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2px" | | | | |
| | | ||
| |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3px 3px; border-radius: 2px; background-color: currentcolor; font-size: 0.8em;" | ||
{{{#!wiki style="display: inline; background-color: currentcolor; padding: 3px 3px; border-radius: 2px; font-size: 0.8em" | | | ||
| | | ||
| | | ||
◀ | ▶ | }}}}}}}}} |
헤르타 BSC 관련 문서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191919,#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fff> 정보 | <colbgcolor=#004d9e> 구단 | 헤르타 BSC|헤르타 BSC II|헤르타 BSC 부비스 | |
선수단 | 스쿼드|스쿼드(간략)|임대 명단 | |||
역사 | 역사 | 역사|기록|유니폼|역대 엠블럼 | ||
최근 시즌 | 2019-20|2020-21 | |||
우승 기록 | ★ 독일 축구 선수권 대회 | 1929-30, 1930-31 | ||
브란덴부르크 축구 선수권 대회 | 1905-06, 1914-15, 1916-17, 1917-18, 1924-25, 1925-26, 1926-27, 1927-28, 1928-29, 1929-30, 1930-31, 1932-33 | |||
가우리가 베를린-브란덴부르크 | 1934-35, 1936-37, 1943-44 | |||
오버리가 베를린 | 1956-57, 1960-61, 1962-63 | |||
2. 분데스리가 | 1989-90, 2010-11, 2012-13 | |||
DFB-리가포칼 | 2000-01, 2001-02 | |||
관련 인물 | 유명 선수|세기의 팀|역대 감독|역대 최다 출장자|역대 최다 득점자 | |||
관련 상식 | 더비 매치 | 베를린 더비 | ||
구단 시설 | 경기장 | 엑세르1892~1904 셰베라 슈포르트플라츠1904~1924 슈타디온 암 게준트부르넨1924~1963 올림피아슈타디온 베를린1963~ | ||
훈련장 | 셴켄도르프플라츠 | |||
기타 | 연고지 | 베를린 | ||
스폰서 | 메인 스폰서 | 나이키킷 스폰서 |
헤르타 BSC | |
Hertha BSC | |
<colbgcolor=#004d9e><colcolor=white> 정식 명칭 | Hertha, Berliner Sport-Club e. V. |
별칭 | Die alte Dame (노부인) |
팬 애칭 | Herthaner (헤르타너) |
약칭 | BSC |
창단 | 1892년 7월 25일 ([age(1892-07-25)]주년) |
창립자 | [[독일 제국| ]][[틀:국기| ]][[틀:국기| ]] 프리츠 린트너 (Fritz Lindner) [[독일 제국| ]][[틀:국기| ]][[틀:국기| ]] 막스 린트너 (Max Lindner) [[독일 제국| ]][[틀:국기| ]][[틀:국기| ]] 오토 로렌츠 (Otto Lorenz) [[독일 제국| ]][[틀:국기| ]][[틀:국기| ]] 빌리 로렌츠 (Willi Lorenz) |
구단 형태 | 시민 구단 |
소속 리그 | 2. 분데스리가 (2. Bundesliga) |
연고지 | 베를린 샤를로텐부르크-빌머스도르프구 베스트엔트 (Westend, Charlottenburg-Wilmersdorf, Berlin) |
홈구장 | 올림피아슈타디온 베를린 (Olympiastadion Berlin) (74,475명 수용) |
라이벌 | 1. FC 우니온 베를린 - 베를린 더비 테니스 보루시아 베를린 - 서베를린 더비 |
회장 | [[독일| ]][[틀:국기| ]][[틀:국기| ]] 파비안 드레셔 (Fabian Drescher)[대행] |
이사장 | [[독일| ]][[틀:국기| ]][[틀:국기| ]] 클라우스 브뤼게만 (Klaus Brüggemann) |
이사회 | [[독일| ]][[틀:국기| ]][[틀:국기| ]] 스캇 쾨르버 (Scott Körber) [[독일| ]][[틀:국기| ]][[틀:국기| ]] 레나테 되머 (Renate Döhmer) [[독일| ]][[틀:국기| ]][[틀:국기| ]] 토르스텐외른 클라인 박사 (Dr. Torsten-Jörn Klein) [[독일| ]][[틀:국기| ]][[틀:국기| ]] 안드레아스 슈미트 (Andreas Schmidt) |
