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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2-12-07 21:05:42

공친왕(폭군 고종대왕 일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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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행적3. 평가4. 기타

1. 개요

본명은 애신각라 혁흔(愛新覺羅 奕訢). 직위은 친왕 → 청나라 번왕이다.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의 등장인물로 첫 등장할 시기에는 청나라 황실의 최고 어른이며 소양공주의 아버지이자 주인공의 장인이기도 하다.

2. 행적

서태후의 정적으로 정치력과 애국심은 있지만 세력이 딸려서 동태후의 눈치를 살피며 어떻게든 서태후를 견제하려고 애를 쓴다. 그러다가 제1차 조청전쟁에서 조선에게 패배한 이후, 봉천 조약을 체결하면서 조선의 국왕에게 12살 먹은 딸을 시집보내고 군대를 지원 받아 서태후를 몰아낼 생각을 한다. 하지만 영, 프, 러, 미 4개국의 간섭에 치이고 서태후가 러시아군을 끌어들여 압박해오는 바람에 마음 고생만 심하게 하며 되레 목숨의 위협까지 느끼게 된다. 거기에 서태후가 만주족 포로 몸값 지불을 거부한 사실에 더해 이형이 그것에 대해 아무 조건 없이 만주로 돌려보냈다는 것을 알자 한족에 의해서가 아니라 동포인 만주족의 손에 아이신기오로 황실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휩싸이게 된다.

그러던 중, 러시아의 권력자와 당당하게 맞서는 이형을 보면서 감탄하고 내부부터 무너지는 청의 현실에 자괴감을 느낀다. 이형은 이미 러시아와 대립하게 된지라 반 러시아파인 공친왕을 무시할 생각은 없기에 장인이기도 한 그를 무시하지 않겠다고 공언한다. 이후 이형과 딸 소양공주의 결혼 후에도 조선에 남아있게 되는데 이하응의 예상으로는 청에 돌아가봤자 서태후에게 유폐, 혹은 암살당할 테니 조선 땅에서 버틸 만큼 버티다 조선의 힘으로 복귀할 계획인 듯하다. 이형은 어차피 청/러시아와는 한 번 더 맞붙어야 할 형편이니 이제와서 눈치 보지 않겠다면서 받아줄 거라고 한다. 그렇게 얼마 뒤, 공친왕은 조선과 프랑스에 의해 서태후를 대신할 새로운 청나라의 섭정으로 추대된다.

제2차 조청전쟁이 끝나고 나서 조선인으로서 만주의 칸이 되었음을 선언하는 이형을 보며 뭐 이런 미친 놈이 다 있냐는 듯 바라봤는데, 그도 그럴 게 아무리 공친왕이 청나라의 황실 사람이라고 해도 유교에 젖어 있는데, 스스로 조상(목조)까지 끌어들여 오랑캐가 되고자 하는 이형을 이해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형은 겉만 옛날 사람이었지 정신은 21세기까지 겪은 환생 인물이었기에 그런 것엔 연연하지 않는 사람이다. 전주 이씨목조가 사람들을 이끌고 강릉 삼척으로 (트러블을 피해) 이주했다가 의주로 (다시 트러블을 피해) 이주한 뒤, 몽골의 천호가 되었는데, 이 일을 끄집어내며 "내 선조가 원래 몽골의 천호였는데 내가 몽골의 직책을 얻는게 뭐 이상하오?" 라는 식으로 나서는 이형이니 공친왕으로서는 그야말로 이해하기 힘든 정신세계였던 것. 그렇기 때문에 공친왕은 "만주와 만주족들을 모두 데려가버리면 이제 자신과 다이칭 구룬에겐 뭐가 남냐?" 라고 한탄하자 이형은 "그래도 하다 못해 다이칭은 남아있잖소? 그리고 어차피 중원은 한족들의 세상이니까 그 변발을 자르고, 호복을 벗어서 철저히 한족들의 군주가 되시오." 라고 충고해줬다.

