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7년 호에이 지진 | ||
호에이 지진 당시 일본 각지의 추정 최대진도(사후분석). | ||
발생일시 | 1707년 10월 28일 오후 2시경 | |
진앙 | 일본 와카야마현 남쪽 해역 | |
규모 | ML 8.6 / Mw 9.3 | |
최대진도 | 7[1] 시즈오카현, 아이치현, 오사카부, 고치현 | |
쓰나미 | 고치현 나카토사정: 25.7 m 고치현 고치시 다네자키항: 23.0 m 평균 7.7~10m | |
피해 | 사망자 | 최소 5,000명 이상 |
이재민 | 불명 | |
재산피해 | 가옥 약 29,000채 파괴 | |
기타 주석 | 49일 뒤 후지산 대분화 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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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707년 호에이 지진은 난카이 해곡에서 발생한 역사적 지진으로 규모는 M 8.6-9.3에 육박했다. 도카이-도난카이-난카이 셋 다 연동하여 발생해, 난카이 해곡의 모든 단층이 다 파열되게 한 유일한 지진이다.[2] 지진이 일어난 1707년이 일본의 연호로는 호에이(宝永) 4년이었기에 '호에이 지진'이라고 부른다.2011년 3월 11일 전까지만 해도 일본 지진학계는 호에이 지진(M 8.6)이 일본 역사상 최대 규모의 지진이라 보았다. 그러나 3월 11일 도호쿠 대지진이 터져서 옛말이 되고 말았다. 참고로 도호쿠 대지진의 규모는 M 9.0~9.1.[3]
지진은 호에이 4년 음력 10월 4일(1707년 10월 28일) 오후 2시에 발생했다. 2003년 도쿄대학 지진연구소 우사미 타츠오(宇佐美龍夫)는 시즈오카현, 아이치현, 오사카부, 고치현의 최대 진도를 7로 추정했다.# 2007년 도쿄대학의 쓰지 요시노부(都司嘉宣) 및 나메가야 유이치(行谷佑一)는 오사카 가와치구니의 진도를 7로 추정했다. 이 지진으로 가옥 2만 9천여 채가 파괴되었고, 시즈오카현에서는 대형 산사태가 발생해서 1억 2천만 m3 부피에 달하는 토사가 쏟아져 1.8 km2에 달하는 면적이 파묻혔다. 거기에다가 나라현에서는 토양액상화까지 발생하는 등, 당시로서는 전대미문의 재앙이었다.
쓰나미 역시 발생해서 고치 현 남서쪽 해안에서는 평균 7.7~10 m짜리 파도가 덮쳤다. 고치현 나카토사정에는 25.70 m 높이 쓰나미가 덮쳤고, 지금의 고치시 다네자키항 지역에 23 m 높이 쓰나미가 지역을 초토화시켰다. 조선에서는 제주도에 쓰나미가 관측되었다는 기록이 탐라지에 있다. 또한 1707년과 1708년에 제주도에 군발지진이 발생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호에이 지진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한다. 진짜 제주도에서 지진이 났을 수도 있지만, 규모가 좀 큰 여진들도 난카이 해곡이 제주도와도 비교적 가깝기 때문에 호에이 지진의 여진들이 느껴졌을 가능성도 있다.
이 지진으로 후지산이 영향을 받아 지진이 일어난 지 정확히 7주가 되는 양력 12월 16일부터 이듬해(1708) 1월 초까지 대규모로 분화하였다. 이를 호에이 대분화(宝永大噴火)라고 부른다. 후지산은 이후로는 대규모로 분화한 적은 아직 없다.