CEO | [[독일| ]][[틀:국기| ]][[틀:국기| ]] 토마스 E. 헤를리히 (Thomas E. Herrlich) |
단장 | [[독일| ]][[틀:국기| ]][[틀:국기| ]] 베냐민 베버 (Benjamin Weber) |
기수[2] | [[독일| ]][[틀:국기| ]][[틀:국기| ]] 에리히 베어 (Erich Beer) [[헝가리| ]][[틀:국기| ]][[틀:국기| ]] 가보르 키라이 (Gábor Király) [[독일| ]][[틀:국기| ]][[틀:국기| ]] 악셀 크루제 (Axel Kruse) [[독일| ]][[틀:국기| ]][[틀:국기| ]] 마르코 레머 (Marko Rehmer) [[아이슬란드| ]][[틀:국기| ]][[틀:국기| ]] 에이욜뷔르 스베리손 (Eyjólfur Sverrisson) |
감독 | [[독일| ]][[틀:국기| ]][[틀:국기| ]] 크리스티안 피엘 (Cristian Fiél) |
주장 | [[독일| ]][[틀:국기| ]][[틀:국기| ]] 토니 라이스트너 (Toni Leistner) |
역대 한국인 선수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이동준 (2022) |
공식 웹사이트 | | | | | | | |
우승 기록 | |
2. 분데스리가 (2부) (3회) | 1989-90, 2010-11, 2012-13 |
DFB-리가포칼 (2회) | 2000-01, 2001-02 |
★ 독일 축구 선수권 대회 (2회) | 1929-30, 1930-31 |
VBB 축구 선수권 대회 (12회) | 1905-06, 1914-15, 1916-17, 1917-18, 1924-25, 1925-26, 1926-27, 1927-28, 1928-29, 1929-30 1930-31, 1932-33 |
오버리가 베를린 (1부) (3회)[A] | 1956-57, 1960-61, 1962-63 |
구단 기록 | |
최고 이적료 영입 | [[프랑스| ]][[틀:국기| ]][[틀:국기| ]] 뤼카 투자르 (Lucas Tousart) (2020년, From 올랭피크 리옹, 2,400만 €) |
최고 이적료 방출 | [[브라질| ]][[틀:국기| ]][[틀:국기| ]] 마테우스 쿠냐 (Matheus Cunha) (2021년, To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3,000만 €) |
최다 출장 | [[헝가리| ]][[틀:국기| ]][[틀:국기| ]] 팔 다르더이 (Pál Dárdai) - 373경기 (1997~2011) |
최다 득점 | [[독일| ]][[틀:국기| ]][[틀:국기| ]] 에리히 베어 (Erich Beer) - 112골 (1971~1979) |
리그 득점왕 (1회) | [[독일| ]][[틀:국기| ]][[틀:국기| ]] 미하엘 프레츠 (1998-99) |
2023-24 시즌 골송 |
[clearfix]
1. 개요
HA HO HE HERTHA BSC |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진 순수 축구단이며, 1900년 라이프치히에서 창설된 독일 축구 연맹의 창립 회원이자 1963년 출범한 분데스리가의 원년 멤버이다. 또한 2023년 11월 8일 기준 약 50,000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는 독일의 15대 스포츠 구단 중 하나이자 베를린을 대표하는 구단 중 하나이다.
헤르타는 1892년 7월 25일 4명의 베를리너 소년들[4]에 의해 BFC 헤르타 92라는 이름으로 창단되어 1923년 8월 베를리너 SC와의 합병을 거쳐 구단명을 헤르타 BSC로 변경하였고, 1930년 두 구단이 다시 분리된 이후에도 계속 헤르타 BSC라는 팀명을 유지하였다.
2. 역사
헤르타 BSC가 창단된 장소로 알려져 있는 아르코나플라츠의 벤치, 베를린 미테에 위치해 있다. |
헤르타는 초기에 몇몇 구단들과 친선 경기를 주최하였으나, 구단 운영의 주 목적은 회원들의 친목이였기 때문에 성장의 한계를 보였고, 실제로 회원 수가 4명까지 감소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 시기에 당시 베를린의 강팀이었던 알레마니아 90이 분열되어 일부 회원들이 구단에 합류하였고 결과적으로 회원 수는 증가하게 되었다. 여담으로 헤르타는 등록된 구단이었기 때문에 베를린의 공공 경기장 '엑세르'를 이용할 수 있었으나, 공과 유니폼은 선수들이 직접 가져와야 했고, 선수들은 인근 식당을 탈의실로 이용하였다.
