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개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
일본어: 愛のコリーダ [1]
프랑스어: L'Empire des Sens
영어: In the Realm of the Senses
1976년 오시마 나기사(大島渚) 감독이 연출한 일본/프랑스 합작 영화이다. 1930년대에 일어났던 아베 사다 사건을 모티브로 하여, 성도착자 커플의 비극을 그린 작품이다. 그해 프랑스 칸 영화제의 "감독 주간"에 초청되었으며, 영국 영화 협회(BFI)의 서더랜드 트로피(Sutherland Trophy)와 일본 호치 영화상의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대단히 유미주의적인 작품으로, 표현 수위가 역대 최고급을 달리며 예술인지 외설인지 그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오간다. 음모 노출은 예사이고 실제 정사씬이 그대로 나오고[2] 성기를 절단하는 장면까지 나오기 때문에 더욱 논란이 컸다. 도덕성·대중성을 따지지 않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데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러한 탐미적인 자세는 성 문화에 개방적인 일본에서도 받아들여지기 힘들었다.
여자 주인공 아베 사다 역의 마츠다 에이코(松田暎子,1952)는 논란에 시달려야 했으며 1979년까지 영화를 몇 편 찍고[3][4] 미디어에서 사라졌다가 1982년 프랑스에서 <Cinq et la peau>[5]란 작품을 마지막으로 은퇴했다. 1983년에 찍은 사진이 구글에 돌아다니긴 하는데, 아무튼 칩거 수준으로 대중들에게서 숨었다가 2011년 뇌종양으로 사망했다. 남자 주인공 배우인 후지 타츠야(藤竜也,1941)도 극중 실제 정사로 논란의 중심이 돼 2년동안 근신했다. 게다가 그는 유부남이었다. 그래도 1978년에 복귀해 그 후로는 계속 활동 중이다.[6]
이 작품은 단순 치정극은 아니다. 오시마 나기사 감독은 한국이나 재일교포를 다룬 영화를 만들었을 정도로 좌익 성향이고, 일본은 1930년대 파시즘을 거치고 45년 패전한 후에도 구 세력이 제대로 청산되지 않은 상태였다. 전후 경제 고도 성장 속에 1960년대 전공투나 학생 운동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사회 변혁에 실패한 일본 지식인들의 무력감은 여러 방향으로 나타났고, 이 작품도 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속 남성의 성기가 일제 군국주의를 상징한다고 생각하면 쉽다. 이후 오시마는 성애에 관한 탐미적인 작품들을 계속 만들었다. 또한 1970년대는 전세계적으로 68혁명과 히피 문화의 영향으로 오히려 21세기인 현재보다 수위가 높은 파격적인 영화가 만들어지던 시절이고 정치적으로 극좌와 극우 세력의 대결이 격렬하던 시기라 본 영화처럼 성과 정치를 결합시킨 영화들이 다수 만들어졌다.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감독의 살로 소돔의 120일도 70년대 영화이다.
한국에서는 당연히 일본 영화이니 정식 수입이 되지 않다가, 일본 문화 개방이 시작된 이후 2000년 4월 1일에서야 정식 극장 개봉을 했다.[7] 다만 16분을 잘라내고 모자이크 투성이 버전이었다고 한다. 서울 관객 14만을 기록했다. 당시 씨네21에서 이 영화를 다룬 바 있는데, 기자가 '1990년대 대학가 상영관에서 이 영화를 봤던 여대생들이 기겁하고 나가버렸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
2015년 3월 26일에 재개봉했으나 서울 관객 653명으로 알게 모르게 사라졌다.
2019년 CGV CAV 기획전에서 무삭제판으로 상영하였다.
2021년 전장의 크리스마스와 함께 4K로 복원되어 일본에서 재개봉했고, 엔케이컨텐츠는 이 버전으로 영등위 심의를 신청했지만 제한상영가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는지 일단 신청을 취소했다.
2. 평가
||<table align=center><table width=480px><bgcolor=#f6c700><tablebordercolor=#f6c700><tablebgcolor=#fff,#191919><:> [[IM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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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여담
- 베드신 촬영 당시 현장에는 스탭 없이 두 배우와 감독 3명만으로 촬영했다고 한다.
- 당시 무명이던 최양일이 조감독으로 참여했다.
- Ai No Corrida 라는 일본어 제목에서 채용된 제목의 디스코곡이 있다. 이 곡은 Chaz Jankel의 원곡을 퀸시 존스가 리메이크 하면서 널리 알려져 있다.
- 2012년 영화 감각의 제국 파이널이 있는데, 아베 사다 사건을 대충 써서 만든 그냥 에로물이다. 국내에서도 달랑 서울 관객 10명을 기록했는데 1개 상영관에서 1회 상영하고 IPTV 유료 방영 홍보 겸 개봉했던 거였다.
-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이 역대 최고의 영화 10편 중 하나로 뽑았다.
- 무대 배경이 1936년 일본인데, 남자 주인공 하반신에 삼각 수영복 태닝 자국이 선명한 것이 옥에티.
[1] 사랑의 투우(corrida). 일본판 포스터 아랫쪽에 황소의 검은 실루엣으로 확인.[2] 여성상위 자세에서 여배우의 질에 남배우의 음경이 삽입되는 장면까지 그대로 보여준다. 성기 안에 계란을 넣었다가 빼는 장면도 보여준다. 당시 기술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편집이나 카메라 워크가 아닌 빼박 실제 정사 인증. 포르노와의 차이라면 확대해서 보여주지 않는다는 정도. 비교적 성에 개방적인 일본이지만 직접적인 노출은 터부시된다. AV에서 모자이크가 있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3] 1977년작 聖母観音大菩薩에서는 이후 101번째 프로포즈 여주로 유명해진 당시 19살이던 아사노 아츠코까지 체모 모자이크를 한 전라 노출 수준으로 나온다. 당연히 마츠다 에이코도 전라 노출한다.[4] 그래도 TV에 얼굴을 비춘 적은 있다. 1977년 12월 木枯し紋次郎(코가라시몬지로)라는 도박사의 유랑 이야기라는 주제의 TV 시대극에 출연하는데, 10번째 에피소드인 鴉が三羽の身代金(가라스가미츠하네노미다이킨)에 기쿠노라는 역할이었다. 수요일 9시 드라마였고 해당 회의 시청율은 8%로 준수한 편이었다. 이 때는 예명인 暎子 대신 본명인 英子로 출연했다.[5] 오가피다. 칸 영화제 고문으로 마틴 스콜세지와 제인 캠피온을 발굴한 피에르 라시앵의 두번째 영화. 강릉국제영화제에서 복원판을 상영한 적이 있다.[6] 후지 타츠야는 같은 오시마 나기사의 <열정의 제국, 1978>과 구로사와 기요시의 <アカルイミライ(밝은 미래, Bright Future, 2003)> 두 편으로 칸 영화제에 섰다. 2018년 현재까지 약 80편에 달하는 필모그라피를 자랑한다. 아내는 아시카와 이즈미(芦川いづみ,1935)라는 6살 연상의 유명 여배우다. 일본판 누벨바그인 쇼치쿠 뉴웨이브의 중심에 있다가 후지 타츠야와 1968년 결혼한 뒤 은퇴했다.[7] 참고로 1998년 즈음 서울대 총잔디에서 야외 상영회를 한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