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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1 17:50:51

Mk.45 중어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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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1024px-Mark_45_Nuclear_Torpedo.jpg

1. 개요2. 제원3. 개발 & 운용4. 관련 문서

1. 개요

미국웨스팅하우스에서 개발한 지름 483mm의 중어뢰. 1963~1976년 사이 미 해군의 거의 모든 잠수함에서 운용됐다. 미국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개발한 핵탄두 탑재 어뢰였는데 당시 핵을 성애하는(...) 무식한 시대적 분위기에서 나온 산물일런지 모르나 덜 떨어진 기술력을 파괴력으로 만회해보고자 하는 불가피한 시도로서도 해석이 가능하다. 적 잠수함을 정확하게 타격하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가까이 접근해서 핵탄두의 폭발력으로 압궤시키는 운용지침을 지니고 있으나 결국은 핵에 대한 의존과 우스꽝스러움만 여실히 보여줬다. ASTOR (Anti Submarine Torpedo)라는 별명까지 지어주며 나름 야심차게 개발했지만 1970년대 중반 Mk.48이 배치되면서 급격히 도태됐고 잔여 물량들을 재래식 탄두로 교체해서 우방국에 땡처리를 시도했으나 도입한 국가는 거의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름이 19인치라 일반 21인치 어뢰발사관에서는 Mk.37처럼 가이드 레일을 설치해야 운용이 가능했다.

2. 제원

Mk.45 Mod 0
길이 5.71 m
지름 483 mm (19 in)
무게 1,060 kg
탄두 W34 (11 kt)
사정거리 10,000~13,500 m
속도 40 kn
최대심도 ?
유도 무유도 (유선유도)
추진 해수반응식 배터리
플랫폼 잠수함
개량 Mod 0 (1963) Mod 1 (?) Mod 2 (?)

3. 개발 & 운용

미국이 어뢰에 핵을 실어보려는 의도는 맨해튼 계획이 진행되던 1943년 무렵에 시작됐다. 당시 해군 군수장교였던 윌리엄 파슨스 (William S. Parsons) 대령은 미군 함정들과 병사들의 피해가 심각해지자 뇌격기에서 투하하는 Mk.13 어뢰에 핵을 탑재하면 일본군 함정을 격침시키는 건 일도 아니겠다는 판단을 한다. 그러나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반대에다 거사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꼴랑 어뢰가지고 씨름하는 것은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고 탄두의 소형화에 따르는 기술적 문제도 있어 곧 포기하게 된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소련이 새로운 적으로 부상하자 잠수함에서 복무했던 일부 장교들과 엔지니어들이 핵어뢰에 대한 연구를 제안했고 비록 시제품이 당장 나오거나 그러지는 않았지만 개념연구 등의 활동은 소소하게 진행되어 간다.

그런데 1950년대 중반 소련이 재래식을 포함해서 원자력 잠수함을 대량으로 건조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뭔가 묘한 분위기가 흐른다. 지금까지 잠수함은 수면의 적 함정을 격침시키는 것이 0순위 목표였고 적 잠수함은 구축함에서 폭뢰를 살포하거나 초계기를 띄우는 등의 고전적 방법으로 해결이 가능했지만 이제는 대다수가 새로운 수단이 필요함을 인식하게 됐다. 심심하면 위로 올라와야 하는 재래식과는 달리 SSN은 식품만 있으면 수중에 얼마든지 짱박혀서 적을 괴롭힐 수 있었고 아니나 다를까 미국은 USS 노틸러스 (SSN-571)의 성공으로 이 장점을 99%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제 잠수함을 잡으려면 잠수함끼리 직접 교전해야 한다는 의미가 됐고 게다가 그 시기에 등장한 노벰버급 잠수함은 소련 최초의 SSN임에도 상당히 조용한데다 속도도 빠르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걸 때려잡을 수단을 구상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당시 미국이 지닌 대잠수함용 어뢰는 1940년대 초반에 기뢰를 개조해서 제작한 Mk.27이 유일했으나 사정거리는 둘째치고 최고속도가 노벰버급의 딱 절반인 15 kn에 불과해서 고물상이나 갖다줘야 할 물건이었다. 그러다가 나온 산출물이 잘 알려진 Mk.37인데 이것도 초기에는 별 황당한 문제들이 자주 보고된데다 교전은 가능하겠지만 완전히 압도하기에는 많이 모자란 물건이라는 냉정한 평가가 나오면서 고민을 더욱 부채질했다. 물론 이것도 개량을 거듭해서 좀 써먹을 수 있을 만큼 다듬어지기는 했지만 역시 Mk.48의 등장으로 바로 밀려나버렸고 거의 재개발이나 다름없는 개량으로 NT-37이라는 파생형에 이르렀을 때는 미 해군이 아예 채용을 안한데다 수출도 별로 재미를 보지 못했다.[1]


