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19년
1. 개요
후한 말의 인물로 형주 남양군 사람.2. 생애
남양인들이 요역에 고통스러워 하자 218년 겨울 10월에 완에서 반란을 일으켜 남양태수 동리곤을 붙잡고 주변 현의 무리 수천 명을 공격하면서 관원, 백성들과 함께 모반해 관우와 연합했다. 종자경이 군의 장령들을 붙잡은 것은 무익한 일이라고 설득하자 동리곤을 풀어줬다가 그들이 백성을 거두어 포위되었으며, 관우를 공격하기 위해 번성에 주둔한 조인도 도착하면서 219년 봄 정월에 동리곤 등이 조인, 방덕과 연합해서 공격하자 완현이 도륙되면서 참수당했다.후음이 죽은 후 그 무리 수천 명이 산속에 있다가 도둑이 되어 군의 큰 근심거리라 남양태수로 새로 부임한 전예[1]가 사후 문제를 논의할 때 사형에 처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전예는 이들을 직접 만나 위로하고 타일러서 스스로 죄를 씻고 새로운 길을 열어주자 군의 영내가 깨끗해졌다.
3. 미디어 믹스
3.1.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
삼국지 13, 14 |
삼국지 13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삼국지 13에서의 일러스트는 훈남 외모에다 붉은 두건을 쓴 채 오른손에 창극을 들고 있으며 능력치는 통솔력 76/무력 72/지력 45/정치력 28의 B급 무장. 특기는 훈련 1, 연전 1. 전수특기는 훈련으로 전법은 기공강화. 웬일인지 음성이 난폭남으로 들린다.
삼국지 14에서의 능력치는 통솔 69, 무력 67, 지력 43, 정치 28, 매력 45로 전작에 비해 통솔력이 7, 무력이 5, 지력이 2 하락했다. 개성은 공명, 단려, 주의는 할거, 정책은 침략황폐 Lv 2, 진형은 봉시, 전법은 경파, 교란, 친애무장은 관우, 혐오무장은 없다. 능력치도 너프 먹은 것도 억울한데 공격용 전법조차 하나도 없어서 내정용으로 쓰인다.
삼국지 8 리메이크에서의 능력치는 통솔 66. 무력 68, 지력 44, 정치 42, 매력54로 전작에 비해 약간 능력치가 상승했다. 사용 가능 전법은 강격1, 맹돌1, 고무1 이고, 특기는 열변1, 보장1, 여력1이다.
3.2. 진삼국무쌍 시리즈
진삼국무쌍 6 맹장전에서 후음의 난을 모티브로 한 '완성공방전''이라는 이름의 시나리오가 등장한다. 조인군에게 포위당한 후음을 관우군이 구출해주는 게 목표. 물론 후음 본인은 클론이라 관우군이 더 부각된다.3.3. 삼국전투기
닥터 슬럼프의 갈라로 등장한다. 동료 위개와 함께 한중 전투 (2)편의 타이틀 컷을 장식하기도 했다.한중 전투 편에서 처음 등장. 조인이 관우와의 전투에 대비하려면 성을 보수해야 한다면서 자꾸 요역에 사람들을 동원하자 맨날 요역을 보내다가 관 내의 남자의 씨가 마른다고 불만을 품었는데, 위개가 반란을 일으킬 것을 제안하자 수도인 허창 바로 옆이라면서 제정신이냐고 했다. 위개가 주변 상황과 연결시켜서 반란을 일으키는 것에 대해 설명하자 이에 납득해서 반란을 일으켰지만 2개월 만에 진압되었다.
3.4. 창천항로
조조가 한중 공방전을 갓 일으킬 즈음 전령의 보고로 언급된다. 조조가 출병하기 시작할 때 전령이 유비에게 보고하기를 후음이라는 자가 계주, 완성에서 거병해 성을 점거하고 관민 수천 명을 붙잡고 농성을 벌이고 있다고 알려오는데, 법정이 빡치는 것이나 후음을 '죽마고우'라고 생각하는 것을 보면 법정과 밀약을 맺고 봉기를 하기로 했는데 타이밍이 어긋난 것으로 보인다. 유비는 '후음이라는 자가 법정과의 밀약을 믿고 반 년 이상 버텨주느냐 마느냐'라고 생각하지만.... 역사상으로 반 년은 못 갔고 이후 작중에서는 언급조차 없다.3.5. 소설 삼국지 생존왕
군사를 일으킬 때 이미 관 장군(관우)과 다 이야기가 되었다면서 남양을 점거하면 관 장군이 북진해 위군을 때려잡을 것이라고 선동했고, 관우가 북진을 했지만 양양에서 발이 묶이고 자신의 군사들은 패하자 다 끝났다고 여기면서 도망가자는 위개의 권유에도 어디로 도망치냐면서 죽어도 고향에 뼈를 묻어야 한다고 했다.백성들을 향해 저들을 위해 봉기했는데 은자 100냥의 현상금에 눈이 멀어 자신을 잡으려 한다며 씁쓸하다는 반응을 보였고, 백성들에게 공격받자 송건을 떠올리고는 누군 나보다 못해도 잘만 버틴다는 말을 한 후 욕을 외차면서 죽었다.
[1] 이 시국에 이 직책을 역임하기 위해 부임한 인사가 하필 전예라는 것이 의미심장한데, 전예는 원래 유비의 부하였다가 가족 문제로 부득이하게 결별했기 때문이였다. 이 시절은 아직 유비가 비상하기도 이전인 공손찬 휘하 시절이였으며 당연히 그때나 이때나 유비의 최측근이자 이때 부임지를 지키기 위해 맞상대해야 했었을 상대인 관우와도 잘 아는 사이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