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길 옆 완파된 T-34-85 두대 중 한대 근처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는 모습이다. |
1. 개요
만화가 김형배의 단편 만화.2. 상세
6.25 전쟁 배경의 단편. 90년 6월호 월간 보물섬에 기고한 작품으로, 원래 당시 월간 보물섬 편집부에서 계획한 1년 장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그려진 작품이었는데 어찌어찌 하다보니 6.25 발발 40주기에 맞춰 기고한 작품이 되어 버렸다.[1] 이야기는 대학생 딸을 둔 아버지[2]가 유년시절 자신이 겪었던 한국전쟁 전후 굶주리고 피폐했던 과거를 회상하는 내용의 만화이다. 훗날 소년지였던 보물섬에는 실을 수 없었던 내용을 더 추가해서 서울문화사의 성인만화잡지였던 빅 점프에 개정판을 2회 분량으로 연재하기도 했다.3. 내용
어느 6월. 한 중년 가장이 대학에 다니는 자신의 딸과 외식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스프 맛이 꿀꿀이 죽과 같다며 6월의 기억을 회상하기 시작하는데…그는 한국 전쟁 당시 겨우 5, 6살인 어린아이였다. 어렸을 적 장터 바닥에서 미군이 먹고 버린 짬으로 끓여 팔던 꿀꿀이죽의 맛을 기억하며 그는 "운이 좋으면 소시지나 햄을 먹을 수 있었고, 재수좋으면 그 안에서 고깃덩어히도 나오고, 때때로는 워카창(구두창)에 담배꽁초나 이쑤시개가 나오기도 했다." 고 회고한다. 그러자 딸은 헛구역질을 하며 "아빠때문에 비싼 돈 주고 먹은 스테이크를 토할 뻔 했다."고 말한다.
또한 미군 기지에서 세탁 등 잡일을 하던 '하우스 보이'[3] 형을 떠올리며 "형은 종종 미군들에게서 레이션을 얻어왔는데, 어머니는 형이 얻어온 레이션에서 비스킷 몇개만 항상 자신에게 주고는 초콜렛 등 나머지 맛있는 것들은 장에 내다 팔곤 하셨다." 라고 기억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옛 자신들의 친구들을 회상하는데… 친구들과 미군 '찦차'가 지나가면 그 뒤를 따르며 "기브 미 쪼꼬렛또'를 외치면 미군들이 초콜렛이나 껌을 던져주던 기억으로 시작하는 이 이야기는 결국 친구들이 전후 피폐한 세상에서 겪어야 했던 죽음과 아픔을 담고 있다.
- 화자는 형이 일하던 미군 부대에 심부름 갈 일이 생긴다. 꼬마 아이를 본 미군들은 아이와 놀아주려 하지만, 자신은 겁이 나서 울음을 터뜨려 버린다. 하지만 미군들이 자신을 놔주지 않고 안아대면서 놀려대기 시작하자 그 모습을 본 형이 나타나 달려들어 박치기로 그 미군을 때려눕히고 그 날로 하우스 보이를 때려치운다.
- 두 번째로 화자는 전쟁 중에 자신이 겪었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인민군 치하의 서울, 어머니는 병들고 둘은 죽도 먹지 못하고 며칠을 굶은 상황. 자신의 집은 기차역 근처였는데-아마 서울역이나 용산역으로 추정- 근처에는 인민군들이 군량을 실어 나르는 곳이 있었다. 이곳에 인민군이 쌀포대로 기관총 진지를 구축한 곳이 있었고, 아직 둘 다 어린 형제는 이 곳에서 쌀을 얻으러 한다. 하지만 너무 겁이 난 형은 동생을 앞세우며 "넌 어려서 쏘지 않을거야! 빨리 가!" 라며 터널 너머로 떠민다. 잔뜩 겁을 먹고 터널을 지나 조차장 인민군 진지로 간 화자는 그곳에서 '인민군'을 보게 되는데… 아직 열 여섯, 일곱이나 됐을 어린 소년이 기관총을 붙잡은 채 죽어 있었다.[4] 결국 그는 너무 무서워 엉엉 울며 들고 간 그릇에 마구 쌀을 퍼담고 그곳에서 도망친다.[5]
- 늘 숟가락을 칼처럼 차고 다니던 한 친구(통통하게 생겨서 뚱보라고 불렀는데 살이 찐 게 아니라 원래 통통한 것뿐.[6])는 화자와 산 속에서 놀다가 불발된 박격포탄을 줍게 된다. 친구는 위험하다는 생각 자체를 못하고 집에 가져갔고, 마침 친구 어머니는 생일떡을 해주겠다며 그 박격포탄을 절구공이 삼아 쌀을 찧는다. 당시 귀하디 귀한 쌀떡을 먹어볼 수 있다는 행복도 잠시, 결국 박격포탄이 터져 그 친구와 친구의 어머니, 갓난아기인 동생 등 친구의 가족은 몰살당하고 만다.
