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10px 10px; background:#000000"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0" {{{#!wiki style="margin: -5px -0px"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argin: -5px 0; min-width: 25%" {{{#ffffff {{{#!folding [ 정규 앨범 ] | ||||
Got To Be There 정규 1집 1972. 01. 24. | Ben 정규 2집 1972. 08. 04. | Music & Me 정규 3집 1973. 04. 15. | Forever, Michael 정규 4집 1975. 01. 16. | |
Off the Wall 정규 5집 1979. 08. 10. | Thriller 정규 6집 1982. 11. 30. | Bad 정규 7집 1987. 08. 31. | Dangerous 정규 8집 1991. 11. 26. | |
HIStory: Past, Present and Future, Book I 정규 9집 1995. 06. 20. | Invincible 정규 10집 2001. 10. 30. |
{{{#!folding [ 기타 앨범 ]
{{{#!folding [ 싱글 ]
{{{#!folding [ 관련 문서 ]
}}}}}}}}} || Benefit concert by Michael Jackson MJ & Friends | |
<nopad> | |
세계전쟁의 희생자 및 불우어린이돕기 자선 콘서트 - 마이클 잭슨과 친구들 | |
시작일 | <colbgcolor=#ffffff,#191919> 1999년 6월 25일 |
종료일 | 1999년 6월 27일 |
횟수 | 2회 |
지역 | 아시아, 유럽 |
주최 | MJ COMPANY 마마 콘서트&라우사 |
기획 | 제일기획 (서울 공연) |
후원 | 유네스코 세계적십자연맹 넬슨 만델라 어린이재단 |
1. 개요
"MJ & Friends"는 1999년 6월 25일부터 6월 27일까지 전세계 2개 도시(서울 서울올림픽주경기장, 뮌헨 올림피아슈타디온 뮌헨)에서 개최한 마이클 잭슨 자선 콘서트이다.2. 상세
지구상의 많은 어린이들은 어른들의 정치적 목적이나 욕심 때문에 고통받고 있으며 이들을 돕는 것은 자선이 아니라 우리의 임무이다. |
한국에 다시 오게 돼 매우 기쁘고 여러분의 따뜻한 환대에 감사드린다. 아울러 이번 공연과 관련, 그동안 혼란과 심려를 끼친 점에 대해 심심한 사과를 드리고 싶다. |
전세계적인 스타이자 가수 마이클 잭슨이 1999년에 전세계 개최한 2개의 도시 콘서트로, 건즈 앤 로지스의 슬래시를 포함한 수 많은 뮤지션들이 함께 했다. # 이 투어의 목적은 아프리카 코소보 및 기타 지역의 어린이들을 위한 기금을 모이는 것이였다. # 마이클 잭슨은 투어 동안 두 번의 콘서트를 열었고, 첫 번째는 1999년 6월 25일 대한민국 서울, 두 번째는 독일 뮌헨에서 개최되었다.
뮌헨 콘서트에서 "Earth Song"을 열창하던 중 올라타 있던 플랫폼이 꺼져서 사고를 당했는데, 당시 사고가 영상에 나온다. 잭슨은 다행히도 무사히 콘서트를 마쳤지만(이 사실을 모르고 본다면 부상 당한지 모를 정도로 태연하게 진행한다) 그 후 이자르 국립병원으로 이송 되었고, 척추 부상 진단을 받게 된다. 그리고 이후부터 심한 허리 통증을 앓게 되었다.
서울에서 먼저 열린 콘서트에서는 사고 없이 동일한 스턴트가 수행되었다. 뮌헨 공연도 서울 공연과 비슷한 내용으로 꾸며졌다.
원래 공연명은 마이클 잭슨과 친구들-어드벤처 오브 휴머니티(Michael Jackson & Friends-The Adventure Of Humanity)이였으나, 마이클 잭슨과 친구들(MJ & Friends)으로 변경 되었다.[3]
공연 실황은 전세계에 생중계되었고, 자선공연을 통해 마련된 기금은 후원사인 세계적십자사와 유네스코, 그리고 넬슨 만델라 어린이재단에 전달되었다. 서울에서의 자선공연 수익금은 ARS 국민성금, 삼성전자 후원금과 합쳐져 유네스코한국위원회를 통한 개발도상국 교육지원 사업에 사용되었다.
또한 서울 공연의 경우 국내 주관 방송사인 SBS에서 총 4부로 생중계되어 최고 42.3%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1부는 10%대의 시청률로 출발했으나 4부에서 마이클 잭슨 공연의 하이라이트 4부에서 42.3%까지 치솟았다. SBS 측에서는 당초 20%대의 시청률을 예상했다고 밝혔으나 예상 밖의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공연 실황중계 중간에 편성된 SBS 8시 뉴스의 시청률도 동반 상승해, 평소의 13~14% 보다 높은 17.3%를 기록하며 공연 중계 덕을 톡톡히 봤다. #
1999년 12월 31일과 2000년 1월 1일, 잭슨은 미국 하와이의 알로하 스타디움과 호주 시드니의 스타디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추가적인 콘서트를 열 예정이였으나, 이 계획은 나중에 취소 되었다.