1956년 12월 무렵 과거 핵어뢰에 대한 누적된 연구를 토대로 시제품의 개발이 시작됐는데 물론 반대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소련도 핵어뢰를 만지작거린다는 이야기는 개발에 충분한 명분을 주게 된다. 어쨌든 1961년 웨스팅하우스가 11 kt의 위력을 지닌 W34 탄두[2]바닷물을 전해액으로 쓰는 배터리가 결합된 어뢰를 내놓긴 했는데 과연 그 기간동안 해군과 제작사는 R&D를 똑바로 하긴 한 건지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의 산출물이 나오게 된다. 물론 당시의 능력으로 지금과 같은 하이테크 기술이 집적된 어뢰를 만들어낼 수도 없고 시간과 돈을 바른다고 뚝딱 해결될 일도 아니겠지만 수면 위도 아니고 3차원 공간인 수중의 목표물을 아무런 탐지능력도 없이 잡으려 한 것은 그냥 놀부심보에 가까웠다. 그냥 핵의 무식한 위력만 믿고 추적과 유도를 모조리 잠수함에게만 할당한데다 능동소나만 사용할 수 있게 설계되어 스스로도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러니까 핑을 때려서 뭔가 잡히면 어뢰를 발사하긴 하는데 능동소나의 특성상 소련 잠수함도 당연히 이걸 들을테니 잽싸게 튀든가 미군을 향해 반격할 여력[3]을 만들어주게 되고 결국 공격하는 행위는 오히려 바보짓으로 둔갑할 수 있었다.

더 한심한 점은 탄두의 화력이 미치는 반경이 어뢰의 사정거리인 13 km를 초과한다는 것으로서 발사한 주체인 미국 잠수함도 가만히 놀고 있다가는 뭔가 피해를 입을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싼 똥 내가 밟아 내가 미끄러진다 그래서 어뢰를 쏘게 되면 조만간 들이닥칠 어마어마한 충격과 물폭풍(?)을 피해 후진이라도 해서 회피기동을 할 것인지 고민이 필요했고 승조원들은 저 망할놈의 어뢰를 쏘는 순간 잠수함 2척 (Him & Me)이 격침된다며 탄식을 내뱉는 난감한 상황이 벌어진다(...) 또한 어뢰가 발사되면 현재의 Mk.48이나 DM2A4처럼 유선유도 와이어를 늘어뜨리며 항주하는 것처럼 보여지긴 하는데 이 와이어는 잠수함의 지령대로 유도 데이터를 전송하긴 하나 탄두를 기폭시키는 목적에 더 치중하고 있었다. 망망대해에서 행여 불발탄이 나와 분실하는 꼬라지가 됐다가는 위에 불려가 원산폭격하는 것은 물론이요 소련군도 개떼처럼 몰려와 주워가려고 별 짓을 다 하니까 명중을 하든 말든 터뜨리는 것만은 확실히 하겠다는 의도였다. 비유하자면 크레모아 본체 (어뢰)와 격발기 (잠수함)를 잇는 전선에 불과한 역할인데다 핵으로 조질거니까 당연히 근접신관이 있을 리가 없어서 도대체 이걸 언제 폭파시켜야 하는지는 전적으로 능동소나의 반응만 보고 판단해야 했다. 물론 피해반경이 워낙 커서 뭔가라도 손상을 입을 가능성은 높았지만 제대로 직격해서 압궤시키는 것은 거의 뽀록에 가까웠다. 만약에 목표를 잃어버리거나 소나가 먹통이 된다면 어떻게 회수할 방법도 없어서 그 때도 무조건 터뜨려야 했다(...)