1894년 2월 13일, 헤르타는 '토어 & 축구협회 베를린'[5] 창립 회원으로 참여했으나 같은 해 11월 27일 '독일 축구 & 크리켓 협회'[6]를 거쳐 1900년 10월 27일 '독일 구기구단 협회'[7]에 가입하였다.
1905년, 헤르타는 미테구 게준트부르넨에 위치한 셰베라 광장[8]으로 홈 구장을 이전하면서 안정적인 팬 기반을 확보하였고, 다음 해인 1906년 베를린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구단 역사상 첫 번째 우승을 차지하면서 1907년 독일 축구 선수권 대회에 참가할 자격을 얻게 되었다. 헤르타는 디펜딩 챔피언 VfB 라이프치히를 준결승에서 만나 패배하였다.
1910년, 헤르타는 잉글랜드의 세미프로 축구단 사우스엔드 유나이티드 FC와의 친선전에서 승리하며 잉글랜드 세미프로 축구단을 꺾은 최초의 대륙 축구단이 되었다.
1920년대초 재정적 위기로 인해 베를린의 다른 클럽인 베를리너 SC와 잠시 합병하며 팀명을 현재의 이름인 헤르타 BSC로 바꾸었다.[9] 합병하며 재정적 위기가 해소되자 20년대말엔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지역 리그 챔피언들이 모여 벌이는 독일 전국 챔피언십 결승전에 1926년부터 6년 연속 진출한 것이다. 그러나 내리 4년을 준우승하다가 1930년에 첫 우승하면서 비로소 콩라인에서 탈출했다. 이 우승으로 재정적으로 여유가 생기자 다시 베를리너 SC와 분리되고 7만3000 리히스마르크의 포상금을 지급해 우승 당시 팀명인 헤르타 BSC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1931년 다시 한 번 우승을 거둔다. 하지만 이 기세를 이어갈 찰나에 나치가 집권하고, 제2차 세계 대전이 터지고, 나치는 졌고, 베를린은 연합국에 의해 두 동강이 나면서 이 팀의 침체기가 시작되었다.
그래도 베를린의 대표 클럽이라서 1963년 분데스리가 출범 당시 원년 멤버로 낄 수 있었다. 문제는 1965년 정해진 급료 체계[10]를 넘어서 선수들에게 급료를 준 사실이 드러나 강제로 강등된 것. 다만, 이건 헤르타 입장에서 정말 억울한데, 이는 동독 한 복판에 낀 서베를린으로 아무도 오려고 하지 않아서 하는 수 없이 임금을 높게 지급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71년 분데스리가 승부조작 사건에 가담한 것은 두고두고 까일 일. 다만, 그들이 주범은 아니라서 큰 처벌은 받지 않았다.
이 때의 강등을 딛고 바로 승격해서 1970년대에는 준우승도 한 차례 기록하는 등, 제법 괜찮은 성적을 냈다. 그러나 서베를린에 고립된 클럽이라는 지역적인 한계는 계속 팀의 운영에 악영향을 미쳤다. 고립된 섬으로 선수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더 많은 급료 지출이 필연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영진은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돈을 계획적으로 쓰기보다 더 함부로 쓰는 등, 경영이 완전히 막장이었고, 급기야 부실 경영으로 인해 팀이 흔들리면서 강등, 1980년대와 1990년대까지 17년을 하부리그에서 보내는 수모를 경험한다.
팀 경영진이 얼마나 막장인지 알려주는 일화가 있다. 동서 분단 당시 동베를린의 헤르타 팬들의 비밀 모임이 있었다. 헤르타 구단 측도 이를 알고 있었는데, 문제는 이를 구단 홍보 문구에 그대로 삽입한 것. 당연히 동독의 슈타지가 알아챘고, 결국 동베를린의 헤르타 팬들은 그대로 코렁탕 크리... 동네에서 나온 1980년대 독일 최고의 테크니션인 피에르 리트바르스키는 그냥 가만히 넋놓고 있다가 FC 쾰른에 뺏겼다.
