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6-23 20:37:47

2012여수세계박람회재단

홈페이지

1. 개요2. 업무3. 조직4. 역대 이사장5. 기타6. 여담
6.1. 유사 사례
7. 함께 보기

1. 개요

여수세계박람회 기념 및 사후활용에 관한 특별법
제4조(2012여수세계박람회재단의 설립) ① 박람회 개최성과를 계승ㆍ기념하고 박람회 사후활용과 관련된 사업 등을 수행하기 위하여 2012여수세계박람회재단(이하 “재단”이라 한다)을 설립한다.

② 재단은 법인으로 하고, 그 주된 사무소의 소재지에서 설립등기를 함으로써 성립한다.

제11조(여수세계박람회기념관 설치ㆍ운영) 재단은 박람회의 개최성과를 계승ㆍ기념하기 위하여 여수세계박람회기념관을 설치ㆍ운영할 수 있다.

전라남도 여수시 덕충동 여수세계박람회장 내에 있는 해양수산부 산하 재단법인이다.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2012년 5월 12일 ~ 8월 12일) 이후 설립되었다.

2013년 1월 24일 2012여수세계박람회재단(EXPO 2012 Yeosu Korea Foundation)이 출범했다. 여수세계박람회기념관을 운영한다. 인력은 약 30여명이다.

2. 업무

3. 조직

이사장을 포함해 9명의 이사진과 1명의 감사로 구성되어 있다.[1]

4. 역대 이사장

5. 기타

6. 여담

6.1. 유사 사례

2012여수세계박람회재단은 국제이벤트 명분으로 설립된 기관으로 과거에도 유사 사례들이 있었다. 보통 올림픽이나 세계박람회(엑스포) 등 세계구급 행사는 되어야 만들어주는 듯하다.[7][8]

