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바둑 용어
1.1. 개요
國手바둑계의 용어. 원래 중국과 한국에서 전통적으로 국수(國手)는 한 나라를 대표할 정도로 바둑을 잘 두는 사람을 일컫는 존칭 중 하나였으며, 이 이름을 달고 열리는 기전이 국수전(國手戰)이다. 국수전은 1956년 동아일보에서 주최하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바둑 기전이었지만 2016년에 폐지되었다.
대전 방식이 다른 대회하고는 약간 다른데, 전년도 타이틀 보유자는 바로 결승전에 진출하고, 그 외의 기사 중 전년도 4강 진출자를 포함, 총 16명이 더블 엘리미네이션 방식으로 도전자를 결정한 다음(마지막 판은 3번기), 마지막으로 전년도 타이틀 보유자와 도전자가 총 다섯 번의 대국을 벌여 이긴 기사가 그 해의 국수가 된다.
1.2. 이로부터 유래된 호칭
국수전의 우승자를 높이기 위해서 '국수'라는 호칭을 붙혀서 사용하며, 원칙적으로 국수 타이틀을 유지하는 동안에만 허용되기에 매년 단 1명만을 지칭하는 호칭이다. 다만, 국수 타이틀을 보유중이 아님에도 상시 국수 호칭으로 불리는 사람이 3명 정도 존재한다.[1]어찌보면 영세칭호에 해당하는 사람들. 그리고 모두 그에 어울리는 실력뿐만 아니라 한국 바둑계에서 위대한 업적을 달성한 사람들이다.- 조남철 九단(당시 五단)이 1956년 1회 국수전에서 우승하며 최초의 국수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10년간 (총 9회 우승) 장기집권하며, '조국수'는 조남철을 지칭하는 별칭처럼 되었다. 나중에 '조국수' 별칭은 조훈현 九단에게 넘어 갔다. 조남철은 한국 바둑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사후 한국기원과 동아일보로부터 대국수(大國手) 칭호를 추대받았다.
- 조훈현 九단은 1976년부터 1985년까지 10년 연속 국수를 포함, 국수전에서 총 16회를 우승하면서 이 타이틀을 장기 보유했기 때문에 조남철 九단의 '조국수' 칭호를 자연스럽게 이어 받았다.
- 이창호 九단 역시 국수 타이틀을 10회나 따냄에 따라 자연스럽게 국수 칭호가 딸려 다니고 있다.
2. 나라를 상징하는 동물
자세한 내용은 국수(동물) 문서 참고하십시오.3. 대도서관의 노래 국수
해당 문서에 대한 내용은 국수(대도서관) 문서 참고하십시오.
4.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의 리, 국수리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의 리이다. 경의중앙선 국수역의 소재지이다.4.1. 수도권 전철 경의·중앙선의 국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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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입시 은어
대학수학능력시험 입시에서 국어 영역과 수학 영역을 아울러 이르는 말.6. 한자어 國粹
한 나라나 민족이 지닌 고유한 정신적ㆍ물질적인 장점을 이르는 말. 국수주의라는 말이 이 단어에서 유래하였다.[1] 이들 외에도 국수로 불렸던 조선 말 국내 바둑의 최고수 사초 노근영(1875~1945) 같은 기사가 있었다.[2] 다만 조남철 九단은 2006년에 별세해서 아들이 대신 수상했다.[3] 이 바둑의 날은 조훈현 의원과 전재수 의원이 발의한 바둑 진흥법에 근거하여 매년 11월 5일이 바둑의 날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