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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01 22:43:10

게오르크 도나투스

<colbgcolor=#C4E6DC><colcolor=#000> 헤센 대공국의 대공세자
게오르크 도나투스
Georg Donatus, Erbgroßherzog von Hessen
파일:20230317_130330.jpg
이름 게오르크 도나투스 빌헬름 니콜라우스 에두아르트 하인리히 카를
(Georg Donatus Wilhelm Nikolaus Eduard Heinrich Karl)
출생 1906년 11월 8일
독일 제국 헤센 대공국 다름슈타트
사망 1937년 11월 16일 (향년 31세)
벨기에 오스텐더
배우자 그리스와 덴마크의 케킬리아 공주 (1931년 결혼)
자녀 루트비히, 알렉산더, 요하나, 3남
아버지 헤센 대공 에른스트 루트비히
어머니 졸름스호엔졸름스리히의 엘레오노레 공녀
형제 루트비히
1. 개요2. 생애3. 자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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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헤센 대공국의 마지막 대공 에른스트 루트비히와 그의 두번째 아내 졸름스호엔졸름스리히의 엘레오노레 공녀의 장남. 니콜라이 2세의 처조카[1]이자, 엘리자베스 2세의 국서 필립 마운트배튼의 매형이다.[2] 또한 영국 국왕 찰스 3세의 셋째 고모부[3]이다. 1937년에 헤센 대공가 비행기 추락사고로 아내 케킬리아, 두 아들들인 루트비히와 알렉산더, 어머니 엘레오노레와 함께 사망했다. 비행기를 타지 않은 딸 요하나는 살아남았지만, 수막염에 걸려 2살에 요절했다.

2. 생애

게오르크 도나투스는 헤센 대공국의 마지막 대공 에른스트 루트비히이 그의 두번째 아내 졸름스호엔졸름스리히의 엘레오노레 공녀 사이에서 38살에 처음으로 얻은 귀한 후계자였다. 대부모는 5촌 당숙인 빌헬름 2세, 프로이센의 하인리히 왕자와 진외종조부 에드워드 7세, 고모부 니콜라이 2세, 외숙부 조름스호엔졸름스리히의 카를 공자였다. 유아 세례식에서 게오르크 도나투스의 부모는 에른스트 루트비히와 엘레오노레 재단을 설립해 산모와 유아들을 성공적으로 돌보았다. 당시 대공가는 엄청난 인기를 누렸었다.

게오르크 도나투스는 두 살 차이나는 동생 루트비히와 함께 자랐다. 형제는 어려서부터 차에 대한 열정을 보였으며 오펠에서 오랫동안 자원봉사를 했다. 가족은 고모인 러시아의 알렉산드라 황후를 보러 자주 러시아에 방문했다. 마지막 러시아 방문 당시 세계 1차대전이 터지면서 ’적‘으로서 집에 보내졌다.
파일:IMG_6201.jpg
동생 루트비히, 게오르크 도나투스, 고종사촌형 러시아의 알렉세이 황태자
1918년 11월 11일에 1차 세계 대전이 독일의 패배로 종전되었고 독일 제국이 멸망하여, 공화정으로 전환되면서 아버지 에른스트 루트비히 역시 헤센의 대공위에서 폐위당했다.
형제는 어릴적부터 저명한 교수들을 궁전으로 초대해 교육받았으나 정기적으로 고등학교에 직접 가기도 했다. 졸업시험에 통과한 후 게오르크 도나투스는 기센, 로잔, 뮌헨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1933년 기센에서 “세계 정치인으로서의 프리드리히 리스트“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게오르크 도나투스는 미남에 장신인데다 매우 사교적이었기 때문에 인기가 많았다. 그는 운동에 재능이 있었으며 비행, 드라이빙, 사냥을 즐겼다.

1931년 2월 게오르크 도나투스는 오촌인 그리스와 덴마크의 케킬리아 공주와 결혼했다. 경찰의 통제에도 불구하고 결혼식에 너무 많은 시민들이 모여 신부와 신부의 아버지를 태운 마차가 지나가지를 못해 신부와 아버지는 마차에 내려 직접 교회까지 걸어가야했다. 게오르크와 케킬리아 사이에서 루트비히, 알렉산더, 요하나 세 자녀가 태어났다.

게오르크 도나투스는 루프트바페의 예비 장교가 되었다.[4]1937년 5월에 아내와 동생과 함께 NSDAP에 가입했다. 1937년 10월 아버지 에른스트 루트비히가 죽자 명목상의 대공위를 물려받았다.

1937년 11월 런던에서 열리는 동생 루트비히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막내딸 요하나를 제외한 온 가족이 비행기에 탑승했다. 비행기는 벨기에 오스텐드 근처에서 추락해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다. 이후 다름슈타트로 이송됐고 아버지 에른스트 루트비히와 함께 로젠호헤의 공동 무덤에 묻혔다. 고아가 된 막내딸 요하나는 이모 테오도라가 잘렘으로 데려갔다. 이후 게오르크 도나투스의 동생 루트비히가 요하나를 입양했지만 1939년 두 살 때 수막염으로 사망했다.

이후 동생 루트비히가 명목상 헤센 대공이 되었으나 자녀 없이 사망하면서 헤센다름슈타트 가문은 단절되었다.

3. 자녀

자녀 이름 출생 사망
1남 루트비히 에른스트 안드레아스
(Ludwig Ernst Andreas)
1931년 10월 25일 1937년 11월 16일
2남 알렉산더 게오르크 카를 하인리히
(Alexander Georg Karl Heinrich)
1933년 4월 14일 1937년 11월 16일
1녀 요하나 마리나 엘레오노레
(Johanna Marina Eleonore)
1936년 9월 20일 1939년 6월 14일
3남 1937년 11월 16일 1937년 11월 16일


[1] 니콜라이의 아내 헤센의 알릭스 공녀가 게오르크 도나투스의 막내 고모다.[2] 게오르크 도나투스의 아내 그리스와 덴마크의 케킬리아 공주가 필립의 셋째 누나다.[3] 물론 찰스는 게오르크 도나투스가 죽은 지 11년이나 지난 1948년에 태어나 직접 만난 적 없다.[4] 1937년 10월 아버지 에른스트 루트비히의 장례 행렬에서 공군 중위의 제복을 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