다행히도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로는 이런 급료 체계의 필연적인 한계를 넘어서 도약할 수 있었고, 동베를린 지역의 팬들까지 흡수하면서 베를린에서 최고의 명성을 자랑하는 팀으로 도약했으며 그동안 2.분데스리가에서 머물던 팀은 1996년에 부임한 위르겐 뢰버 감독의 지휘 하에 1996/97 시즌에 3위로 1부에 승격했다.. 하지만 이미 부실화된 경영으로는 뭘 해 볼 도리가 없어서 1998/99 시즌에 한번 챔스에 나간 것을 빼고는 대체로 중위권 정도를 전전했다.
2.1. 요약
- 1부/분데스리가: 1963-1965, 1968-1980, 1982-1983, 1990-1991, 1997-2010, 2011-2012, 2013-2023 (40시즌)
2.2. 역대 팀 엠블럼
헤르타 BSC 역대 엠블럼 | ||||
1892~1923 | 1923~1984 | 1984~1999 | 1999~2012 | 2012~ |
2.3. 유니폼 & 스폰서
2023-24 시즌 헤르타 BSC 유니폼 및 스폰서 | |||
홈 | 어웨이 | 서드 | GK |
유니폼 메이커 | 메인 스폰서 | 슬리브 스폰서 | |
2.4. 2011-12 시즌
1년만의 분데스리가 복귀. 초반에는 도르트문트 원정에서 2:1로 이기는 대이변도 연출했지만(2011/12시즌 우승팀 도르트문트의 유일한 홈경기 패배) 2011-12 시즌 26라운드까지 6승 8무 13패,승점 26점. 17위, 또 강등 위기에 빠져있다. 그나마 13위와 승점 차가 2점 밖에 나지 않아서 아직 승격 희망이 있다. 하지만 이후로 승점이 벌어지면서 15위 아우크스부르크와 5점차로 벌어졌다. 그나마 31차전 레버쿠젠 원정에서 3:3으로 겨우 비기는 선전을 벌였으나 이후로 2경기를 다 지면서 17위로 내려갔다. 이젠 2부리그 3위와 플레이오프를 벌이는 순위 16위인 1.FC 쾰른과 1점차라서 16위나마 희망에 걸어야 할 판국이다.2012년 들어 전 그리스 국가대표팀을 맡으며 유로 2004 우승을 거머쥐었던 오토 레하겔을 감독으로 영입해 재기를 노리고자 했다. 선수 시절 1963년에서 1965년까지 베를린에서 뛰기도 했던 레하겔이라 본인에게도 약간 의미있는 감독직이라고 한다. 문제는 강등 탈출에 전념을 다해야하는 점이지만. 그러나 시즌 도중에 성적을 올리지 못하고 쫓겨났다.
그리고 34차 마지막 리그 경기. 호펜하임과의 안방경기를 3:1로 이기면서 극적으로 1.FC 쾰른과 1점 차로 16위를 기록하며 2부리그 3위인 포르투나 뒤셀도르프와 잔류&승격 플레이오프 2경기를 5월 11일,16일에 치르게 됐다. 마지막 기회가 남은 셈. 하지만 5월 11일에 베를린 안방에서 열린 1차전에선 뒤셀도르프에게 1:2로 역전패당했다. 그리고 2차전 뒤셀도르프 원정에서 막판 85분 동점골을 넣으며 총력을 다했지만 결국 2:2로 경기를 끝내며 1무 1패로 강등당했다.
2.5. 2012-13 시즌
Zweitliga-MEISTER 2012-13 2. 분데스리가 우승팀 |
2.6. 2018-19 시즌
자세한 내용은 헤르타 BSC/2018-19 시즌 문서를 참조하기 바랍니다. |
2.7. 2019-20 시즌
자세한 내용은 헤르타 BSC/2019-20 시즌 문서를 참조하기 바랍니다. |
라르스 빈트호르스트라는 투자자가 헤르타 베를린의 지분 37.5%를 사들이며 거금을 투자했다. 투자받은 돈은 125M. 이중 40M은 부채 상환에 쓰이고 나머지는 다 이적시장에 쓴다고 한다. 이번 시즌 헤르타가 어떤 행보를 보일지...
