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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고트 왕국 발티 왕조 10대 군주 Gaisalaiks | 게살레크 | ||
제호 | 한국어 | 게살레크 |
고트어 | Gaisalaiks | |
라틴어 | Gesalec | |
생몰 년도 | 미상 ~ 513년 | |
재위 기간 | 507년 8월 ~ 51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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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서고트 왕국 10대 군주. 아버지 알라리크 2세가 부이예 전투에서 패한 뒤 귀족들의 추대를 받아 국왕으로 옹립되었지만 동고트 왕국의 테오도리크 대왕에 의해 폐위되었다.2. 행적
서고트 왕국 9대 군주 알라리크 2세와 이름과 출신이 알려지지 않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동고트 왕국의 군주 테오도리크 대왕의 딸 테오데고타와 결혼하여 아말라리크를 낳은 뒤, 그는 사생아로 격하되어 왕위 계승권을 박탈당했다. 그러던 507년 8월 아버지가 부이예 전투에서 클로비스 1세가 이끄는 프랑크군에게 참패하고 목숨을 잃자, 아말라리크는 아직 어린 아이여서 난국에 처한 왕국을 이끌 수 없다고 판단한 귀족들에 의해 새 왕으로 선임되었다.그는 프랑크군에 의해 함락당한 툴루즈 대신 나르본을 새 수도로 삼았다. 얼마 후 프랑크 왕국과 손을 잡은 부르군트 왕국군이 나르본을 함락시켰고, 그는 피레네 산맥을 넘어 바르셀로나로 도피해 그곳을 새 수도로 삼았다. 그러나 부르군트군이 피레네 산맥을 넘어 바르셀로나를 공격하자, 그는 이에 맞섰으나 참패당하자 히스파니아 내륙으로 도주했다.
동고트 왕국의 테오도리크 대왕은 처음에는 그가 서고트 왕이 되는 걸 용인했지만, 연이은 패전을 당하는 걸 보고 등을 돌렸다. 테오도리크 대왕은 클로비스 1세와 협상해 프랑크 왕국이 아키텐을 획득하는 대신 서고트 왕국을 유지하는 걸 동의하게 한 후 군대를 파견해 바르셀로나까지 침입했던 부르군트족을 격파하여 본토로 돌아가도록 강요했다. 그 후 510년 게살레크가 자신에게 순순히 복종하지 않는 서고트 귀족 고야리크를 처형하자, 이에 위협을 느낀 귀족들은 테오도리크 대왕에게 아말라리크를 새 왕으로 추대하고 싶으니 도와달라고 청했다. 그는 이에 따르기로 하고, 511년 군대를 바르셀로나로 파견했다. 동고트군은 별다른 저항 없이 바르셀로나에 입성했고, 아말라리크가 왕위에 올랐다. 하지만 아직 어렸기에 테오도리크 대왕이 '섭정왕'으로서 서고트 왕국의 실질적인 통치를 맡았다.
그는 반달 왕국에 도움을 청하기 위해 아프리카로 도주했다. 반달 왕 트라사문드는 동고트 왕국과 전면전을 벌일 생각이 없었기에 군사 지원을 해주지 않았지만, 거액의 보조금을 지원했다. 그는 갈리아 남부로 이동한 뒤 프랑크 왕국이 장악하고 있는 아키텐으로 이동하여 프랑크 왕국의 후원을 받아 복위를 꾀했다. 당시엔 클로비스 1세 사후 프랑크 왕국이 네 아들에게 분할되어 있었다. 이 네 명의 왕들은 권력을 확장해 상대방으로부터 복종을 얻어내길 갈망했지만, 강대한 위세를 떨치고 있는 테오도리크 대왕과 대적할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다. 결국 그들의 후원을 받으려는 게살레크의 계획은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
그렇게 몇년 간 세월을 보내다가 테오도리크 대왕의 지배에 불만을 품은 몇몇 서고트 귀족들로부터 지원군을 받아낸 후 히스파니아로 이동했다. 그러나 513년 바르셀로나 외곽에서 테오도리크의 부관 이바스에게 참패했다. 그는 전장에서 탈출했지만 뒤랑스 강을 건너려다 체포된 후 곧바로 처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