3. 일정
<rowcolor=#FFD700> 일정 | 국가 | 도시 | 장소 | 관객수 |
1999년 6월 25일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대한민국 | 서울 | 서울올림픽주경기장 | 45,000명 |
1999년 6월 27일 | [[독일| ]][[틀:국기| ]][[틀:국기| ]] 독일 | 뮌헨 | 올림피아슈타디온 뮌헨 | - |
4. 취소 공연
<rowcolor=#FFD700> 일정 | 국가 | 도시 | 장소 | 관객수 |
1999년 12월 31일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미국 | 하와이 | 알로하 스타디움 | - |
2000년 1월 1일 | [[호주| ]][[틀:국기| ]][[틀:국기| ]] 호주 | 시드니 | 스타디움 오스트레일리아 | - |
5. 영상
공연 D-1 SBS 한밤의 TV연예 리허설 현장 단독 보도[Full] |
MJ & Friends 서울 공연 <마이클 잭슨 편집본>[Full] |
MJ & Friends 뮌헨 공연[Full] |
6. 여담
6.1. 공연 배경 및 관련 기록
- 1996년 10월 두차례 서울 공연 펼쳤던 마이클 잭슨은 당초 1998년 4월 북한 어린이돕기 자선콘서트를 그해 10월 비무장지대에서 갖는다고 5개월 전인 5월 15일[7]에서 미국 로스앤젤레스 베버리 힐튼호텔에서 공식 발표하고, 5월 16일 한국 측 공연 주관사인 제일기획에서 서울 롯데호텔에서 공연추진과정과 계획을 설명하는 기자회견을 가졌었다. # 하지만 이 공연은 국제통화기금의 한국 경제위기로 미뤄졌다.
- 1년 후인 1999년 3월, 마이클 잭슨은 지난해 무산됐던 한국 공연을 한국전쟁 발발 49주년 기념일인 6월 25일에 서울올림픽주경기장에 개최한다고 밝히면서 케이프타운의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관저에서 넬슨 만델라 대통령과 함께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세계 어린이돕기 기금 마련을 위한 자선공연 계획을 발표하고 6월 25일과 27일 각각 서울올림픽주경기장과 올림피아슈타디온 뮌헨에서 개최한다고 추가적으로 발표했다. # 국제적인 구호기구와 함께 세계 어린이들을 돕는 공연으로 확대해 열게 된 것.
- 공연 연출은 독일 태생의 마르셀 아브람이 맡았다. 이전에도 마이클 잭슨의 서울 공연을 비롯한 대규모 콘서트를 여러 차례 연출했었다. #
- 무대장비 규모는 모두 400톤 가량으로 공연기술자만 200여명이 참여했다. 서울 공연의 경우 서울올림픽주경기장에 설치되는 무대장치는 폭 57m에 길이 25.2m, 높이 2.4m 규모로 모두 9개의 컨테이너에 실려 11명의 기술자와 함께 영국 및 호주에서 공수 되었다. 무대 설치에 동원될 국내 인력만 약 200∼300명 규모. 항공편으로 벨기에에서 들여오는 3개의 영상장비는 폭 가로 7.2m, 세로 5.7m 크기로 2개는 무대 좌.우측에, 마이클 잭슨의 특수효과를 위해 사용되는 1개의 스키린은 중앙에 각각 설치 되었다. 또한 제일기획 측의 설명에 따르면 공연 전력공급장비는 미국과 싱가포르에서 각각 운송되는 것으로 지난 1996년 마이클 잭슨의 서울공 연 당시 약 30만 가구가 소비할 수 있는 전력량이 사용됐다고 한다. 여기에 이 공연을 위해 특별 고안된 조명디자인과 음향은 미국과 일본에서 들여와 설치되며 불꽃놀이를 위한 특수효과 장비도 도입 되었다. ###
- 입장권 가격은 프리미엄석 30만원, 골드석 22만원, 실버석 12만원, 레귤러석 8만원으로 정해졌다. 지금까지 국내 콘서트 사상(호텔 디너쇼 제외) 최고 입장권 가격을 기록했던 것은 1996년의 마이클 잭슨 공연으로 R석 12만원에서부터 C석 4만원까지 5단계였다. 그러나 3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두배 반으로 뛰어올라 마이클 잭슨은 자신이 세운 기록을 경신한 셈이 된다. # 이런 높은 가격에 대해 일부 시민들은 "4시간 짜리 공연을 보는 값이 외국인 근로자 한달 봉급에 맞먹는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과소비를 조장할 뿐더러 청소년에게 미치는 악영향이 우려된다"고 지적하면서 "북한 어린이를 비롯해 세계의 불우한 어린이들을 도우려면 부자나라에서 개최해 입장 수입을 올려야지 왜 우리나라 사람들의 호주머니를 열려고 하는가"라며 비난섞인 푸념을 터뜨리기도 했다. # 입장원은 5월 27일부터 한빛은행 전국 지점을 통해 판매 되었다.