이렇게 불안하고 운용도 까다로운 특성 때문에 많은 회의적 시선을 가져왔으나 현실적인 문제는 어떻게든 해결해야 했기에 결국 1963년 미 해군의 거의 모든 잠수함에 골고루 분배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함장 이하 모든 승조원들 가운데 이 위험천만한 물건을 흔쾌히 쓰자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소련군에게 완전 포위돼서 이판사판의 상황이 아니면 그냥 잘 보관만 해두자는 것으로 서로 암묵적인 타협을 했다(...) 그런데 1965년에 UUM-44 SUBROC (Submarine Rocket)이라는 일종의 대잠수함 로켓이 등장해서 많은 승조원들의 마음을 편하게 했는데 이것도 핵탄두였고 어뢰발사관에서 기어나오는 것까지는 동일했지만 수면 위로 날아올라 최대 50 km 가량을 비행한 후 적 잠수함이 있을만한 구역에 다시 들어가서 폭발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탄두의 위력도 5 kt 가량으로 줄어서 훨씬 안전했고 적 함대가 몰려있는 군락에도 투하시킬 수 있는 등 작전의 유연성도 있었는데 이것도 역시 핵탄두라 반경 약 8 km 이내에는 절대 얼씬도 하지 말라는 지침이 있었다.

추후 자잘한 파생형들로 교체되긴 했지만 구조적인 한계가 뚜렷했기에 별반 특이할 만한 사항도 없었고 1970년대 중반 Mk.48이 보급되면서 당시 중구난방으로 운용되던 어뢰들 가운데 가장 먼저 퇴역이 완료됐다.

4. 관련 문서

(영문 위키백과) Mark 45 torpedo

[1] 소련도 상황이 비슷해서 똘똘한 어뢰를 만들고자 온갖 개고생을 다 했지만 대부분 덜 떨어진 졸작들만 나오자 책임자 동무들을 모두 시베리아로 보낸 후 플루토늄 239로 충전된 RDS-9 (РДС-9)라는 3 kt 소형 핵탄두를 533 mm 어뢰 껍데기에 넣고 수중 핵실험을 시행했다. 미국이 SSN에 대한 고민으로 핵어뢰를 만든 것과는 달리 미 항모전투단에 대한 두려움과 스트레스 때문에 시작한 것인데 게다가 1955년 포레스탈급 항공모함이 취역하자 소련이 느끼는 압박은 더더욱 심각해졌다. 1955년 9월 21일 노바야 제믈랴 인근 수중에서 제대로 기폭이 되긴 했지만 연쇄반응은 없는데다 반경 300 m에 위치한 구축함 1척만 침몰시키는 불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온다. 그래도 엄청난 전략적 포지션을 지닐 수 있는 물건이라 53-58이라는 이름을 붙인 후 실전에 배치했고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카리브에 배치된 소련 잠수함 대부분이 이걸 지닌 상태였다고 한다. 이것도 무유도 방식에 약간은 실험적인 성격으로 개발된 물건이라 일선에서는 그리 썩 좋은 소리는 듣지 못했고 1973년 65-73이라는 20 kt 짜리 탄두를 탑재한 신제품이 나오자 바로 도태되기 시작했다. 65-73은 650 mm의 지름에 무게는 무려 5톤에 달했고 항공모함보다는 노퍽이나 샌디에이고 등에 위치한 미 해군기지를 한 방에 증발시키려는 목적으로 제작됐다(...) 당연히 퇴역한 상태며 소련/러시아의 잠수함 가운데 오스카급처럼 650 mm 어뢰발사관을 지니고 있다면 과거 이 어뢰나 재래식 탄두 파생형 (65-76)을 운용했던 것이라 보면 된다. 참고로 쿠르스크 함 침몰사건의 원인은 65-76 어뢰의 유지보수 불량으로 산화제인 과산화수소가 누출 후 폭발한 것으로 결론이 내려졌다.[2] 화력이 비교적 아담한(?) 편이어서 초계기에 탑재하는 핵폭뢰의 탄두로도 응용됐다.[3] 그러나 그 시기 소련 해군 역시 똘똘한 대잠수함 어뢰가 없어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대응을 하기는 힘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