- 다른 한 친구(여자)는 늘 동냥을 다녔다. 동냥을 다니던 어느 날, 과속하는 미군 짚차를 피하려다가 그만 똥구덩이(거름 구덩이)에 빠져 처참한 모습으로 죽게 된다. 죽은 친구의 어머니는 "아이고 이년아 죽을 데가 없어 똥구덩이에 빠져 죽냐!" 라며 곡을 한다.
- 늘 큼직한 모자를 쓰고 다니던 "쇼리"라는 전쟁고아[7]는 화자와 놀다가 숲에서 총알을 줍게 된다. 둘은 이 총알을 로켓처럼 날려보자며 돌무더기에 총알을 세우고 화약을 빼 불을 붙이고, 오발된 총알은 친구의 눈에 맞아 결국 친구는 한쪽 눈을 잃고 만다.
- 주인공의 첫사랑이었던 춘자 누나는 어느 날 한 미군 병사에게 강간을 당한 후 미쳐버렸고, 결국 달리는 미군 트럭에 매달려 재주를 부리다 떨어져 즉사하고 만다. 이 이야기는 보물섬 연재시엔 수록되지 않았다가 성인지인 빅점프에 개정판이 나왔을 때 추가되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화자는 이제 어른이 되어 딸과 함께 그 터널과 하늘을 응시하며 6월의 끝을 기억하며 만화는 끝을 맺는다.
4. 비평
에피소드 전체적으로 해방 이후 주둔한 미군에 대한 비난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사실 미군들에 대한 비난은 50년대 한국소설에도 자주 나오는 소재였다. 부자인걸 뻐기면서 어설픈 짓만 한다거나 지프차 뺑소니를 친다던가 하는 등등. 그러나 당시 사회 분위기를 고려했을 때 미군의 어두운 점을 부각한 것은 당시로서는 아동 만화 잡지에서 상당히 신선하고 대담했다고 할 수 있다.[8] 무엇보다 김형배 작가 본인이 동란세대로서 작 중의 미군의 좋지 않은 면도 어떤 뜬소문을 과장한 것이 아닌(물론 만화적으로 다소의 각색은 있을수도 있으나) 다큐멘터리적인 부분이 있으니 무조건적으로 판단하기는 곤란하다. "미군은 나쁘다."보다는 "전쟁은 시궁창."이라는 테마가 더 옳다고 보인다.[9]그의 월남전 관련 만화나 주한 미군부대가 소재가 되는 만화에선 미군들의 부도덕한 면이나 부조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건 작가 자신이 상당부분 현장에서 체험한 현실에 입각한 것으로 보이며, 단지 작중에서 미군이 나쁘게 나온다.는 것만으로 작가를 좌파로 몰아 공격할 수는 없다.[10] 단지 전란을 직접 겪은 세대일 뿐.[11]
애초에 미군을 비판할 수도 있고 역사를 고려하면 그 당시의 미군의 부정적인 면을 비판하는 것도 당연하다. 특히 주한미군 주둔 이후 주한미군 범죄 문제는 늘 있었다. 오죽하면 90년대 주한 미국대사인 제임스 레이니조차도 해외 파병 미군 범죄는 가득하다라고 별 거 아니라는 듯이 인터뷰하여 김형곤이 시사개그로 "범죄 저지르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는 걸 보면 헛소리같은 비가 오니 레이니일까요?"라고 방송 지상파에서 깠다. 이렇게, 굳이 절대 반미 빨갱이 아니라고 애써 변명을 할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김형배 작가 이후 세대들이 경험하지 못한 그때 사회상을 잘 묘사한다고 봐야 한다.