- 서울올림픽주경기장에서 펼쳐질 공연에 수만명의 관람객이 운집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서울시에서는 관람객들의 귀가를 위해 버스 임시운행 명령 등 교통대책을 마련했다. 6월 24일 서울시는 공연장 주변을 지나는 23개 노선 버스 업체에 추석이나 설등 명절에 귀성인파 수송을 위해 1년에 3∼4회정도 내려지는게 보통인 임시운행 명령을 내려 공연당일에 1시간 연장 운행할 것을 요청했다. 특정 공연 때문에 버스 임시운행 명령을 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또한 서울시는 이와 함께 공연이 끝나는 오후 11시 30분께 지하철 2호선 종합운동장역에공연장을 빠져나온 관람객들이 크게 몰릴 것으로 보고 서울지하철공사에 2편성을 증차토록 했다. 약 5만명 가량이 관람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번 자선공연이 저녁 늦게 끝나 평소의 대중교통 운행체제로는 최대 1만2천여명의 관람객이 귀가길 교통수단을 확보하기가 어려울 것으로 판단하고, 특별대책을 마련한 것. #
6.2. 공연 출연자 및 뮤지션
- 1999년 6월 3일, 서울 공연에 마이클 잭슨을 비롯해 라이오넬 리치와 슬래시, 보이즈 투 멘, 바네사 메이, 스코르피언즈, 알라 푸가초바, 필립 키르코로프, 코코 리, 유덕화, 여명, 루더 밴드로스, 파트리샤 카스, 스티븐 시걸, 스테이터스 쿼, 스트리트 오브 댄스, 엘리자베스 테일러, 로드 스튜어트[8]가 점정 확정 되었다. 반면 당초 출연할 예정이던 케니 G와 록시트, 모던 토킹, 글로리아 에스테판 등은 개인 사정으로 불참하게 되었다. #
- 6월 6일, 국내 가수 대표로는 H.O.T.와 S.E.S.가 확정 되었다. 이 공연의 주관사인 제일기획은 6일 "국내 인기와 국제 무대에서의 성장 가능성을 고려해 두 그룹을 한국 출연가수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H.O.T.는 "불우 어린이를 돕는 자선공연에 세계 정상급 가수들과 함께 하게 돼 기쁘다. H.O.T에 대한 강한 느낌을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도 선보이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 또한 서울 공연에서 마이클 잭슨이 아닌 H.O.T.가 무려 엔딩을 장식해 큰 화제를 모았는데 당시 마이클 잭슨이 엔딩을 맡을 예정이였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아이러니하게도 표가 다 팔리지 못하고 있다가 당대 국내 최고 아이돌이였던 H.O.T.를 섭외하고 나서야 매진이 되었다. 아무래도 앞서 서술한 비싼 입장권 가격이 이유로 보인다. 여튼 H.O.T.의 팬들이 서울올림픽주경기장 공연장 전좌석을 거의 점령하다시피 하고 있어 마이클 잭슨이 엔딩을 할 경우 H.O.T. 공연을 본 팬들이 먼저 공연장을 빠져나갈 것을 대비해 마이클 잭슨 측에서 직접 요청한 것이라고 한다. ###
- 6월 13일, 공연 총프로모터인 마마 콘서트&라우사의 마르셀 아브람 대표는 서울 웨스턴조선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공연 준비상황 등을 밝히면서 출연자가 다소 변경된다고 발표 되었다. 새롭게 합류하는 뮤지션은 머라이어 캐리[9], 블랙스트리트 등으로, 반면 당초 출연이 잠정 확정됐던 라이오넬 리치,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출연 교섭중이던 스티비 원더, 다이아나 로스 등은 불참하게 되었다. #
6.3. 전세계 생중계
- 대한민국 서울 공연은 SBS에서 국내 중계방송권을 따내 단독 생중계했으며, 장장 4시간여에 걸쳐 총 4부로 나눠 방송 되었다. SBS는 서울 공연의 주관사인 제일기획과의 협상에서 별도의 방영료는 지불하지 않되 이 공연을 TV에서 광고하고, 국제신호로 제작해 위성 송출하는 조건으로 방영권을 딴 것으로 알려졌다. SBS 측은 이에 따라 잠실 상공에 헬기를 띄우고, 중계차 2대와 중계카메라 12대를 현장에 동원했다.