10월 말부터 리가에서 4연패를 당해 순위가 강등권인 15위까지 추락하자, 안테 초비치감독을 경질했다. 경질후 13라운드부터 부임한 감독은 위르겐 클린스만... 전반기는 2승2무를 거두며 상승세 속에 마무리했다.
겨울 이적시장에서 80m의 거금을 들여 크시슈토프 피옹테크, 뤼카 투자르, 마테우스 쿠냐, 산티아고 아스카시바르를 영입했다. 그러나 쿠냐와 투자르 말고는 모두 헤르타에서 좋은 퍼포먼스를 보이지 못했다.[11] 거기다 결정적으로 클린스만 감독이 구단에 알리지 않은채 2020년 2월 11일 개인 페이스북 라이브방송으로 사임을 발표해버렸다...
급한대로 브루노 라바디아감독을 선임해 후반기 좋은 성적으로 10위로 마무리할수 있었다.
2.8. 2020-21 시즌
자세한 내용은 헤르타 BSC/2020-21 시즌 문서를 참조하기 바랍니다. |
- 분데스리가: 14위
- DFB-포칼: 1라운드 VS 아인트라흐트 브라운슈바이크
2021년까지 예정되어 있던 TEDi와의 메인스폰서 계약을 조기 종료하며 새로운 메인스폰서를 찾게 되었다. 유력한 후보는 테슬라, 아마존닷컴. 그런데 이 둘을 구단이 거절했다는 기사가 나오며 다시 메인스폰서의 행방은 오리무중이 되었다.
2.9. 2021-22 시즌
마테우스 쿠냐가 30m의 이적료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떠났다. 그리고 존 코르도바가 FC 크라스노다르로 20m의 이적료로 떠났다.FC 샬케 04에서 8m의 이적료로 수아트 세르다르, FC 아우크스부르크에서 7.1m으로 마르코 리히터, AFC 아약스에서 3m으로 위르헌 에켈렌캄프를, DGC 니스에서 미지안 마올리다를 4m으로, AS 모나코 FC에서 스테반 요베티치를 자유계약으로 영입했다. #
이번 시즌 초반 흐름이 좋지 않다.
2022년 1월 28일, 대한민국의 울산 현대 소속 윙어인 이동준과 링크가 떴다. 이동준이 울산으로 이적할 당시 유럽 리그 이적 시 바이아웃 조항을 삽입했고, 해당 금액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메디컬 테스트를 위해 독일 베를린으로 출국한 다음날 영입 오피셜이 떴다. #
그러나 계속해서 성적부진이 이어지며 강등권으로 추락하자 타이푼 코르쿠트 감독이 경질되고 펠릭스 마가트가 2022년 3월 17일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마가트 부임후 3승2패를 거두며 강등권에서 탈출했다. 특히 31라운드에서 강등권 경쟁팀 VfB 슈투트가르트를 홈에서 2-0으로 꺾었고, 3경기 남은 상황에서 16위 슈투트가르트에 승점 4점이 앞서있다. 그러나, 마지막 34라운드에서 패하면서 최종순위는 16위로 2. 분데스리가 3위 함부르크 SV와 승강플레이오프를 치르게 되었다.
홈에서 열린 1차전에서 뤼도빗 레이스에게 통한의 결승골을 허용하며 0-1로 패배하며, 강등 위기에 처했으나, 원정에서 열린 2차전에서 데드리크 보야타와 마르빈 플라텐하르트의 연속골로 2-0으로 승리하며 1부 리가 잔류에 성공했다.
2.10. 2022-23 시즌
자유계약으로 필리프 우레모비치, 존조 케니를 영입했다. 새 감독직에는 잔드로 슈바르츠가 선임되었다.지난시즌까지의 처참한 성적으로 인해 베르너 게겐바우어 회장이 사임을 선언했고, 놀랍게도 울트라스 출신 카이 베른슈타인이 회장으로 당선되었다.
