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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21 20:05:15

1995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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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
Élection présidentielle française de 1995
파일:1995 french election second round results.png
주별 결선 결과
{{{#!wiki style="margin: -7px -12px" 1988 대선 1995 대선 2002 대선 }}}
선거 일시 1차: 4월 23일
결선: 5월 7일
투표율 1차: 78.38%▼ 3.00%p
결선: 79.66%▼ 4.40%p
선거 결과
후보 [[공화국연합|
공화국연합
]]
자크 시라크
[[사회당(프랑스)|
사회당
]]
리오넬 조스팽
1차
20.84%
6,348,375표
23.30%
7,097,786표
결선
52.64%
15,763,027표
47.36%
14,180,644표
당선인
파일:자크 시라크 대통령.jpg
공화국 연합
자크 시라크

1. 개요2. 배경3. 1차 투표4. 결선 투표5.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1995년에 치러진 프랑스 대통령 선거7년전 대선 당시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에게 패배했던 공화국연합자크 시라크 전 총리가 다시 대통령 선거에 도전하면서 미테랑이 물러나고 새로운 시대를 맞은 사회당리오넬 조스팽 제1서기가 맞붙은 선거이다.

이 선거에서 자크 시라크 후보가 대선 재수 끝에 승리, 프랑스의 대통령으로 취임하며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2. 배경

1981년부터 무려 14년동안 대통령 자리를 지켜오던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이 임기의 마지막을 맞이하고 있었다. 이론상 미테랑 대통령이 직접 3선에 도전할 수 있긴 했지만, 워낙 고령에 본인의 건강 상태도 매우 좋지 않았던데다가 연이은 각료들의 스캔들과 경기침체로 인하여 사회당 정부의 인기는 급전직하하고 있었다.

결국 대선 2년 전에 있었던 총선에서 보수 진영이 대승하면서 공화국연합의 에두아르 발라뒤르가 총리 자리에 올라 동거정부가 다시 한번 형성되었다.

7년 전 시라크의 전례를 반면교사로 삼은 발라뒤르는 미테랑 대통령과 갈등하기보다 웬만하면 갈등을 피하면서 무난히 국정을 운영하였고, 차기 대선주자로 급격하게 떠올랐는데 가장 큰 문제는 2년 전 총선 이후 발라뒤르가 총리 자리를 시라크에게 양보받는 대신 대선에는 출마하지 않는 것으로 약속한 것.

하지만 안정적인 정권교체를 위해 선명성을 강조하는 시라크보다는 중도적인 발라뒤르가 낫다고 생각한 프랑스 우파 정치인들이 발라뒤르를 설득하면서 상황이 달라지게 된다. 결국 발라뒤르가 약속을 뒤집고 출마를 결정하자 시라크가 이에 격분해 우파 후보가 분열된 상태로 대선을 치르게 됐다.

반면 사회당은 미셸 로카르 전 총리가 1994년 유럽의회 선거에서의 대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난 후 유력한 후보가 없는 상황이었다. 거기에 사실상 패전조를 맡을 후보를 찾다보니 사람 구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중도좌파와 좌파 간 당내 노선 갈등까지 있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좌파 진영의 마지막 기대주였던 자크 들로르 유럽연합 진행위원장까지 출마를 거부하면서 그야말로 일대 혼란에 빠졌다.

그래도 좌파진영 재편성을 주장하면서 사회당의 좌클릭을 외친 앙리 에마뉘엘리 제1서기를 중도좌파 성향의 리오넬 조스팽 교육부 장관이 누르면서 승리하는 이변을 일으켜 반전의 계기를 마련하게 됐다. 조스팽은 도덕성에서 큰 상처를 입은 미테랑주의의 유산을 재검토해 당의 신뢰와 도덕적 명성을 회복시키겠다고 공언했다.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은 1990년 이후 조스팽과 서로 불편한 관계긴 했지만, 정권교체가 거의 확실해진 분위기 속에서 지원할만한 다른 후보가 있었던 것도 아니라 결국 조스팽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

3. 1차 투표[1]

1995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
1차 투표 (1995. 4. 23.)
순위 후보명 정당 성향 득표수 득표율 결선 여부
1위 리오넬 조스팽 사회당 (PS) 중도좌파 7,097,786 23.30% 진출
2위 자크 시라크 공화국연합 (RPR) 우파 6,348,375 20.84%
3위 에두아르 발라뒤르 공화국연합 (RPR)[2] 우파 5,658,796 18.58% 탈락
4위 장마리 르펜 국민전선 (FG) 극우 4,570,838 15.00%
5위 로베르 위 프랑스 공산당 (PCF) 좌파 2,632,460 8.64%
6위 아를레트 라기예르 노동자 투쟁 (LO) 극좌 1,615,552 5.30%
7위 필리프 드빌리에 프랑스운동 (MPF) 우파 1,443,186 4.74%
8위 도미니크 부아네 녹색당 (LV) 생태주의 1,010,681 3.32%
9위 자크 슈미나드 노동당 (PT) 좌파 84,959 0.28%
선거인수 39,992,912 투표수 30,462,633 -
무효표수 883,161 투표율 78.38% -

