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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1-08 09:19:20

2020년 니스 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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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니스 테러
2020 Nice Stabbing
L'attentat de la basilique Notre-Dame de Nice
<colbgcolor=#bc002d> 발생일 2020년 10월 29일
발생 위치 파일:프랑스 국기.svg 프랑스 니스 노트르담 성당[1]
(북위 43°42′11″ 동경 7°15′57″)
지도
유형 테러
원인 이슬람 극단주의
인명 피해 <colbgcolor=#bc002d> 사망 3명
부상 1명(피의자)
[clearfix]


파일:dfw.jpg 파일:니스테러후바실리카.jpg

좌측 사진에 나오는 것처럼 테러가 일어난 지 며칠 뒤 희생자들의 영정이 입구 맞은편에 있었지만 2022년 봄 기준으로 우측 사진과 같이 희생자들의 영정이 십자고상과 테러 상황을 설명하는 현판과 함께 (제대를 기준으로) 오른편에 설치되었다.

1. 개요2. 피해자3. 피의자4. 반응
4.1. 공화국 원칙 강화 법안
5. 관련 문서

1. 개요

2020년 10월 29일[2] 현지 시각 오전 9시 니스 시내에 위치한 성모 마리아 바실리카 성당[3] 앞에서 무슬림 남성이 흉기 테러를 저질러 최소 3명이 사망한 테러 사건이다.

2. 피해자

피해자 중 60대 여성인 나딘 드비에(Nadine Devillers)은 피의자에게 성당 내부 세례대 바로 옆에서 목이 거의 잘린 채로 발견되었고 두 번째로 희생된 54세 중년 남성인 뱅상 로케(Vincent Loquès)은 바실리카 성당에서 근무하는 관리 직원으로 피의자의 칼에 찔린 채 발견되었다. 나머지 한 명의 희생자인 시모니 바레투 시우바(Simone Barreto Silva, 44세)는[4] 피의자를 피해 근처 주점으로 도망가던 중에 뒤따라간 피의자에게 칼이 찔려서 성당 근처에서 발견되었다. 그 외에 다수의 부상자도 발생했으며 부상자들은 인근 병원으로 이송되어 치료를 받았다. 한국인 피해자는 없다고 한다.[5] #1 #2 #3 #4

3. 피의자

피의자는 튀니지 출신의 21세 남성 브라임 아위사위(إبراهيم العيساوي Brahim Aouissaoui / Brahim Issaoui)로 9월 말 이탈리아로 입국한 다음 10월 9일 프랑스로 온 상태였다.# 피의자는 현지 시각 9시 30분경 경찰에 의해 제압되었고 병원에 실려가면서도 반복적으로 알라후 아크바르를 외쳤다고 한다. 체포 당시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중상을 입은 용의자는 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았으나 예후가 긍정적이지는 않다고 전해졌다. # 성당이라는 장소를 의도적으로 고른 뒤 무고한 불특정 가톨릭 신자를 대상으로 범행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범행 다음 날 현지 시각 저녁 7시 즈음에 공범이 검거되었는데 40대 남성으로 사건의 주범이었던 범인의 뒤를 봐 줬다는 혐의로 붙잡혔다. 31일 테러 용의자와 접촉했거나 관련이 있는 30대 남성 2명이 추가로 체포되었다.

11월 3일에 니스 테러를 저지른 용의자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4. 반응

파일:IMG_20201101_175136.jpg

테러 다음 날에 찍힌 사진으로, 조형물 위에 검은 띠를 둘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의미를 담았다.[6]

이 테러는 프랑스가 이슬람 세계와 심각한 갈등을 벌이던 와중에 발생했다. 사뮈엘 파티 피살 사건으로 인해 프랑스와 아랍권 사이의 긴장이 격화되면서 일어난 것으로 보이며 사건 발생 2시간 후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직접 와서 사건 현장을 시찰하고 바실리카 성당 앞에서 이슬람 극단주의를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아비뇽에서도 흉기 위협이 있었고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 있는 프랑스 영사관에서도 비슷한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1 #2