아르네 프리드리히 단장이 사임했다. 얼마뒤 프레디 보비치 역시 단장직에서 사임했다. 2023년 3월, 777파트너스라는 투자회사에서 라르스 빈트호르스트의 지분을 모두 매수하며 새로운 투자자로 나타났다.강등권에서 처참한 성적을 보여주며 슈바르츠 감독은 경질되고 또다시 팔 다르더이가 부임했다.
33라운드 보훔과의 홈 경기에서 1:1로 비기면서 잔여 경기 결과에 상관없이 2. 분데스리가 강등이 확정되었다. 2012-13 시즌 승격 이후 10년 만의 강등이다[12].
2.11. 2023-24 시즌
2.11.1. 2.분데스리가
홀슈타인 킬에서 파비안 레제를, 신트트라위던 VV에서 토니 라이스트너, KAS 오이펜에서 스마일 프레블랴크, SpVgg 그로이터 퓌르트에서 예레미 두지아크를 영입했다.
11년만에 2.분데스리가로 강등된 헤르타의 리그 첫 경기는 포르투나 원정.
전반을 0:0으로 마쳤으나 후반 5분 F05의 긴체크에게 결승골을 내주며 0:1로 아쉽게 패하며 시즌을 출발하였다.
이어진 홈 개막전에서는 비스바덴을 불러들여 경기를 가졌다. 점유율 57%의 우위를 보였으나 후반 추가시간 귄터에게 결승골을 내주며 연패로 시즌을 시작하게되었다.
3라운드에서는 함부르크 원정에서 0:3의 완패를 당하며 초반이긴 하지만 쉽지 않아 보이는 2.분데스리가 복귀 시즌을 보내는 모습.
4라운드 상대는 그로이터. 멀티 득점을 올린 타바코비치의 선취골에 이어 빙클러의 추가골이 연이어 터지면서 그로이터를 5:0으로 완파하고 시즌 첫 승을 올렸다.
5라운드 1. FC 마그데부르크 원정에서는 리츠의 전반 2분 선취골이 나왔으나 4분 후 동점을 허용하더니 다시 빙글러의 득점이 나왔지만 슐러와 체카의 득점에 역전을 당하는 등 끝내 4:4까지 추격하였지만 한쿠리에게 결승골을 허용하며 4:6이라는 보기 드문 스코어로 패했다.
이후 6라운드에서는 브라운슈바이크를 잡아내었고 시즌 상위권에 올라 있는 홀슈타인 킬을 상대로 리즈의 결승골로 3:2로 승리하며 시즌 첫 연승을 달렸다.
8라운드에서는 장크트파울리와의 홈 경기에서 1:2로 패하였으며 같이 2.분데스리가로 강등된 샬케와의 원정에서는 2:1로 승리하였다. 그러나 10라운드에서는 뉘른베르크 원정에서는 1:3으로 패배.
11라운드에서는 파더보른을 상대로 승리하며 중간 순위 9위로 뛰어올랐고 12라운드 부터는 로스토크-카를스루어-하노버와 연이은 무승부를 벌이며 중위권에 안착해 있는 상태.
전반기 후반부였던 엘버스베르크와 카이저슬라우테른에 승리하며 중상위권으로 도약하였고 마지막 경기였던 오스나뷔르크전에는 0:0으로 무승부를 기록하며 전반기를 마쳤다. 7승 4무 6패로 승점 25점이며 중간 순위는 7위.
후반기에 들어설 무렵인 2024년 1월 16일에는 CEO인 카이 베른슈타인이 갑작스럽게 사망하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같은 달 21일에 치러진 18라운드 포르투나 뒤셀도르프전에서 베른슈타인의 추모식이 진행되었다.
베른슈타인의 추모식이 함께 진행되었던 경기에서 타바코비치의 선취골이 나왔으나 요한네손에게 동점골을 허용하였고 다시 셰르한트가 전반 추가시간 달아나는 득점을 올렸으나 후반 5분 촐리스에게 패널티 킥 골을 허용하며 2:2로 경기를 마쳤다.
19라운드 비스바덴 원정에서는 다시 비스바덴에 패하였고 함부르크와의 홈 경기(20R)에도 패하며 중간 순위가 11위까지 추락하였다.