7. 함께 보기



[1] 이사장은 해양수산부 장관이 임명하고, 전라남도지사 및 여수시장이 추천하는 이사 각 1명 이상이 포함되도록 규정되어 있다.[2] 경남 부산 출생으로 부산여자대학교 지리교육 학사, 경희대학교 지리학 석사·박사를 졸업했으며,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해양정책연구본부장, 해양연구본부장, 한국수로학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2013년 1월 24일 2012여수박람회재단 이사장으로 선출되고 국토해양부 장관으로부터 임명된 후 2월 15일 법원에 이사장 윤진숙으로 설립등기까지 완료하였으나 2월 17일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로 내정되면서 이사장직을 사퇴하였다.# 이후, 윤진숙은 박근혜 정부 초대 해양수산부 장관이 되었다.[3] 충남 서천 출생으로 성균관대학교를 졸업했으며 1981년 행정고시 입직 후 해운항만청, 해양수산부 해양정책과장, 공보관, 해운물류국장, 마산지방해양항만청장, 한국해양과학기술진흥원장 등을 했다.[4] 연임[5] 전남 여수 출생으로 전남대학교 토목공학과, 전남대학원 산업공학과(해양토목 석사)를 졸업한 후 전라남도의회 의원, 전라남도의회 부의장으로 활동했다.[6] 여수시의회 의원, 여수세계박람회사후활용추진비상대책집행위원장 등을 역임했다.[7] 2005 부산 APEC 정상회의의 경우, APEC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라 유럽이나 아프리카 쪽이 배제된 형식이라 뭔가 좀 애매한데 기관이 설립되었다. 2005년 부산 정상회의 한참 전인 1991년 서울 정상회의가 있었는데, 이때는 딱히 기관이 설립되지 않았고, 아시안 게임(아시아경기대회)도 하계는 1986년 서울, 2002년 부산, 동계는 1999년 강원에서 개최되었지만 역시나 세계구급 대회가 아니라 그런지 임시조직인 조직위원회 정도 외에 상설기관 설립은 따로 없었다. 2025년에도 한국에서 개최예정(2015년 확정)이라 인천, 경주, 부산, 제주 등에서 벌써부터 들이댈 조짐을 보이고 있다. 부산을 연속으로 또 챙기기에는 정치적 부담이 있고, 경주는 또 경상도냐는 말이 나올 수 있으며 인천은 수도권이라 지방균형발전 이슈가 걸림돌인 데다가 제주의 경우, 섬이라는 지리적 불리함이 있다.[8] 2002 월드컵의 경우, 단독 개최도 아니었고, 한국에도 월드컵경기장이 10개나 되는 관계로 특정 지역에 따로 기관을 만들 정도는 아니었으며, 월드컵 잉여자금으로 천안, 목포, 창원 등 3남 지방에 나눠먹기식으로 천안축구센터, 목포국제축구센터, 창원축구센터를 지어 마무리지었다.[9] 재단 이사장은 대전직할시장(현 대전광역시장)이 제청하고, 상공자원부장관이 임면하도록 되어 있었다.[10] 엑스포 자체는 과학테마에 집중된 측면이 있었지만 과학기술처(1967년~1998년. 이후 과학기술부로 승격)는 엑스포 주무기관이 아니었다. 2020년대인 현재도 전시사업, 박람회 등의 주무부처는 산업통상자원부이고, 해양수산부가 해양테마를 명분으로 박람회준비 주무부처였던 2012여수세계박람회가 이례적인 사례라 볼 수 있다.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 주무부처산업통상자원부다.[11] 1993년 대전엑스포 당시에는 시도지사를 관선으로 임명하던 시절이라 사실상 국가가 모든 부분을 집중지원했다고 볼 수 있으며, 관치의 영향력이 많이 남아있던 시절이라 공기업 외에 대기업들도 정부 눈치에 상당부분 동원(?)되어 부스와 각종 시설 등을 만들었다. 공공기관인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대전무역전시관을 만들어 1995년 5월부터 전시장(컨벤션센터)으로 운영해줬기 때문에 엑스포 후에도 사실상 국비 지원이 계속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는데 당 시설은 2019년 철거되고, 동 부지에 대전컨벤션센터가 지어져 대전관광공사가 운영하게 되었다. 그 외에도 엑스포 당시 만들어진 전시관 중 정보통신관, 전기에너지관, 에너지관, 자연생명관 등 4개 관은 한국전기통신공사(현 KT), 한국전력공사, 에너지관리공단(현 한국에너지공단), 한국담배인삼공사(현 KT&G) 등 국가공공기관들이 직영했었다.[12] 엑스피아월드라는 업체인데 눈높이 수학으로 알려진 (주)대교를 비롯, 대선산업, 대덕크리스탈, 대교유통, 대교컴퓨터, 대교출판 등이 컨소시엄을 구성하여 자본금 1백억원규모로 설립된 회사로 지분은 대교 계열사 65%, 대선주조계열인 대선산업 20%, 꿈돌이동산 운영업체인 대덕크리스탈 15%로 구성되었으며 1994년 향후 20년간 엑스포과학공원을 운영하기로 하고 기념재단과 운영위탁 계약 후 1997년 12월 당시 250여명이 근무하고 있었으나 1998년 폐업했다.[13] 운영이 지지부진하자 재단이 민간업체와 계약 해지를 추진했고, 민간업체는 인위적 계약해지는 계약위반이라며 1,200억원 소송을 걸어 결국 판결로 일부를 물어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14] 현금 900억원, 현물 2,263억원 등 자본금 3,136억원 규모로 출발했는데, 당시 국민의 정부1997년 외환 위기 여파로 민간 구조조정, 공무원 연수기관 통폐합, 국립세무대학 폐지, 전국세무서 통폐합, 경정 서장제 활용(총경 숫자 줄이기) 등 중앙정부에서 예산 절감 방안이 될 수 있는 방법은 죄다 동원했고, 산업자원부 산하 대전엑스포기념재단도 지방자치단체로 이양해 중앙정부의 부담을 줄이려고 했다.[15] 2007년 12월 기준 2006년 적자 40억원, 누적적자 197억원을 기록했다.[16] 대전컨벤션센터를 위탁 운영키 위해 2006년 자본금 1억원(대전광역시청 45%, 관련업체 55%)을 투자해 재단법인 형태로 설립했다. 대전컨벤션뷰로에 대한 시비 지원은 대전컨벤션센터 개관(2008년 4월) 이전인 2006년 15억원으로 시작되어 2007년 20억원, 2008년 23억 7000만원, 2009년 31억 2000만원, 2010년 29억 4000만 원 수준이다.[17] 참여정부 시절 제주를 비롯하여 여러 지역이 유치전에 뛰어들었으나 부산으로 결정되었다. APEC 유치전 당시 17대 총선(2004년 4월)을 앞둔 시점이라 부산지역언론을 통해 부산 떨어뜨리면 각오하라는 식의 협박성 이야기까지 나와 경쟁지역이었던 제주지역은 머릿수로 갑질한다는 불만이 있었고, 민정수석비서관, 시민사회수석비서관 등을 지내며 실세로 분류되던 문재인이 막후에서 연고지역인 PK 챙기기를 한다는 이야기도 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