었다는 설도 존재한다.[2] 맹꽁이 서당에서도 사용된 드립이다. 해당 컷은 어디까지나 '감자국(국자감)'이 '관균성(성균관)으로 바뀌었다는 내용이지만 동네 아이들이 "감자국이 더 좋은데."라며 낄낄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