21라운드에서는 그로이터에 다시 승리를 거두었고 전반기 난타전을 벌였던 마그데부르크를 홈으로 불러들여 경기를 갖은 22라운드에서는 3:2로 승리하며 복수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이후 브라운슈바이크(23R)와 홀슈타인 킬(24R)과 무승부를 벌였고 리그 선두를 달리던 장크트파울리를 상대로 패하며 상위권으로 나아가지는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홈에서 펼쳐진 26라운드 경기에서는 타바코비치와 빙클러의 멀티 득점에 힘입어 샬케를 5:2로 완파하였으며 뉘른베르크(27R)와는 무승부를 벌이며 승점 38점째를 획득하였다.
28라운드에서는 파더보른에 3:2로 어렵게 승리하며 승강 플레이오프 진입을 위한 희망을 이어나갔으며 이어진 29라운드에서는 로스토크를 4:0으로 완파하며 6위로 도약하였다.(12승 8무 9패, 승점 44점)
29라운드까지의 성적은 3위 포르투나의 승점이 52점인 가운데 추격하는 4위 함부르크는 승점 49점. 5위 하노버는 45점인 상황.
2.분데스리가 30라운드에서는 비슷한 성적을 기록하던 카를스루어와 만났다. 전반을 1:2로 마치고 후반 32분 바니체크에게 다시 실점하며 2:3으로 패하면서 승점 44점이 유지되었다.
31라운드에서는 켐프의 선취골로 앞서 나갔으나 후반 48분 레오폴트에게 실점하며 하노버와 무승부를 기록하며 다음 시즌에도 2.분데스리가 소속으로 남게되었다. 남은 경기가 3경기인 가운데 3위 포르투나의 승점이 56점이되었기 때문. (헤르타의 승점은 45점.)
32라운드 엘버스베르크에 2:4로 완패하였으나 다음 경기였던 카이저슬라우테른을 상대로 3:1로 승리하며 시즌 승점 48점(13승 9무 11패)
리그 마지막 경기였던 오스나뷔르크 원정에서는 3.리가로의 강등이 확정된 오스나뷔르크에 1:2로 패하면서 시즌을 마감하였다.
리그 합산 성적은 13승 9무 12패로 승점 48점이며 최종 순위는 9위. 8위는 승점 50점의 그로이터이며 10위는 승점 43점의 샬케.
2.11.2. DFB-포칼
DFB-포칼에선 레기오날리가 노르트오스트 소속의 FC 카를 차이스 예나를 만나 다르더이의 선취골과 리터의 멀티 득점에 힘입어 예나에 5:0의 완승을 거두며 2라운드에 진출하였다.2라운드 상대는 1.분데스리가 소속의 1. FSV 마인츠 05.
베를린 올림피아 슈타디온에서 열린 마인츠와의 경기에서는 전반 48분 리즈의 패널티 킥 득점으로 앞서나갔으며 후반 4분 타바코비치의 득점에 힘입어 마인츠에 3:0의 완승을 거두며 3라운드에 진출하였다. https://www.youtube.com/watch?v=_sr-YoO7xqI&feature=onebox
3라운드(16강) 상대는 같은 2.분데스리가 소속의 함부르크 SV.
전후반 90분 2:2를 기록하며 연장전에 돌입했고 HSV의 쾨니히스되르퍼에게 연장 전반 12분에게 실점하였으나 연장 후반 15분, 케니 극적인 동점골을 만들며 승부차기에 돌입하였다. 결국 승부차기에서 5:3으로 승리하며 8강에 진출하였다. https://www.youtube.com/watch?v=XNwSPof9TaU
8강(4라운드) 상대 역시 같은 2.분데스리가 소속의 카이저슬라우테른.
전반 5분, 프리킥에 이은 크로스로 엘베디에게 실점하였으며 다시 전반 37`, 게르스베크의 골킥을 탈취당하며 타키에에게 추가골을 허용하여 패색이 짙어졌다. 결국 리즈가 후반 추가 시간 추격골을 터트렸으나 칼로스에게 추가골을 내어주며 1:3으로 패하며 이번 시즌 포칼 일정을 마무리하였다. https://www.youtube.com/watch?v=__LQr7CPWGE
2.12. 2024-25 시즌
3. 라이벌
과거 테니스 보루시아 베를린과의 더비가 유명했으나 이후 보루시아 베를린이 몰락하며 현재는 보기 힘들다.