여론조사의 열세를 뒤집고 사회당의 리오넬 조스팽이 1차 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다. 물론 모두를 놀라게 한 선전이었지만, 각 후보의 진영을 좌파와 우파로 나눌 경우 우파 후보들의 득표율 단순 합계가 60%를 넘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우파 후보, 특히 시라크와 발라뒤르 중 누가 조스팽과 함께 결선으로 갈까가 문제였는데 결국 시라크가 2.26%p 차로 간신히 발라뒤르를 누르고 2위로 결선투표로 진출했다.

본인의 결선 진출을 확신해마지않던 발라뒤르는 큰 충격을 받았지만, 직후 기자회견을 열어 낙선을 인정하고 마지못해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시라크를 지지해줄 것을 공식 요청했다. 이와중에 자신에게 야유하는 지지자와 말싸움을 펼치는 추태를 보이기도 했다. 한편 5위를 차지한 공산당의 로베르 위 후보와 8위를 차지한 녹색당의 도미니크 부아네 후보는 반대로 조스팽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

한편 우파 진영의 전반적인 우세 속에서 주목받지 못했지만 양당이 아닌 후보에게 간, 소위 말하는 항의득표율이 프랑스 제5공화국 출범 이후 처음으로 30%를 넘기면서 양당제에 대한 프랑스 국민들의 피로감과 불신이 처음으로 드러난 대선이기도 했다. 특히 명백한 극우 성향 후보인 르펜의 득표율이 15%까지 올라온 점이 여러모로 정계에 충격을 주었다.

4. 결선 투표[3]

1995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
1차 투표 (1995. 5. 7.)
순위 후보명 정당 성향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1위 자크 시라크 공화국연합 (RPR) 우파 15,763,027 52.64% 당선
2위 리오넬 조스팽 사회당 (PS) 좌파 14,180,644 47.36% 낙선
선거인수 39,976,944 투표수 29,943,671 -
무효표수 1,161,822 투표율 79.66% -

예상대로 시라크가 승리하긴 했지만, 그 격차가 1차 투표 당시 우파 후보와 좌파 후보의 합계 대비 상당히 좁혀졌다. 조스팽은 패배를 인정하면서 시라크의 승리를 축하했고, 동시에 미테랑의 14년 임기에 대한 경의를 표했다.

시라크는 1988년 실패의 교훈을 얻어 아예 당대표직까지 내려놓으면서 대선 행보에 집중했다.[4] 미테랑의 정치 고문이었던 자크 필앙까지 등용하면서 이미지 개선을 시도했다. 특히 노숙자 문제에 강하게 메시지를 내놓으면서 우파 진영의 지지를 받았고 덕분에 경쟁자였던 발라뒤르를 예상을 뒤집고 누를 수 있었고, 이후에는 발라뒤르와 르펜으로 분산된 정권 심판 정서를 안정적으로 규합[5]하여 당선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조스팽의 선전에 대해서는 여러 분석이 나오는데, 대부분 조스팽의 후보 지명 이후 사회당의 호감도-비호감도가 호감 26%-비호감 60%에서 호감 47%-비호감 44%로 크게 개선된 것이 이미 선전의 신호탄이었다고 보고 있다. 조스팽은 미테랑 14년의 공과를 분명히 인정하며 특히 과쪽에 초점을 맞추고 그 문제점을 개선하는 공약(주 35시간 근로제, 청년 일자리 창출, 대통령 임기 축소(7년→5년))을 내세우는 동시에 이완된 좌파 진영 결집을 위한 맞춤 공약(투기에 대한 중과세)도 내세워 진영을 결집시키고 청년층을 공약하는데 성공한 것.

5. 관련 문서



[1] 4월 23일[2] 프랑스 민주연합 지지.[3] 5월 7일[4] 과거 총리직을 맡으면서 대통령직에 도전했던 것이 '이미지 소모'로 인한 부작용을 일으켰다고 판단한 시라크는 한동안 정치 전면과 다소 거리를 두면서 비호감도를 줄이는 데 집중했다.[5] 정치학자들은 1차 투표에서 르펜에게 투표한 유권자 중 51%가 시라크, 26%가 조스팽을 찍은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