2. 이전의 타임라인
발생일자 | 추정최대진도 | 추정규모 | 발생지 | 사망자 | 비고 | 출처 |
1643. 7. 24. | VIII~X | M7.4 | 울산광역시 인근 해안 | 불명 | 쓰나미 발생 | 조선왕조실록 한국기상기록집 NOAA |
1668. 7. 25. | XII | M8.5 | 중국 산둥성 | 사망자 42,758명 | 진도 XII | NOAA |
1668. 7. 31. | VI | M6.4 | 황해 | 불명 | 김소구 교수 논문[A] | |
1681. 6. 12. | VIII | M6.5 | 강원도 양양군 인근 해안 | 불명 | 한국기상기록집 KMA 지진연구소 논문[B] | |
1681. 6. 26. | VIII~IX | M7.5 | 강원도 양양군 인근 해안 | 불명 | 쓰나미 발생 | KMA, NGDC |
1703. 12. 31. | 7 | M8.2 | 일본 보소 반도 남서쪽 바다 | 사망자 5,233명 | 쓰나미 발생 최대높이 10.50m | NOAA |
1707. 10. 28. | 7 | M9.3 | 일본 난카이 해역 | 사망자 5,000여 명 | 쓰나미 발생 최대높이 25.70m | NOAA |
1668년 4월과 1702년에는 백두산이 분화하였다. |
3. 관련 문서
4.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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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68e96> BC 1831 ~ 1731 | M 6.5 | 태산진 | |
62. 2. 5. | M 6.1 | 62년 폼페이 지진 | |
89. 6. | M 7.0 | 89년 서울 지진 | |
100. 10. | M 6.7 | 100년 경주 지진 | |
115. 12. 13. | M 7.5 | 115년 안타키아 지진 | |
304. 8. | M 6.1 | 304년 경주 지진 | |
304. 9. | M 6.7 | ||
526. 5. 20. ~ 5. 29. | M 7.0 | 526년 안타키아 지진 | |
779. 3. | M 7.3 | 779년 경주 지진 | |
1036. 7. 17. | M 7.0 | 1036년 경주 지진 | |
1455. 1. 15. | M 6.7 | 1455년 순천 지진 | |
1518. 6. 22. | M 7.5 | 1518년 서울 지진 | |
1556. 1. 23. | M 8.0 | 산시 대지진 | |
1597. 10. 6. | M 8.0 | 1597년 백두산 지진 | |
1643. 6. 9. | M 6.4 | 1643년 합천 지진 | |
1643. 7. 25. | M 7.4 | 1643년 울산 대지진 | |
1681. 6. 12. | M 6.7 | 1681년 양양 대지진 | |
1681. 6. 26. | M 7.5 | ||
1700. 4. 15. | M 7.0 | 1700년 대마도 지진 | |
1703. 12. 31. | M 8.5 | 겐로쿠 대지진 | |
1707. 10. 28. | M 9.3 | 호에이 대지진 | |
1755. 11. 1. | M 9.0 | 리스본 대지진 | |
1797. 2. 10. | M 8.7 | 1797년 남아시아 대지진 |
<colcolor=#FFFFFF> 나무위키에 문서가 있는 규모 9.0이상 거대지진 | ||
발생 날짜 | 규모 | 해당 지진 |
<colbgcolor=#3d5f7e> 1707. 10. 28. | M 9.3[1] | 호에이 대지진 |
1755. 11. 1. | M 9.0 | 1755년 리스본 대지진 |
1833. 11. 25. | M 9.0 | 1833년 남아시아 대지진 |
1952. 11. 5. | M 9.0 | 세베로쿠릴스크 지진 |
1960. 5. 22. | M 9.5 | 1960년 칠레 대지진 |
1964. 3. 27. | M 9.2 | 알래스카 지진 |
2004. 12. 26. | M 9.3 | 2004년 남아시아 대지진 |
2011. 3. 11. | M 9.1 |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 |
[1] 진도 7 분류는 1949년에 신설되었다. 따라서 호에이 지진이 발생한 1707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진이 일어난 지 300여 년이 지나 사후해석을 한 경우이므로 편의상 진도 7로 기록한다.[2] 난카이 해곡 거대단층대는 A, B(이상 난카이), C, D(이상 도난카이), E(도카이) 등 총 5가지 세그먼트로 구분한다. 그런데 이 지진 한 방으로 A, B, C, D, E가 전부 파열되었다.[3] 다만 규모 최대치를 9.3까지 잡는 만큼 호에이 지진이 더 컸을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다. 하지만 여전히 정설은 M8 중후반대이다. 현실적으로 해구도 아닌 난카이 해곡에서 일본 해구나 페루-칠레 해구, 알류샨 해구, 쿠릴-캄차카 해구, 수마트라 해구 등에서나 발생할 법한 M9 이상 지진이 일어나기가 가능하냐는 것 주된 반론이다. 지진 활동이 비교적 적은 해곡 및 마이너 해구들과 달리 소위 메이저 해구들에서는 지진 활동이 일상다반사이다. 구글 지도에서 이런 메이저 해구들을 쉽게 찾을 수 있는데 일본, 칠레, 러시아 캄차카~미국 알래스카 등의 연안에 위치한 굵고 긴 선들이 바로 이 메이저 해구들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들 중에서도 가장 깊고 큰 해구인 마리아나 해구에서는 거대지진이 거의 없는데, 마리아나 해구가 판끼리 직접 부딪히는 다른 해구들과는 다르게 도망가는 필리핀해판을 태평양판이 따라잡는 형태의 해구여서 태평양판이 자발적으로 섭입되어 섭입면에서 마찰이 적기 때문이다. 반면 다른 메이저 해구들은 섭입면의 마찰이 굉장히 크기에 중소규모 지진은 심심하면 일어나고 대지진도 드문드문 발생하며 M8~9를 전후하는 거대지진도 1세기에 최소 한 번 이상 발생한다.[A] 김소구, 1982년, '한반도와 그 인접지역의 지진'[B] 2002년, '1681년 6월 12일, 17일, 그리고 26일 양양-삼척 근해에서 발생한 지진기록의 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