이후 중화제국의 이홍장과 만나 평화조약을 체결하면서 이홍장이 "국력의 격차가 이리도 심하니 겨뤄봤자 헛수고일 뿐, 어서 항복하라."라는 말을 비웃으며 "어차피 우리가 겨루게 되는 것은 서로가 모시고 있는 오랑캐의 힘일 뿐, 지금은 청이 약하지만 반드시 힘을 모아서 네놈을 죽여버리겠다." 라고 다짐한다. 당장 청은 강남도 만주도 모조리 잃어버린 약소국 처지가 되었지만, 중원의 핵심인 북경을 비롯한 일부 주요지대는 여전히 쥐고 있다. 외세의 힘을 빌린 건 중화제국도 같은 데다 당장 외세(프랑스, 조선)의 눈치만 보면 급속도 개혁을 진행할 수 있는 청이 중화제국에 일방적으로 몰린다는 근거는 없다. 공친왕의 청은 이미 군벌인 만주 병사들과 자국에 우호적인 외세 두 나라만 뒷배로 두었지만, 이홍장의 중화제국은 청보다 훨씬 많은 열강에 지역 지주들까지 더해서 뒷배로 둔 탓에 그들의 편의를 봐주려면 허리가 휠 지경이다. 그리고 중화제국이 태평천국을 몰아내고 북경 공략을 시행할 수 있었던 건 열강들의 지원 덕분이었는데, 태평천국이 몰락하고 조선이 러시아 견제를 맡고 있는 현 상황에서 열강들이 지금까지처럼 지원해 줄 가능성도 희박하다.

조약 문제로 불려와 지금 청이 처한 현실을 이야기하며 사위인 이형에게 영길리 혐성짓을 성토하며 불만을 토로하는데, 이 이야기를 듣고서야 이하응이 대만국의 범아시아 조약기구 가입 신청 때문에 잠시 한성에 들어와 자신과 이야기하면서 영국을 욕했던 내용[1]이 이 문제의 시발점이 된 것을 깨닫고는 영국의 탐욕 때문에 중원을 도화선으로 한 세계대전급 전쟁이 벌어질 지도 모른다는 것을 예측한 그에게서 적게 잡아도 100만 명을 묻을 무덤과 1천만 명을 징집할 각오를 하라는 진지한 충고를 듣고 얼굴이 사색이 되고 만다. 그 후 대한제국과 군사방호조약을 체결한다.

그리고 이형은 그 앞에서 역사 이래 최악의 유혈사태를 예고하면서도 이를 늦춰보기 위해 프랑스를 통해 강남에 구휼미를 풀어 그를 돕는다. 이후, 장강을 건너 피난을 오는 중화제국 주민들을 수용하면서 대한제국을 비롯한 범아시아 조약기구 가맹국들과 함께 중화제국의 강남 대기근을 구제하기 위한 구호물자들을 유구 왕국의 명의로 보내고 있는데, 원래는 청의 백성인 그들을 구제하는 것조차 떳떳하게 못하는 현실에 서러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중화제국의 침공을 앞두고 50만 대군을 준비한 이형은 청에서도 백만 정도는 준비해뒀겠지 했으나, 추수기와 함께 백성들이 대한제국으로 일하러 갔다고 뻥치고 징병을 기피하여 그 반밖에 준비하지 못했다. 한족 백성들이 만주족 정권을 위해 싸우는 것을 기피하였기 때문. 여기에 더해 이형이 중화제국의 250만 대군(을 빙자한 굶주린 도적떼)를 황하 건너편에 두고 잔치를 벌여 약탈을 유혹하자 그 속셈을 빠르게 짐작하고는 이제 베이징까지 후퇴하며 화북을 지옥으로 만들 차례냐고 한탄한다.