2020년 10월 31일 오스트리아 비엔나가톨릭 성당터키인 또는 터키 출신이거나 터키 정부와의 배후를 의심받는(Turkish Background) 이슬람 극단주의30~50여 명[7]알라후 아크바르를 외치며 공격하였다. 오스트리아나고르노카라바흐 분쟁에서 아르메니아 편을 들고 있기때 문에 사뮈엘 파티 피살 사건과 연계하여 2020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에서 아르메니아 편을 든 오스트리아에 대한 보복 차원 등 다양한 원인으로 오스트리아 성당을 공격한 것으로 풀이되었다. 기사 오스트리아 내무부는 종교의 자유는 타 종교에 대한 테러까지 허용하는 게 아니라며 비난했다. 기사 제바스티안 쿠르츠 오스트리아 총리는 배후 조사를 철저히 할 것이며 그 어떤 경우에도 자신이 믿는 종교가 아닌 타 종교에 대한 공격을 선동하거나 공격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기사 하지만 이 사건에 대해 반박 기사가 올라왔다. 오스트리아에 거주하는 터키인들은 해당 반달리즘이 이주자 그룹에 의해 시도되었으며 Islamische Glaubensgemeinschaft (이슬람신앙공동체)라는 터키인들의 종교 모임이 안톤 폰 파두아 성당으로 가서 추가적인 반달리즘을 방지하기 위해 스크럼을 형성했고 방문하는 모든 이들에게 장미꽃을 나누어주고 크리스토프 쇤보른 추기경(Christoph Schönborn)과 면담을 가졌다는 보도와 사진이 올라왔다.##

터키와 프랑스 사이의 외교적 갈등과는 별개로 터키 외교부는 프랑스에 공식적으로 "니스의 노트르담 성당 내에서 벌어진 테러공격을 강하게 비난한다. 또한 우리는 프랑스 국민들과 더불어 테러와 폭력에 맞서 연대하고 있음을 강조하고자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

2020년 11월 1일 사건이 일어났던 바실리카 성당에서 니스 교구장 집전으로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위령미사가 열렸으며 인터넷으로 생중계되었다. 안전상의 문제로 일부 인원만 참석했다. 이후에도 니스의 대부분의 성당이 미사 시간에만 개방하거나 심지어는 완전 폐쇄를 하는 경우가 있다.

11월 2일 오후 8시경(현지 시각) 오스트리아 에서 총격 테러가 일어났다. 4명이 살해당했고 22명이 부상당했으며 테러리스트는 현장에서 경찰에서 사살당했다.## 본 사건과 같이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로 밝혀졌다.

4.1. 공화국 원칙 강화 법안

연이은 이슬람의 테러 범죄에 프랑스 전역에서 이슬람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거세졌으며 반이슬람 성향이 더욱 강해졌다.

결국 프랑스 정부의 주도 아래 공화국 원칙 강화 법안이 추진되었으며 프랑스 하원에서 찬성 347명, 반대 151명, 기권 65명으로 해당 법안을 가결해 상원으로 넘겼다.

이 법안에는 이슬람에 대해 공시하지는 않았지만 가정, 종교시설, 종교단체에서 3세 이상 아이를 가르치는 것과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를 예배시설로 등록해 놓고 교육 등 다른 활동을 위해 활용하는 것에 대한 제한, 사법부가 용의자에게 모스크 출입 금지 명령 가능, 모스크에서 1만 유로 이상 기부받으면 신고, 의사들이 무슬림들의 요구에 의해 행하던 '처녀 증명서' 발급 시 의사 처벌, 일부다처제 가정은 프랑스 영주권 금지, 혼인신고강제결혼이 의심되면 공무원이 조사, 정황이 있으면 검찰 신고, 타인에게 위협이 될 것을 알고도 개인정보를 넘겼다면 범죄로 보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

5. 관련 문서



[1]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이 아니다.[2] 즉 프랑스 전국에 코로나19로 인한 제2차 봉쇄령이 내려진 다음 날이다.[3] 니스 노트르담 성당. 하지만 프랑스 남동부 니스 교구의 주교좌 성당은 사건이 일어난 바실리카 성당이 아닌 구시가지에 따로 있는 니스 대성당이다.[4] 브라질 출신 40대 여성으로 노인 양로원 일을 했던 걸로 밝혀졌다. 사망 전 '어린 아이들에게 사랑한다고 전해달라'는 유언을 남긴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사건 발생 후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이 희생자에 대한 애도 성명을 냈다.[5] 사건 발생 당일 오후에 주 프랑스 한국대사관에 프랑스 거주 교민들에게 사건 관련 긴급 문자를 발송했다.대사관 공지사항[6] 위 조형물은 니스 구시가지와 니스 언덕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데 주로 관광객들이 자주 방문해서 사진을 찍으러 오는 유명한 장소이기도 하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는 조형물 옆에 유방암 예방 캠페인을 상징하는 분홍 리본 조형물이 옆에 추가로 설치되어 있었다. 현지 시각 11월 22일 이후 검은 띠가 제거되었다.[7] 기존의 다른 테러 사건에 비해 인원이 대규모다.[8] 대표적인 예로 근세 러시아와 폴란드의 타타르인, 중세 시칠리아 왕국의 무슬림 신민 및 근대 프로이센의 터키인 소수자 등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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