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597년)
1. 개요
전국시대의 인물. 간 미치나가의 아들.2. 행적
아와지 섬을 중심으로 활약한 해상 세력이자 다이묘였던 간 미치나가의 자제였다고 하며, 마타시로(又四郎)라는 통칭으로 불렸다. 정유재란에 수군으로 참전했다가 1597년에 명량 해전에서 전사했다.3. 일설
미디어워치[1] 등 인터넷 신문에서 일제 강점기 때 해남에서 20여 년간 순사로 근무한 사와무라 하치만타로(沢村 八幡太郎)의 유고집에 따르면 간 마사카게는 명량 해전이 일어나기 전에 해남 어란진에 정박했는데, 이순신이 보낸 간첩인 어란에게 명량 해로의 출정일을 발설하고 이를 어란이 김중걸을 통해 이순신에게 전달해 이 정보를 토대로 명량 해전에 승리했다는 이야기가 있다.그러나 당대의 사료에는 이와 관련된 기록을 찾아볼 수 없는데다가 후대의 기록이기 때문에 신빙성이 없다.
명량 해전 때 전사한 마다시(馬多時)라는 인물로 추정된 후보들 중 한 명이나, 이를 주장한 근거가 양조임진실기의 주석에 칸노 마타시로 마사카게(菅野又四郎正陰)라고 적힌 것 뿐이기 때문에 신빙성이 낮다.
4. 미디어믹스
소설 못다 부른 명량의 노래에서는 일본군의 군수물자를 담당했고 어란포 해전과 벽파진 해전 때 선봉장으로 나섰으며, 와키자카의 명으로 구루시마 미치후사와 함께 부름을 받고 조수를 잘 아는 김억추를 죽여야 싸움에서 승기를 잡을 것이라 하자 마사카게는 김억추에 대해 이순신의 부하라면서 그 자를 잘 활용한다면서 우리를 추격했다가 바닷물이 역류하기 전에 조선수군이 후퇴하는 것을 보면 틀림없다고 했다.와키자카가 수군을 총동원해 이순신의 수군을 섬멸하겠다고 하자 자신은 조수를 잘 아는 미치후사에게 선봉장의 자리를 내어주겠다면서 원래 군수물자 조달 책임자로 조수에 어둡다고 했다. 마사카게가 서둘러 육지에 가려는 것을 본 미치후사는 어란포진 관아의 기생에게 홀렸다고 말하며, 어란은 일본군 장수들이 만나길 원할 정도로 인기있었지만, 마사카게가 어란을 강제로 애첩으로 삼았다.
명량 해전 때는 정찰을 나갔다가 명량으로 가기도 전에 벽파진 앞바다에서 조선 수군의 화포 공격을 맞아 전사했다.
소설 이순신의 7년에서는 같은 작가가 썼지만 묘사가 약한 다른 부분이 있다. 명량 해전이 벌어지기 전에 미치후사에게 이순신에게 말려들지 말라는 주의를 받았고, 어란포에서 침략했을 때 기생 어란에게 반해 노략질한 물건을 어란에게 주면서 밤마다 술을 따르게 하고 이부자리 속으로 불러들이면서 어르고 달랬 어란에게 싸움이 끝나고 자신을 따라가면 자신의 아내가 될 것이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