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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9:39:13

황목치승/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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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아마추어 시절3. 고양 원더스4. LG 트윈스
4.1. 2014년4.2. 2015년4.3. 2016년4.4. 2017년
5. 갑작스러운 은퇴 선언

1. 개요

LG 트윈스 소속 우투우타 내야수 황목치승의 선수 경력을 모아 놓은 문서.

2. 아마추어 시절

어릴 적에는 대단한 유망주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친구였던 오두철[1]의 권유로 야구를 시작하여 제주제일중학교 3학년 때 청소년 국가대표로 발탁돼 아시아 대회에서 대표팀의 6전 전승 우승을 이끌었다.

제주로 친선경기를 왔던 교토국제고 감독의 눈에 띄어[2] 중학교 졸업 후 일본으로 유학을 갔는데 아지아대학 시절 전지훈련 도중 상대 주자의 스파이크에 무릎을 치여 인대 2개(십자인대, 후방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을 당했다. 대학 2년을 통째로 날리게 했던 두 번의 수술 이후 야구 인생이 꼬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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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가 사미 시절

대학 졸업 후 일본 사회인야구팀 세가사미[3][4]에서 4년을 뛰었지만, 왼쪽 발목 인대 부상과 수술로 고생하면서 큰 활약을 하지 못하고 2011년 군 입대를 위해 한국으로 돌아온다.

세 번이나 칼을 댔던 왼쪽 다리로 면제 판정을 받게 되어 아버지가 운영하던 당구장 일을 도와주게 된다. 당구장 일을 하던 중이던 2012년, 생활체육 국제야구대회를 준비하던 사회인 야구팀 제주 삼다수 팀이 황목치승을 영입했고, 미국, 일본, 대만 등 6개국 7개팀이 참가했던 그 대회에서 삼다수 팀은 황목치승의 활약으로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3. 고양 원더스

파일:attachment/황목치승/Example.jpg

황목치승, 그의 진짜 야구는 이제 시작이다.

생활체육팀에서 의욕을 되살려 2012년 가을 테스트를 받고 고양 원더스에 입단했다. 교류전에서 1번 타자 겸 유격수로 나왔고, 교류경기에서 147타수 38안타 타율 0.259 15타점 25득점 16도루 30사사구를 기록하며 빠른 발과 선구안, 특히 수비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4. LG 트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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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신인드래프트에 참가하였으나[5] 지명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10월 2일 LG 트윈스에 신고선수로 입단하게 되었다.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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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고양 원더스의 동료들에게 꼭 성공하라는 격려의 메시지를 보냈다.

4.1. 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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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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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스프링캠프 명단에는 이름이 빠졌으나 나중에 뒤늦게 합류하게 되었다.

시즌은 2군에서 시작했으며 2군에서 3할 8푼의 고타율을 기록했으나 부상으로 장기간 빠지게 되고 5월 21일에 1군으로 콜업되었다.

5월 22일 경기에서는 2번타자 2루수로 선발 출장하였다. 6타수 4안타 3타점 4득점 1도루로 훨훨 날아다니면서 팀의 20-12 대승에 큰 활약을 보탰다.

5월 30일 경기에서는 3회초 1사 1루 상황에서 뜬공을 일부러 살짝 피한 후 2루로 송구해 타자 주자는 그대로 출루하게 하고 1루 주자를 아웃시키는 작전을 수행했다. 1루에 발이 빠른 김상수가 출루해 있었기 때문에 나바로로 교체하려는 작전이었다.[6]

6월 12일 한화와의 경기에서는 10회초 무사 만루에서 2타점 결승타를 때려냈다.

6월 17일에는 굉장히 위험한 플레이로 해설위원들에게 비판을 받았다. 박용택의 희생플라이 때 3루에 있던 황목치승이 홈으로 뛰어들어왔으나, 접전 상황에서 슬라이딩을 하지 않고 그냥 밀고 들어와 몇 미터를 날아갔다. 결국 선수 보호 반, 문책 반으로 백창수와 교체되었고, 당시 구심도 그와 부딪혀 심하게 부상당해 교체되었다.[7]

그 다음 날에는 7회말 오지환의 쐐기 2타점 적시타 때 홈으로 뛰어드는 상황에서 강한울의 송구가 헬멧에 맞아 타자 주자인 오지환까지 홈으로 들어오게 만들었다.영상 공식 기록은 2루타+다른주자 수비사이 진루+실책.

