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개
프랑스의 항공 컨소시엄인 SNCASO가 1940년대부터 설계를 시작해 종전 후에 제작한 SO.6000 트뤼토는 비록 생산 단계로 옮겨지지는 못했더라도 프랑스가 처음으로 날리는데 성공한 최초의 제트추진 항공기라는 타이틀을 가져가게 된다. 프랑스의 제트 항공기에 대한 구상은 2차 대전 동안 비밀리에 시작되었고, 연합군에 의해 해방된 후에는 나치 독일로부터 수집한 연구 결과를 활용하여 실용화에 채찍질을 가했다. 전쟁이 끝난 직후 프랑스 정부는 국내 항공산업계에 5대의 프로토타입 제트기에 대한 요구 조건을 발표했다. 전반적인 프로젝트 지연을 피하기 위해, 국산화를 노리고 개발되었으나 그 성능에 문제가 많던 라토-앙쇼나즈(Rateau-Anxionnaz) 터보제트 엔진으로 인해 개발이 자꾸만 지연되고 문제가 속출하자, 독일제 엔진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물론, 프랑스는 이 대안이 실패했을 경우를 가정하여 영국으로부터 롤스로이스 닌(Rolls-Royce Nene) 엔진을 얻기 위한 협상을 계속하는 한편, 이와는 별도로 아타(Atar) 엔진의 연구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었다.1946년 11월 11일, SO.6000의 첫 번째 프로토타입은 테스트 파일럿 다니엘 라스텔(Daniel Rastel : 1907~1969)이 조종하여 초도 비행에 성공했고 이 낭보는 전 프랑스 국민에게 전해졌다. 독일과 영국, 미국, 소련에 이어 세계에서 5번째로 제트기의 실용화에 성공을 거둔 이 위업은 전쟁의 패배를 떨치고 다시 일어난 프랑스의 저력을 세계만방에 알리는 중요한 진보로 여겨졌다. 트뤼토는 지상에서 실시될 정적 테스트 전용 실험기를 포함하여 합계 5대의 시제기가 시험 프로그램을 위해 제작되었다. 이처럼 단발성 프로젝트가 아닌 트뤼토는 성공적으로 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만들어지는 동안 발전된 관련기술에 따라 더욱 고성능의 제트전투기들이 연달아 출현하자 실용기 생산은 중지되었다.
2. 기원
클래식 제트기에 관한 권위자로 통하는 항공 작가 피터 케이길(Peter Caygill)에 따르면, 프랑스의 항공 산업은 2차 대전으로 인해 아마도 다른 어떤 나라보다 더 큰 피해를 입었을 것이라고 하는데 사실 이 주장에는 크게 다른 이견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한때 세계 정상급의 항공기술력을 가졌던 프랑스 산업계와 정부 관리들은 모두 힘을 합쳐 최신 정보와 기술의 연구와 실용화 시험을 멈추지 않아 원래의 지위를 되찾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특히 프랑스는 2차 대전에 참전했던 다른 연합국들에 비하면 독일 기술진들의 고속기 연구에 관해 보다 손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고, 프랑스로서는 이 찬스를 이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재건에 나선 프랑스 항공업계는 이러한 배경과 요소들이 결합되어 선진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는데 큰 자극을 받고 앞으로 나아갈 추진력을 얻을 수 있었다.또한 제인 연감을 편찬해낸 저명한 항공 역사가 존 테일러(John W.R. Taylor : 1922~1999)는 전후 프랑스에서 처음 시작된 새로운 항공 프로젝트들에서 SO.6000 트뤼토야말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실제 첩보 당국과 산업 스파이들까지 줄에 닿아 있던 그의 조사와 연구에 따르면 SO.6000의 시작은 프랑스가 아직 독일 치하였던 비시 프랑스 정부에서 벗어나지 않았던 1943년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 연구에 의하면, 이 항공기는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한 동안 프랑스 파리 출신의 항공기술자 류시앙 세르방티(Lucien Servanty : 1909~1979)가 비밀리에 이끈 연구와 실험에 기초하고 있다고 한다. 전쟁이 끝나자마자 내각 수반이 된 샤를 드골 장군은 시험용으로 5대의 시제기를 제작할 것을 의뢰하는 제트기 국산화 사업에 관한 요구서를 내걸었다.
1946년 11월에 이 원형기가 처음 이륙에 성공하고 며칠 후 총선이 치러졌고, 공산당이 득세하면서 프랑스 제4공화국 시대가 열리게 된다. 드골의 후임자로 뱅상 오리올(Vincent Auriol)이 대통령이 되었으나, 그 또한 제트기 국산화 사업에는 손을 대지 않고 계속 연구할 수 있게끔 조치를 취했다. 아마도 만일 이때 정치적 논리를 대입시켜 SO.6000 프로그램을 중지시켰다면, 막 재건되며 기지개를 켜고 있던 프랑스 항공산업은 복구불능의 타격을 입었을 것이고 그렇게 잃어버린 기회는 드골이 1958년에 권좌를 되찾을 때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두말할 나위없이 그랬다면 항공업계에서 세계 2, 3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지금의 프랑스는 없었을 것이 분명하다.
3. 개발과 특징
SO.6000은 제트 엔진을 장착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부분은 기존의 레시프로 항공기와 다를 것이 거의 없는 전통적인 고정익 형상을 하고 있다. 컴팩트하고 아무런 무장을 갖추지 않은 2인승으로, 중익 배치의 날개는 후퇴각이 전혀 없는 테이퍼형 날개가 붙여져 있었다. 굵직하고 내부가 꽤 넓은 동체는 여러 가지 다른 종류의 제트 엔진을 쉽게 장착하기 위해 일부러 고려된 것이었다. 말하자면 SO.6000 트뤼토는 제트 엔진을 달았다는 점을 제외하면 기존의 피스톤 엔진기 특징을 더 많이 보이고 있어 프로펠러에서 제트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특징을 가감없이 잘 보여주고 있다. 단, 몇몇 항공 평론가들은 트뤼토에 관해 아무런 상상력이나 영감이 없이 만들어진 결과 별다른 독창성을 보이지 못하고 있어 먼저 제트기를 연구했던 영국과 미국의 수준에 상당 부분이 미달되고 있어 만족스럽지 않은 기종으로 평가하기도 한다.처음부터 제트 엔진에 의해 추진력을 제공받는 것을 고려하여 설계가 진행되더라도, 당시 기술로는 그러한 완전히 다른 엔진을 항공기에 설치한다는 건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달라진 엔진의 위치와 추력 제공 방식으로 인한 양력 중심과 기축선의 변화, 프로펠러 팩터가 없어지자 필요가 없어진 좌우 비대칭 설계 등등 신경써서 재검토해야만 할 사항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던 것이다. 개발 초기에는 프랑스가 국산 엔진으로 독자 개발하고 있던 라토-앙쇼나즈 GTS-65 터보제트 엔진을 받기로 계획되었다. 그러나 이 엔진은 무겁고 완성도 지연되는데다가 추력도 1,275 kg 수준에 그치고 있어 실망스러운 결과만을 보이고 있어 아예 종전 직후 배상금조로 나눠 받았던 Junkers Jumo 004-B2 엔진을 원형 1호기에 채택하기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