당연히 이형은 "후퇴는 개뿔, 싸우지도 않고 물러갈 생각은 없다." 라고 했지만 공친왕은 상식적으로 당연히 그 말을 믿지 못한다. 이건 공친왕이 어리석다기 보다는 '이형이 짜놓은 판' 자체가 '멸청흥한'의 기치 아래 불거진 청나라 내 중화민족주의를 '북방 정부 VS 남방 도적'이란 판으로 만들어 민족주의를 뭉개고 민초들이 '도적에게서 재산과 목숨을 지키기 위해' 군에 힘을 보태게 만들기 위해서인데, 이 판세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북방의 민초가 남방의 도적들에게 도적질을 당해야'한다. '황하에서 방어'한다는 것은 기껏 짜놓은 판세에 정면으로 거스르는 행동이니까 공친왕이 믿지 못한 것. 하지만 '열강과 싸워 이겼다.'는 무력을 기반으로 한 고종의 권위는 '도적떼들과 싸움 한 번 하지 않고 물러섰다.'는 낙인이 붙었다간 흔들릴 수 있고, 고종의 권위가 흔들리면 그 권위를 기반으로 쌓아올린 극동의 판세 자체를 붕괴시킬 위험이 있기에 싸우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그래도 다행히 승전을 한 이후 이형에게 자뻑을 곁들인 그의 구상을 설명받고 그 안에 담긴 뜻을 이해하지만 동시에 적어도 자신의 대에서 중화가 힘을 되찾을 날이 오지 않을 것임을 알고 절망하고 만다. 뭐 이형의 행보를 보면 중화를 되찾기보다는 그냥 목숨만 부지하는 선에서 만족해야겠지만. 그나마 공친왕이 장인이 되는지라 청나라의 목숨은 살려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따지고 보면 사위에게 뜯길거 다 뜯겨버렸지만 최소한 자기가 가져야 할 부분이나 그런건 사위덕에 지키고 있다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니 공친왕 입장에서는 사위가 밉기도 하겠지만 지금 당장은 사위 없으면 죽도 밥도 안된다.

이후 세계대전의 종전협정에 대한제국이 승전국이 되었고 이형이 베를린으로 초대받자 이를 부러워하며 청나라의 개혁 실패와 세계 정세의 현실에 뼈저리게 느낀다. 단오날 한양에서 만나자, 정말로 중원의 천명 회복과 만주족의 복권은 적어도 자기 세대에는 포기했는지, 순순히 이형 주도의 조약기구 질서에 대해 논의한다. 아마도 이렇게 된 이상 조약기구 내에서의 2인자 자리라도 확보해야 한다는 쪽으로 방향을 바꿔서 일본의 실권자인 요시노부와 경쟁할 듯하다.

그리고 대한제국이 예정대로 중원을 춘추전국시대 때처럼 수많은 번으로 나누게 됨에 따라 더는 공친왕이 아닌 청왕이 되었다. 그 대가는 공친왕의 조국이 더 이상 천자국이 아니라 일개 제후국으로 격하되었고, 영토도 크게 줄어들게 되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는 사위에게 만주족을 지켜줄 것과 만주가 천하의 주인이 되지 못한다면, 적어도 천하의 주인이 된 조선의 바로 뒤를 따를 수 있도록 부탁하였다. 어차피 아무리 노력을 한들, 한족과 만주족은 태생적으로부터 조화롭지 못한 상태였고, 억지로 이끈다고 한들 이어질 수 없는 사이였다. 차라리 그럴 바에야 모든 것을 대한제국에 맡기는 편이 낫다고 여긴, 사실상의 항복 선언이었다.

대신 청이 천자국에서 번국으로 전락하게 만든 서태후에게 강한 증오심을 계속 갖고 있었고, 서태후가 이형의 차남이자 자신의 둘째 외손자와 영국 공주의 결혼 선물로서 보내지게 되자 베이징에 연금시키는 대신 김가진을 사주해 서태후를 정주의 마천루 꼭대기에서 추락사하게 만들었다.