- 서울과 독일 공연 실황은 전세계에 생중계 되었으며, 마이클 잭슨의 공연이 전세계로 송출되는 것도 이번 공연이 사상 처음이였다.[10]
- 국내 방송중계권을 가진 SBS 측은 공연 하루 전날 한밤의 TV연예에서 마이클 잭슨의 공연 리허설 현장과, 한국 가수 대표로 공연에 서게 된 H.O.T.의 인터뷰 등이 생방송으로 내보냈다.[11] 그런데 자사 주관의 마이클 잭슨 공연을 홍보하느라 프로그램의 절반 가까운 시간을 할애하면서 정작 예고방송한 프로그램을 내보내지 않아 항의가 빗발치기도 했다. # 태국, 싱가포르 등 동남아 8개국의 방송사가 SBS 생중계 방송을 녹화방송했다. #
6.4. 기타 이야깃거리
- 공연 4일 전인 1999년 6월 21일, 마이클 잭슨은 자녀들과 경호원 등 10여명과 LA발 대한항공 KE018편으로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이날 공항 청사 주변에는 경찰 400여명과 사설경호원 40여명이 집중 경호를 벌였으며 취재진 100여명의 열띤 취재경쟁이 벌어졌다. 마이클 잭슨 공연 전 3일간 용인 에버랜드, 서울 현대백화점, 남산보육원생 등지를 방문했다. ###
- 마이클 잭슨의 리허설 장면에 대해 사진 및 카메라 기자들의 촬영을 3분간 허용했다.
- 공연 전날 제일기획에 따르면 주최측은 출연진들의 총 공연시간이 예상보다 늘어날 것으로 보이자 당초 예정시간(오후 7시)보다 30분 빠른 오후 6시 30분 개막하는 방안을 제일기획측과 협의 중이라고 밝혔고, 공연 당일 출연 순서와 공연 예정시간은 오후 6시 30분 스테이터스 쿼 공연을 시작으로 마지막 출연자인 H.O.T. 무대가 당초(오후 11시)보다 늦은 오후 11시 20분께 끝나는 것으로 변경 되었다. # 이날 공연이 당초 예정시간보다 30분 빠른 오후 6시 30분 개막되면서 이를 모르고 늦게 도착한 관객들의 집단 항의사태가 예상됐으나 공연이 끝날 때까지 5시간 가량 별다른 소동없이 차분히 진행됐다. #
- 마이클 잭슨의 공연에선 기계로 작동되는 돌아오지 않는 다리와 탱크, 그리고 폭죽 등을 동원한 가운데 잭슨과 어린이, 무용수들이 평화를 염원하는 내용의 환상적인 무대 등이 연출 되었다.
- 서울 공연이 성황리에 끝난 뒤, 마이클 잭슨을 비롯한 출연진들은 숙소에서 저녁을 보낸 뒤 6월 27일 독일 뮌헨에서 열리는 자선 공연에 참가하기 위해 전날인 6월 26일 대부분 출국했다.
- 당초 한국의 가수도 '마이클 잭슨과 친구들'의 일원으로 서울 공연과 뮌헨 공연에 참가할 예정으로 계획 되었다. # 한국 가수 대표로 선정된 H.O.T.와 S.E.S.가 독일 뮌헨에서 열린 후속 공연에 마이클 잭슨 공연사 측으로부터 참가 제의를 받았지만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에서 후속 음반 작업 등 꽉찬 국내 일정으로 뮌헨까지 공연하기는 힘들다는 입장을 내면서 최종 고사하면서 아쉽게도 무산 되었다. ###
- 우연히도 10년 후 2009년 6월 25일 마이클 잭슨이 사망하면서 마지막으로 한국을 찾은 6월 25일은 그가 세상을 떠난 날과 똑같은 날짜라는 이유로 이 공연이 재조명 되기도 했다. #
[1] 출처[2] 출처[3] 한국에서는 "세계전쟁의 희생자 및 불우어린이돕기 자선 콘서트 - 마이클 잭슨과 친구들"이라는 타이틀로 TV 생중계 되었다.[Full] Ver.[Full] Ver.[Full] Ver.[7] 한국시간으로는 16일 오전 3시[8] 위성중계 참여[9] 이 공연으로 한국에 처음 내한했다.[10] 유럽 지역의 독일과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에서는 독일의 공영방송사인 ZDF에서 가장 시청률이 높은 시간대에 9시간 동안 방송 되었다고 한다.[11] H.O.T. 멤버 중 장우혁이 어릴적부터 마이클 잭슨이 우상이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