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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관림 중국 `.jpg
관림 입구
중심 건물인 임각
파일:중국 관우 3.jpg
후한 말엽에 조성된 관우의 봉분
1. 개요
간체자 关林 (관린)번체자 關林
영어 Guanlin
촉한의 장수이자 후일 신격화된 관우[1]의 머리가 묻힌 무덤으로 관림사로도 불린다. 관우의 몸은 이창 당양의 관릉에 묻혀있다.
본래 관우 사후 그를 존경하던 조조가 그 수급에 향나무 몸체를 더하여 매장했던 무덤과 작은 사당만이 있었다. 원나라를 거치며 삼국지가 널리 읽히게 되고 관우에 대한 신격화가 본격화되자 명나라 대인 만력제 연간 (1592년) 현재와 같은 거대한 묘로 조성되었다.[2]
이곳도 문화대혁명의 여파를 피해갈 수 없었는데, 당시 홍위병들이 무덤을 파묘하면서 관우의 관을 묘역 옆 나무에 묶어놓는 만행을 저질렀었다. 다행히 이후에는 복원되었으며, 1980년대 낙양 고미술 박물관으로 활용되었다. 명대 건축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는 점을 인정받아 2001년 AAAA급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에 지정되었다. 표값은 40위안[3]이다. 그 외에도 관우의 기일로 알려진 매달 3일이면 관림 앞에 큰 장이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