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오츠이치가 2006년에 집필한 소설. 총 10개의 단편이 들어 있는 단편집이다. 5편을 골라 옴니버스 형식으로 영화화도 되었다.
2020년 고요한숨에서 엽편소설 <옛날 저녁놀 지는 공원에서>를 추가해 일곱 번째 방이란 이름으로 재출간 하였다.
2. 상세 줄거리
2.1. SEVEN ROOMS
'나'와 누나는[1] 길거리에서 장보러 간 엄마를 기다리다가 의문의 습격을 받은 뒤 기절하고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밀실에서 눈을 뜬다. 흐릿한 전구와 방을 가로지르는 도랑밖에 없는 휑한 방은 철문으로 굳게 닫혀있고 문 밑 틈으로 하루에 한 번 식빵 한 장과 물이 지급된다. 도랑은 폭이 좁지만 어린아이인 '나'는 몸이 작아서 들어갈 수 있었고, 도랑을 통해 옆 방들을 들어가 그곳에 갇힌 피해자들을 만나게 된다.나와 누나가 갇힌 방을 포함해 방은 총 7개 있었고 주인공들이 갇힌 방은 네 번째 방이었다. 여섯 번째 방을 제외하고 모든 방에는 젊은 여자가 한 명씩 갇혀 있었는데 나는 7번째 방의 여자를 통해 그들을 납치한 범인이 오후 6시가 되면 방 안의 사람을 살해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6시가 되면 잘게 조각난 시체가 도랑을 통해 떠내려온다는 것이다. 누나의 손목시계가 6시를 가리키자 남매는 도랑을 주의깊게 지켜보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오래된 감금생활로 인해 여자가 미친 게 아닌가 의심한다.
다음날 나는 또 도랑을 통해 옆 방들로 건너가고 어제 비어있던 여섯 번째 방에 새로운 사람이 갇혀있고 일곱 번째 방은 비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나는 여자들에게 방에 며칠째 갇혀있는지를 물어보는데 첫 번째 방은 6일, 2번째 방은 5일, 3번째 방은 4일, 그리고 주인공들은 3일, 5번째 방은 2일, 6번째 방은 1일임을 깨닫는다.[2] 방으로 돌아온 나는 누나에게 그 사실을 전한다. 누나는 바닥에서 자신과 동생의 것이 아닌 긴 머리카락을 발견하고 자신들 이전에 누군가가 갇혀있었다는 것을 알아내며 깨달은 규칙을 동생에게 설명한다.
즉 이 일곱개의 방들은 일주일을 나타내는 것이며 각 방의 인간들은 갇힌 지 6일째의 날 살해당한다.[3][4]더불어 도랑이 첫째 방에서 일곱째 방으로 흐르기 때문에 7번째 방의 여자만이 시체를 보았던 것이었다.
그날은 월요일, 첫번째 방의 사람이 살해당하고 남매는 떠내려온 토막난 시체를 목격한다. 나는 모든 방을 다니며 누나가 알아낸 사실을 피해자들에게 설명한다. 그리고 피해자들과 대화를 나누며 그녀들에게 나가게 되면 부모님께 전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유품을 받는다.[5] 나는 수요일, 도랑에 숨어 세번째 여자가 살해당하는 광경을 목격한다. 범인은 남성으로 문을 열고 들어와 전기톱으로 여성을 조각낸다. 나는 문 반대편에 빗장이 있는 것을 본다.
그리고 여섯 째 날 목요일, 남매는 경직되어 오후 6시를 기다린다. 철문이 열리고 범인이 전기톱을 든 채 들어오자 누나는 남동생에겐 손 못 댄다며 웅크린 채 동생을 감싼다.
2.1.1. 결말
살해 예정시각 전, 누나는 작전을 세우고 동생은 그걸 각 방의 피해자들에게 전달한다. 피해자들에게 옷가지를 받아와서 남동생의 윗도리 안에 넣어 더미를 만들고 누나가 그걸 등을 돌린 채 감싸 안아 남매가 둘이 부둥켜 안고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한 것. 범인이 들어와 누나를 썰기 시작하고 나는 도랑에 숨어 있다가 범인이 누나에게 정신이 팔린 틈을 타 밖으로 도망쳐 문을 잠근다. 문은 단단히 빗장이 걸렸기 때문에 당황한 범인이 전기톱으로 자르려 해도 먹히지 않는다. 나는 각 방의 문을 열어 피해자들을 꺼내고 비명 대신 고음으로 깔깔 웃는 누나의 기이한 웃음소리[6]를 뒤로하고 다른 피해생존자들과 함께 탈출한다.