[1] 1990년 당시 보물섬 편집부에선 본지에 만화를 연재 중이던 작가 12명에게 매달 한 명씩 돌아가면서 릴레이 형식으로 단편을 그려보는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한다. 단편의 주제는 '고향'과 작가 본인의 유년시절을 다룬 자전적 내용이기만 하면, 장르는 코믹이든, 극화든 상관없다는 식이었는데, 마침 6월의 작가가 김형배 작가였던 것. 당시 김형배 작가는 이 제안을 받고 조금 난감했었다고 한다. 다른 동료 작가들이 지방 출신이었던 것과 달리, 자신은 서울토박이였고, 시골에서 자라 재밋는 추억이 많았던 다른 작가들에 비해 자신의 서울에서의 유년시절은 만화로 코믹하게 그리기엔 그닥..이었는데, 마침 자신의 순번이 6월이고, 이 때가 또 6.25 발발 40주기였는데다, 작가 본인이 유년시절 한국전쟁을 경험했던 세대였기에 발상을 전환해서 그려내게 된 것이 바로 이 '6월의 끝'이었다고.[2] 외모나 직업이 만화가란 언급을 보면 작가 김형배 본인. 김형배 작가 본인도 1947년생이다.[3] 기지에서 잡일을 해주던 잡부 소년들을 일컫던 속어.[4] 정확하게는 도망가지 못하게 쇠사슬로 묶여 있었다.[5] 작중에 나오는 이야기는 아니나, 이 죽은 소년병은 북한 출신 인민군이 아니라 점령지에서 강제 징집당한 소년병일 수도 있다.[6] '코맹이'라는 별명으로 더 자주 불렸다.[7] 송병수의 동인문학상 수상 단편 제목도 쇼리킴이다. 역시 전쟁고아와 양공주를 다룬 작품.[8] 게다가 보물섬은 육영재단, 즉 박정희 계열 재단에서 출판하던 잡지다. 게다가 90년 당시 회사 대표가 박근혜다...[9] 당시 미군에 의한 전쟁범죄나 수많은 문제들이 일어난 것은 사실이다. 동시에 많은 미군들이 고아들을 후원하고 입양하며 전후 한국을 위해 큰 힘을 쏟은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다른 유엔군도 마찬가지였고 터키군도 아동시설을 만들어 고아들을 돌봤다. 2000년 초반에 이러한 시설에서 자란 아이가 이제 60대 노인이 되어 그때 아버지같이 다정하게 대해주던 터키군인을 찾아서 80넘은 그 군인과 상봉했던 일이 터키와 한국 방송에 나온 바 있다. 참고로 이 일화는 영화 아일라로 만들어졌다. 결국 전체적으로 볼 때 이런 점도 있고 저런 점도 있다는 시각도 중요하다. 물론 중공군과 인민군의 침략이라는 사실 자체는 절대 불변이고. 물론 한국에서 무시하는 일이지만 중국과 북한도 무조건 침략만 한게 아니라 대민지원하고 고아 시설을 만들었다든지 교육시설을 만들었다든지 똑같이 민심도 생각했다. 뭐 북한에서도 똑같이 한국군이나 미군이나 유엔군에 대한 건 저런건 무시하겠지만 말이다.[10] 그의 다른 작품들을 보면 86세대와 좌파 계열 시민운동에 대해 부정적 의견도 보이는 편이다.[11] 비슷한 세대의 다른 만화가들도 그런 면을 보인다. 고바우 영감으로 유명한 김성환(항목 참고)이나 한국 최초 극장애니 홍길동(1967) 감독인 신동헌, 다모, 바람의 파이터로 알려진 방학기...여러 작가들도 비슷한 기억을 겪은 걸 회고한 바 있다. 방학기같은 경우는 아예 동네 마을 촌장의 딸이 미군들에게 능욕당하는 걸 목격하기까지 했으나 사람들은 대들면 빨갱이로 낙인찍힐까봐 아무 소리 못했고 그 딸은 미쳐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렸다고 한다.게다가 방학기는 어릴적에 북한 인민군이 간악하긴 커녕 좋은 사람만 운좋게? 만났는데 북한군이 살던 마을로 와서 약탈은 커녕 북한 돈이긴 해도 돈을 꼬박꼬박 내고 물건 사가고 사람들을 징용해도 돈을 주었으며 예의바른 군기잡힌 군대였다고 한다. 그 부대가 물러나고 온 국군과 미군 부대가 되려 약탈과 횡포가 심해서 마을 사람들은 속으론 증오를 품었다고 한다. 참고로 방학기는 부사관으로 군에 복무했으며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