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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8-17 00:42:31

가시마신류

파일:관련 문서 아이콘.svg   관련 문서: 일본 고류 무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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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일반적인 설명3. 전승에 관한 의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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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鹿島神流

쇼와 시대 '현세의 무사시(今武蔵)라고 불린 쿠니이 젠야(國井善弥)로 유명한 검술 유파. 일명 가시마류(鹿島流), 신류(神流)라고도 한다.

단, 검술 위주이기는 하나, 유술, 발도술, 나기나타술, 봉술, 장술, 수리검술 등을 포함한다.

스스로 18대 종가라고 한 쿠니이 젠야 이전의 계보가 창작되었다는 견해가 있어, 일반적으로는 쿠니이 젠야가 자신이 배운 무술을 종합하여 창시한 현대 무술로 보는 설이 많다.

2. 일반적인 설명

가시마신궁(鹿島神宮)에서 옛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가시마노타치(鹿島の太刀)'[1]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이는 가시마신궁에서 모시는 제신인 타케미카즈치(武甕槌大神)가 악신을 진정시킬 때 사용한 기술이 시초라고 하며, 발도술 카타(形) 중 '하라에노타치(祓太刀)'가 그 흔적이라고 한다. 또, 타케미카즈치가 타케미카타나(建御名方神)와 힘겨루기를 할 때 사용한 기술이 유술 '영기지법(霊気之法)'의 시초라고 한다.

유파로서의 개조는 마츠모토 마사노부(松本政信). 센고쿠 시대, 히타치(常陸 / 現 이바라키현) 지방의 호족인 가시마씨(鹿島氏) 가신이던 마사노부는, 사직 후 가시마신궁에 기원하자 검술의 극의를 기록한 '천구서(天狗書)'를 얻었다. 가시마신류 사범가에 대대로 전해지는 천구서는 마사노부의 친필이라고 하여, 사범가의 증명이 되었다. 또, 마사노부는 오의 '히토츠노타치'의 발안자라고 한다. 전술한 기원 당시 쿠니이 겐하치로(國井源八郎)와 교류하고 있어, 겐하치로를 후견인으로 하여 유파를 열었고, 이후 쿠니이가에서 종가를 맡고, 카미이즈미 노부츠나(上泉信綱)를 필두로 마사노부의 제자들이 대대로 사범가를 계승했다. 이후 사범가는 도쿠가와 막부로부터의 탄압을 피하기 위해 유파명을 바꿔 신카게류(新陰流)라고 하였다고 한다. 제12대 종가 쿠니이 다이젠(國井大善)이 직심영류(直心影流)의 면허를 받은 시점에 종가와 사범가를 통합해서 18대 쿠니이 젠야까지 이어졌다. 현재 종가는 21대 쿠니이 마사카츠(國井正勝), 사범가는 19대 세키 후미타케(關文威)가 맡고 있다.

방어와 공격을 항상 동시에 행하고, 검을 휘두르지 않고 한동작에 치며, 모든 기술에 우라와자(裏技)가 존재하는 등, 무술의 성질을 나타내는 '오개법정(五ヶ之法定)'이라는 원칙을 기본으로 하여 기술이 성립되었고, 고등기술 역시 그 발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또 유술 등 기타 무술 역시 검술과 거의 같이 행할 수 있다. 그리하여 창술 등은 마니와넨류(馬庭念流)와 마찬가지로 일반적인 창술과는 그 손잡는 방법이 반대이다.

3. 전승에 관한 의문점

가시마신류 측의 주장에 따르면,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의 명에 의해 가시마의 전서는 불태워져셔, 가시마신류에 관한 전서는 거의 남아있지않다고 한다. 그 주장의 진위와는 별도로, 입증 가능한 자료가 없어 18대 쿠니이 젠야 이전의 역사에 의문을 갖는 견해가 많다.

이런 의문을 가진 견해에서는, 현재의 가시마 신류는 쿠니이 젠야가 수행한 마니와넨류, 신카게류, 묘도류 유술 등을 중심으로 하여, 쿠니이 젠야가 독자 기술을 합쳐 성립한 무술이라는 의견이 많다.


[1] 히토츠노타치(一の太刀)라고도 한다.[2] 대동류 합기유술의 개조. 대동류 측에서는 대동류를 현대에 알린 중흥조로 칭하나, 대동류 자체가 소가쿠가 배운 여러 고류 무술을 통합해 만든 무술이라는 견해가 정설이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3] 아이키도의 개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