2.2. SO-far
2.3. ZOO
표제작.2.4. 양지의 시
2.5. 신의 말
2.6. 카자리와 요코
요코, 카자리 라는 이름을 가진 두 쌍둥이 자매를 주인공으로 하여 극단적인 편애가 무슨 끔찍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보여주는 작품이다. 요코가 언니인데다가 1인칭 화자임에도 제목에서부터 카자리가 앞에 있는 것을 통해 이 둘이 작중에서 어떤 대우를 받는지 짐작할 수 있다.[7]어머니는 원하지 않는 임신으로 쌍둥이를 낳았는데, 동생인 카자리는 애지중지 곱게 키우는 반면 언니인 요코는 개보다도 못하게 취급하며 학대한다. 방은커녕 이불도 없이 부엌 복도 한구석에 웅크리고 자고, 밥도 안 줘서 하루에 한 끼 학교 급식만 먹으며 연명하고 등등.[8] 카자리 역시 어머니가 하는 것을 보고 배워서 요코를 사람 취급도 안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인 줄 안다. 단적으로 음식을 가져오지 못한 요코에게 카자리는 자기가 씹다 뱉은 음식을 먹으라고 주거나 자기 잘못을 요코에게 뒤집어 씌우는 등, 현실판 팥쥐의 모습을 보여준다. 정말 영유아기때는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의문일 정도.
암울한 상황에서도 요코는 미치코라는 마음씨 좋은 할머니를 만나게 되면서 살아갈 힘을 얻는다. 할머니에게 책도 받았는데, 집에 오자마자 어머니에게 책을 빼앗긴다. 그러던 어느 날, 카자리는 어머니의 방에 들어가 어머니의 물건을 망가뜨리는 실수를 저지른다. 뻔뻔하게도 카자리는 요코가 빼앗겼던 책을 몰래 가져가 요코가 한 짓으로 꾸미려고 했다. 침대 밑에서 이 사실을 몰래 엿들은 요코는 미치코에게 가지만 미치코는 그 전날 노환으로 사망한 뒤였다. 이에 요코는 카자리에게 어머니는 카자리가 물건을 망가뜨린 것을 이미 알게 돼 화가 나 있다고 거짓말을 하고, 자신이 카자리인 척 하여 대신 혼나겠다고 카자리를 설득한다. 결국 둘은 서로 역할을 바꾸고, 가위바위보에서 진 카자리가 먼저 집에 들어가게 된다.
요코가 된 카자리는 건물 밖으로 떨어져 카자리가 된 요코가 보는 앞에서 사망한다. 어머니가 죽여버린 것.[9] 어머니는 카자리인 척하는 요코를 시켜 요코(로 알고 있었지만 사실은 카자리)가 마치 자살한 것 처럼 유서를 위조하게 한다. 흡족해하는 어머니에게 카자리인 척 하는 요코는 '요코(진짜 카자리)는 자살한 것이 아니라 엄마가 죽였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지만, 어머니는 끝까지 자기가 죽인 딸이 그토록 사랑하는 카자리라는 것과 지금 자신의 앞에 앉아있는 딸이 그토록 증오하는 요코인 것을 깨닫지 못한다.[10]
그날 밤 요코는 몰래 집을 빠져나오고, 자신만의 삶을 살기로 하면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물론 무책임한 남자 때문에 원치 않은 아이를 낳은 어머니도 피해자겠지만, 그렇다고 자녀를 학대하고 죽이려고 한 것은 정당화 될 수 없다.[11] 결국 도를 넘은 편애와 학대의 대가를 자신의 손으로 그토록 아끼던 딸을 죽이는 것으로 치렀고, 그것을 깨달았을 때는 자기가 분풀이 할 딸은 이미 자기 곁을 떠났을테니 자업자득이다.
영화판은 원작에 비해 묘사가 순화된 편이다. 예를 들어 카자리가 요코를 학대할 때 영화판에서는 친구들이 카자리를 말리지만 원작에서는 친구들이 카자리에게 동조한다. 그 외에도 소설에서는 어린 요코가 자신을 학대하는 어머니에게 반항하다가 '한번만 더 그러면 손을 믹서기로 갈아버리겠다'는 협박을 듣고 반항을 포기하는 묘사도 있다. 단순히 말로만 협박한 게 아니라 실제로 요코의 손을 믹서기에 갖다 대고 스위치를 누르려고 했다. 요코가 그러지 않겠다고 하자 ‘방금 네 손이 주스가 될뻔 했어’라고 깔깔 웃으며 유유히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더군다나 실수로 자신의 물건을 건드렸다고 재떨이, 두꺼운 그라탕 접시 등으로 안면을 가격하는 등 원작을 읽어보면 이 엄마라는 여자가 사람인지 짐승인지 헷갈릴 정도.