그런데 이 플레이로 인해 부상을 입었는지 2군으로 내려가서 8월초까지 경기에 나오지 못했다. 8월 이후 2군에서 경기에 나오기 시작했으나 시즌 내내 1군에는 올라오지 못하다가 시즌 마지막 경기인 10월 6일에 콜업되었다.이 날 경기 후반 대주자로 나가 득점에 성공하였고, 돌아온 타석에서 2루타를 친 후 득점에도 성공하여 이날 경기에서 2득점을 기록하였다.

황목치승의 야구 인생을 정리한 칼럼

4.3.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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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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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전 라인업에 포함되어 시즌을 시작했지만 몇 경기 후 2군으로 내려갔다.

6월 중순 쯤 타율 .167로 크게 부진한 김용의가 2군으로 내려가자 오랜만에 1군으로 콜업되었다.

627 대첩때 지명타자 박용택의 대주자로 투입된 뒤 지명타자에서 유격수로 포지션 변경을 해 투수 이동현을 데뷔 첫 타석에 세웠다. 결과는 2사 1루에서 2S 2B 후 채은성의 도루실패.

7월 21일 경기에서 3번 타자 지명타자 박용택이 8회 초 몸에 맞는 볼로 출루하자 대주자로 투입되었다. 그리고 9회말 3루수 양석환이 빠지고 그자리에 대수비로 들어가면서 지명타자가 소멸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지명타자 소멸이 엄청난 나비효과를 불러 일으키게 된다. 9회 김지용이 동점홈런을 맞으면서 승부는 연장으로 가게 되었고 운명의 11회초, 최충연을 상대로 밀어내기 볼넷을 골라 한 점을 보탠다. 최충연이 마운드를 내려가고 투수는 이승현으로 교체. 그리고 이 상황에서 지명타자 소멸로 인해 4번 타자 정찬헌이 들어서고...

7월 26일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넥센 히어로즈와의 11차전에서 팀이 스코어 3:2로 뒤지던 9회말 2사 주자 2루에서 2루 주자 박용택의 대주자로 출장하여 이형종의 우익수 앞 안타 때 2루에서 홈으로 전력 질주했으나 이정후의 환상적인 송구로 아웃되며 그렇게 경기가 끝나는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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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비디오 판독 결과, 황목치승의 환상적인 슬라이딩 덕에 세이프로 판정이 번복되어 3:3 동점이 된다. 투수가 김세현에서 김상수로 바뀐 뒤 정성훈이 고의사구성 볼넷, 오지환이 초구 몸에 맞는 공으로 만루가 되었고, 정상호가 밀어내기 볼넷을 얻어냄으로써 LG가 시즌 첫 끝내기 승리했다. 그리고 황목치승은 이날 경기의 수훈 선수로 선정되었다.

7월 28일엔 연타석 삼진에 실책까지 저지르는 오지환이 빠지고 대신 유격수로 들어가 어마어마한 명품 수비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 플레이로 네이버 실시간 검색 1위를 찍었다.[8]

7월 29일에는 유격수로 선발 출장하여 3안타의 멀티히트를 기록하여 이틀 연속, 주 3일(26, 28, 29일)동안 인생경기를 선보였다.덕분에 엘지팬들은 오지환을 경기 내내 잊을 수 있었다.

하지만 8월 3일과 4일 연이어 실책을 저질렀고, 4일 경기에서는 실책 이후에 투런포로 실점까지 당하면서 절박함만으로는 1군 무대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7월말의 경기들이 아름다운 일주일이었는지 아닌지는 이제부터 결정될 듯 하다.