결국 수 십년 뒤 반신불수 상태에서 이형과 딸인 황후가 임종을 맞게 되는데, 몰락해가는 청과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지만 그래도 가족은 남았다면서 딸인 황후에게 자신을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한 뒤, 그 말을 듣고 웃은 뒤 마지막 숨을 내쉬고 운명을 다했다. 얼굴 반쪽이 일그러진 것을 황후가 애써 바로 고치고는 그래도 웃으며 갔다고 말할 때는 이형조차 그냥 수긍했다.

3. 평가

폭군 고종판 프란츠 2세.[2] 중원의 정치인들 중 고생 안 하는 양반이 없지만 정말 그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마음 고생을 하는 불쌍맨 No.1이다. 첫 등장 이후로 서태후, 러시아, 중화제국, 기타 열강, 심지어 조선까지 작중 등장하는 대부분의 세력에게 겁박 당하기를 반복하다 보니 나올 때마다 "수척해졌다.", "돌아버리고 싶다.", "아무리 발악해도 상황이 좋아지질 않는다." 라는 묘사와 함께 괴로워하다가 결국 청의 섭정으로서 아무리 나라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 노력해도 나아지기는 고사하고, 더 힘들어지고 있는 현실이 괴로웠는지 사위인 이형 앞에서 눈물을 터뜨린다.

그래도 애국심과 애민정신은 강한 사람이고, 딱히 무능한 것도 아니라서 군주로서의 기초적인 소양은 갖고 있긴 하다. 그렇지만 이미 서태후가 싸지른 똥이 워낙 거대한 탓에 강대한 힘을 지닌 사위만을 바라보고 살아야 한다는 점이 더욱 비참한 인물.

4. 기타

제1차 조청전쟁에서 청나라가 패한 후, 봉천 조약을 체결하기 위해 공친왕이 직접 청나라 대표가 되었다. 그리고 그 직후에 프랑스의 노골적인 협박을 당하며 온갖 험한 꼴을 봤지만 말이다.[3]



[1] 중화제국에 그렇게 풍년이 들었는데, 농민들이 먹을 식량이 없어 기아에 허덕이게 만든다며 돈벌이에 혈안이 되어 지주들이나 상인들과 결탁하여 쌀을 태우게 만든 영국을 신나게 욕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형은 중화제국의 행정력이 그렇게까지 부실할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는지 이게 이렇게 심각한 사태로 번질 거라는 생각을 안 했다. 워낙에 이하응과의 사이가 동족혐오 수준으로 안 좋아서 가볍게 넘겼을 것도 있었고.[2] 하지만, 프란츠 2세가 자기 사위한테 복수에 성공한 데 반해 공친왕은 뿌리까지 다 털어먹고 있는 웬수 같은 사위에게 복수할 방법이 없다. 아니, 사위의 도움이 없었다면 나라가 망해도 몇 백 번은 더 망했을 것이다. 뿌리까지 털어먹고 있으면서도, 이 혼돈의 세계 정세에서 유일하게 청을 지켜주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에 "털어먹는걸로 끝내줘서 감사합니다." 라고 머리 박아야 한다는 점이다. 애초에 이형도 단순히 정략결혼으로 소양공주와 결혼했다가 이제는 공주가 아들도 낳아주고 진짜 정이 들었으니 이젠 장인어르신 되는 공친왕을 어지간해서는 버릴 생각은 없기도 하고.[3] 이때 프랑스는 조선이 가장 먼저 개항한 서양 열강이었는데 아편전쟁으로 불리해진 극동 따먹기 싸움에서 유리함이 생기면서, 부동항을 찾던 러시아가 극동으로 내려오는 것을 막는 것은 덤으로 영국과 러시아를 한번에 엿 먹일 찬스였는데, 이걸 청이 날려버렸다. 바로 이것 때문에 잔뜩 열 받은 프랑스가 유독 청나라를 가혹하게 대한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