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맥의 국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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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원삼국시대 고구려의 주변 국가.고구려 초기에 있었던 국가로,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유리왕편에서 언급된다.
2. 위치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가 없다. 고려사 지리지에 의하면 평안남도 용강군이 고려의 황룡성이었다는 기록을 근거로 용강군설이 주장되었지만 당시 낙랑군이 존속하고 있었던 상황이라 해당 지역에 황룡국이 있었을 가능성은 낮다3. 일화
27년(8) 봄 정월에 왕태자 해명(解明)이 옛 도읍에 있었는데, 힘이 있고 매우 용감하였다. 황룡국(黃龍國)의 왕이 이 말을 듣고 사신을 보내 강한 활을 선물하였다. 해명이 그 사신을 마주하여 그것을 당겨 부러뜨리고 말하기를 “내가 힘 센 것이 아니라 활이 굳세지 못할 뿐이다.” 하였다. 황룡국왕이 부끄럽게 여겼다. 왕이 이를 듣고 화를 내며 황룡국왕에게 알려 말하기를 “해명이 자식으로서 효도를 하지 않았으니 과인을 위해서 그를 죽여주기를 청합니다.”고 하였다.
《삼국사기》권제13 고구려본기 제1, 유리왕 27년
《삼국사기》권제13 고구려본기 제1, 유리왕 27년
3월에 황룡국왕이 사신을 보내 태자와 만나기를 청하였다. 태자가 가려고 하니 건의하는 자가 있어 말하기를 “지금 이웃나라가 이유도 없이 만나기를 청하니 그 뜻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라 하였다. 태자가 말하기를 “하늘이 나를 죽이려고 하지 않는데 황룡국왕이 나를 어떻게 하겠느냐?”하고 마침내 갔다. 황룡국왕이 처음에 모략을 꾸며 죽이려고 하였으나 만나서는 감히 해치지 못하고 예를 갖추어 보냈다.
《삼국사기》권제13 고구려본기 제1, 유리왕 27년
《삼국사기》권제13 고구려본기 제1, 유리왕 27년
28년(9) 봄 3월에 왕이 사람을 보내 해명에게 말하기를 “나는 도읍을 옮겨서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나라를 튼튼하게 하고자 하였다. 너는 나를 따르지 않고 힘 센 것을 믿고 이웃나라와 원한을 맺으니, 자식의 도리가 이럴 수 있느냐?”하고, 칼을 주어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하였다. 태자가 곧 자살하려고 하자 혹자는 말리며 말하기를 “대왕의 장자가 이미 죽어 태자께서 마땅히 뒤를 이어야 하는데, 이제 사자가 한 번 온 것으로 자살한다면, 그것이 속임수가 아닌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하였다. 태자는 말하기를 “지난번에 황룡국왕이 강한 활을 보냈을 때, 나는 그것이 우리 나라를 가볍게 여기는 것이 아닌지 의심되어 활을 당겨 부러뜨려 보복하였던 것인데, 뜻밖에 부왕으로부터 책망을 듣게 되었네. 지금 부왕께서 나를 불효하다고 하여 칼을 주어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하니 아버지의 명령을 어떻게 피할 수 있겠는가?”고 하였다. 마침내 여진(礪津)의 동쪽 들판으로 가서 창을 땅에 꽂고 말을 타고 달려 찔려 죽었다. 그때 나이가 21세였다. 태자의 예로써 동쪽 들(東原)에 장사지내고 사당을 세우고 그 땅을 일컬어 창원(槍原)이라 하였다.
《삼국사기》권제13 고구려본기 제1, 유리왕 28년
서기 8년, 고구려 유리왕의 아들 해명태자는 옛 수도였던 졸본에서 살고 있었다. 그때 이웃 나라 황룡국의 왕이 해명태자가 힘이 세고 무예를 좋아한다는 소문을 듣고, 강한 활을 선물로 보냈다.《삼국사기》권제13 고구려본기 제1, 유리왕 28년
하지만 해명태자는 황룡국 왕이 혹시라도 고구려를 무시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다. 그래서 황룡국에서 온 사신 앞에서 활을 잡아당겨 부러뜨린 뒤, “내 힘이 센 게 아니라 활이 약한 것뿐이다.”라고 말했다.
이 소식을 들은 유리왕은 크게 화를 냈다. 그리고 황룡국 왕에게 편지를 보내 “해명은 아버지인 나에게 불효를 저질렀으니, 그를 잡아 목을 베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해서 같은 해 3월, 황룡국 왕이 해명을 자기 나라로 부르도록 했다. 해명이 오자 처음에는 죽이려고 했지만, 직접 만나 보니 차마 그를 해칠 수 없었다. 오히려 정중하게 대접한 후 다시 돌려보냈다. 일화는 이렇게 끝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