또한 원작에서도 있는 묘사지만 카자리는 옷이 깔끔하고 머리도 단정한 반면 요코는 가출 전까지는 거의 교복밖에 입지 못했고 머리도 다소 지저분하여 두 자매가 받은 대우가 극과 극임을 시각적으로 확실히 표현했다.[12]
현실에서도 외모, 성별, 능력 등을 이유로, 또는 아무런 이유 없이 부모의 편애로 인해 망가진 가정이 많다. 특히 특정 자녀에 대한 편애가 단순히 소외되는 자녀가 사랑과 관심을 덜 받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부모가 소외받는 자녀에게 신체적, 언어적, 정신적 폭력을 가하거나 그 어떤 지원도 안해주거나 더 아끼는 자녀의 들러리로 삼는 등 극단적인 사례도 적지 않은지라 많은 사람들이 요코의 입장에서 공감하고 분노했다. 또한 어머니는 엄연히 언니인 요코에게 '카자리에게만 갔어야 할 양분을 너에게 나누어 준 것만으로도 감사하라'는 식의 망언을 하기도 했는데,[13] 현실 편애 가정에서도 부모가 자신과 편애하는 자녀는 채권자, 학대하는 자녀는 채무자쯤으로 인식하고 학대하던 자녀에게 오히려 부양이나 효도를 강요하는 사례들을 잘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
2.7. Closet
2.8. 혈액을 찾아라
2.9. 차가운 숲의 하얀 집
2.10. 떨어지는 비행기 속에서
3. 기타
이 영화를 리뷰한 유튜브의 댓글이 중지되는경우가 발생했는데 기본적으로 미성년자의 정신적 신체적 학대를 다룬 요소가 있는 작품이 포함되다보니 유튜브에서 고의적으로 댓글을 막아버린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것은 한국계정에 한정된 이야기이며 외국인이 올린 해당 영화의 영상들은 댓글창이 멀쩡하다.[1]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영화판 한정으로 누나가 부르는 '나'의 이름은 사토시다.[2] 식사를 지급받은 횟수로 계산했으며, 7번째 방은 비었으므로 불명.[3] 월요일에 첫번째 방, 그다음 날은 두 번째 방이 살해당하는 식, 남매는 네 번째 방에 갇혀있으므로 목요일에 살해당할 예정이다.[4] 영화에서는 일요일부터 갇혔기 때문에 살해예정일이 금요일로 바뀌었다.[5] 나는 도랑을 자유자재로 다니기 때문에 생존률이 그나마 높기 때문이다. 누나도 계속 도랑 속에 숨어다니며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라고 말했다.[6] 성인 남성을 상대로 이길 수 없으니 자신이 미끼가 된 동안 그냥 도망치라고 했다. 고통스럽게 죽는 대신 범인도 갇혀서 아사하든가, 달아난 피해자들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에게 사살당하든가 체포되어 사형당할 것이므로 복수를 이뤘다는 통쾌한 감정과 자신의 비명소리를 듣고 발이 안 떨어질 남동생을 배려한 마음이 뒤섞여 기이하면서도 애절한 기분이 느껴진다.[7] 더군다나 둘의 이름에서 부터 이 점이 드러나는데, ‘~코(~자/~子)’ 라는 이름은 우리나라의 ‘혜자’, ‘미자’와 비슷한 느낌으로 다소 촌스럽다는 이미지다. 다만 한국과는 다르게 일본에선 아직까지도 간간히 쓰이는 한자이긴 해서 그렇게 문제있는 이름은 아닌데, 동생에겐 ‘카자리’ 라는 예쁜 이름이 있는 반면에 언니에겐 ‘~코’를 이름에 붙여놓은것을 보면..[8] 아예 요코 몫의 음식을 만들지 않는다고 한다. 요코는 당연히 용돈 같은것도 없을테니 밖에서 사 먹는건 꿈도 못꾸고, 휴일이나 방학 때에는 카자리가 먹다 남긴 음식만 먹게 된다는 얘기가 된다.[9] 사실 요코는 이런 결과가 나올 줄 어렴풋이 예상하고 있었지만, 카자리가 자기 잘못을 언니에게 뒤집어 씌우려는 모습을 보고 동생에게 진심으로 환멸을 느꼈기에 그냥 실행했다. '나는 카자리를 진심으로 좋아했다. 하지만 그것도 10초 전까지의 이야기였다. 그 사실을 깨닫자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는 서술이 나온다.[10] 요코에게 ‘쌍둥이인데도 어쩜 저렇게 다를까. 말하는 것부터 걸음걸이까지 정말 역겨워 죽겠어!’라고 퍼부은 폭언이 우습게 느껴지는 행동.[11] 카자리가 어머니의 물건을 부수고 요코에게 누명을 씌우려 했을 때, 요코는 진짜로 어머니께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보통 집안이었으면 잔소리 듣고 끝날 일에 본능적으로 목숨의 위협을 느낄 정도라면 학대가 얼마나 심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상술했듯 정말로 요코(로 변장한 카자리)를 죽여버렸다.[12] 역할 바꾸기 때 카자리는 요코의 옷을 입고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말한다. 하나밖에 없는 교복조차도 제대로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암시하는 장면.[13] 자신을 버린 남자에 대한 분노와 증오, 평소에 받는 스트레스 같은 것들을 몽땅 요코에게 풀어버리고 카자리에게는 온전히 사랑만 줬기에 카자리가 그렇게 애지중지 자랄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