8월 5일에도 실책을 저질러 1점을 헌납하면서 팽팽하던 경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렇게 3경기 연속 실책으로 상대방에게 점수를 주며 두산과의 1, 2차전 경기 패배에 기여하였다. 특히 이 날은 3타수 무안타 2삼진으로 식물타격의 절정을 보여주었는데, 어제 오늘 도합 7타수 1안타. 대수비 혹은 대주자로서는 활용가치가 높을지 모르겠으나 주전 유격수로서는 수비도, 타격도 너무나 부족하다. 이 선수의 나이가 결코 적지 않음을 고려한다면 내년 오지환의 군입대로 공백상태가 될 유격수 포지션을 맡기기에는 아직까지는 어려워 보인다. 아무리 절박함이 보여도 결국 결과로 평가받는 것이 프로의 세계임을 상기해야 한다.

8월 3일부터 하루 1실책씩 저질렀다.

8월 10일 유강남의 대타로 출장한 정성훈이 안타를 치고 출루하자 대주자로 투입되었다.

5. 갑작스러운 은퇴 선언

2017년 10월 20일 개인사정으로 인해 은퇴한다는 정식발표가 나왔다. # 일본에 거주 중인 장인이 작은 공장을 운영 중인데, 몸이 안 좋아지는 바람에 사위인 황목치승이 가업[9]을 물려받기로 결정돼서 그렇다고 한다. LG 트윈스 구단 측에도 이러한 사정을 설명해 양해를 얻어 결정된 사항이라고 한다. 본인의 가장 인상 깊었던 시즌 직후 은퇴하는 것이라 대부분의 LG 팬들은 아쉬워하였다.[10]

이후 스포티비에서 만든 은퇴 기념 영상[11]이 다시 LG 팬들의 심금을 울렸다.[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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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주남초등학교-제주제일중학교 야구부 절친이며 함께 일본 유학을 갔고 나중에는 고양 원더스까지 함께하였다. 링크[2] 대표가 제주 출신 재일교포인 인연으로 '이쿠나 화이타'는 매년 제주에서 친선 시합을 갖는데 이 때, 당시 제주 제일중학교 재학 중이었던 오두철과 황목치승을 스카웃하였다.[3] 일본의 사회인야구는 한국의 실업야구에 가깝다.대기업들이 운영하고 용병도 쓰며 결승은 도쿄 돔에서 열릴 정도로 상당히 수준이 높다. 물론 풀뿌리 야구라고 해서 한국의 사회인야구와 별 차이 없는 팀도 많지만...[4] 세가 사미팀의 공식 잡지인데 2008년부터 2012년까지의 잡지에 황목치승이 실려있다. 단, 일본 잡지인 만큼 일어를 어느 정도 숙지해야 한다.[5] 외국에서 고등학교 이상을 마쳤기 때문에 바로 프로 팀에서 데려갈 수 없었고 신인 2차지명을 거쳐야 했다.[6] 당시 감독이었던 양상문 감독은 이렇게 선수가 순간적으로 재치를 발휘했던 플레이를 칭찬해줘도 시원찮을 판에 벤치의 작전이라고 입을 털면서 안그래도 경기까지 진 마당에 엘지팬들의 화를 더 돋우고 말았다.[7] 그 와중에도 플레이트는 밟아 그게 결승점이 되었다.[8] 수없이 악플이 달리는 네이버 스포츠 댓글란이지만 이 영상에는 악플이 거의 없다.(!) 그만큼 훌륭한 플레이였다는 것. 그 와중 세이프되고자 1루 슬라이딩으로 투혼을 보여준 정근우에 대한 칭찬도 꽤 많다.[9] 은퇴 후 인터뷰에서 밝힌 바로는 전통 공예쪽 일이라고 한다. 학생들을 위한 칠기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한다. 인터뷰 영상[10] 그리고 그 특유의 몸을 사리지 않는 플레이스타일 때문에 타 팀 팬들조차도 상대할 때는 엄청나게 싫은 선수지만 선수 자체로서는 존경하고 동경할수 밖에 없기에 타 팬들도 은퇴 소식에 많이 아쉬워했다.[11] 현재는 비공개 처리되어있다.[12] 해당 영상의 배경음악은 몽니소년이 어른이 되어라는 노래다. 황목치승의 성장사를 잘 나타냈던 훌륭한 선곡이었다는 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