- 2019-20시즌부터 성사된 1. FC 우니온 베를린과의 베를린 더비가 가장 유명하다. 과거 분단시절에는 두 클럽 서포터즈들의 사이는 각별했다. 헤르타와 우니온은 한 국가 "Herta und Union – eine Nation"라는 슬로건이 있었을 정도. 헤르타가 동독이나 동구권 국가들 클럽과 경기할때 함께 응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통일이 되며 동베를린과 서베를린 간의 1인자 클럽을 가리는 자존심 대결이 되었고, 양 팀 간의 경기에서 관중이나 장내 아나운서가 갈등에 빠지고 경영진이 그들에게 동조하는 등 여러 사건이 있은 후엔 후술된 것처럼 홍염을 쏘고[13] 폭죽 등 화약류의 연기 때문에 경기 시간이 지연되는 등 어지간한 라이벌매치보다 더한 광경을 보여주고 있다.
2019-20시즌 10라운드 분데스리가에서 치러지는 베를린 더비는 47분 관중들이 경기장에 홍염을 쏘며 경기가 중단되기도 했으며 홈, 어웨이 서포터들끼리 서로 상대방 좌석에 홍염을 쏴 부상자도 나왔다. 경기는 1. FC 우니온 베를린의 1대0 승으로 끝났다.
- 전통적으로 FC 샬케 04 울트라스와 사이가 좋지 않다.
4. 응원가
4.1. Nur nach Hause
헤르타 BSC 공식 응원가 Nur nach Hause |
올림피아슈타디온 베를린에서의 응원 |
Nur nach Hause |
4.2. Nur nach Hause 독일어 가사
Freunde, was gibt es Schöneres,
Als hier im Stadion unserer Herthamannschaft die Däumchen zu drücken
Und sie von den Rängen zu unterstützen
Auf dem Weg nach oben
Nur nach Hause, nur nach Hause,
Nur nach Hause geh'n wir nicht
Nur nach Hause, nur nach Hause
Nur nach Hause geh'n wir nicht
Nur nach Hause, nur nach Hause,
Nur nach Hause geh'n wir nicht
Nur nach Hause, nur nach Hause,
Nur nach Hause geh'n wir nicht
Alle warten voller Spannung
Auf das absolute Spiel
Denn die Jungens von der Hertha
Haben alle nur ein Ziel:
Heute wollen sie gewinnen
Für das blau-weiße Trikot Sowieso oh-oh oh-oh
Und sowieso oh-oh oh-oh
Nur nach Hause, nur nach Hause
Nur nach Hause geh'n wir nicht
Nur nach Hause, nur nach Hause
Nur nach Hause geh'n wir nicht
Nur nach Hause, nur nach Hause,
Nur nach Hause geh'n wir nicht
Nur nach Hause, nur nach Hause,
Nur nach Hause geh'n wir nicht
All die Fans brüllen sich den Hals aus
Und der Stürmer der stürmt vor
Alle jubeln, wenn der Ball rollt
Voll hinein ins Gegnertor
Und am Abend dann am Tresen
Werden wir zum Libreo
Sowieso oh-oh oh-oh
Und sowieso oh-oh oh-oh
Nur nach Hause, nur nach Hause,
Nur nach Hause geh'n wir nicht
Nur nach Hause, nur nach Hause,
Nur nach Hause geh'n wir nicht
Jetzt seid ihr dran
Nur nach Hause(nur nach Hause),
Nur nach Hause (nur nach Hause),
Nur nach Hause (hey Leute nur nach Hause)
Geh'n wir nicht(genau)
Nur nach Hause(Was soll'n wir denn zu Hause?),
Nur nach Hause (Bei dieser Schwiegermutter?),
Nur nach Hause(Bei diesen hohen Mieten)Also bleiben wir doch im Stadion!)
Geh'n wir nicht
Nur nach Hause, nur nach Hause,
Nur nach Hause geh'n wir nicht
Nur nach Hause, nur nach Hause,
Nur nach Hause geh'n wir nicht
Und nochmal
Nur nach Hause, nur nach Hause,
Nur nach Hause geh'n wir nicht
Nur nach Hause, nur nach Hause,
Nur nach Hause geh'n wir nicht
Denn nur nach Hause geh'n wir nicht
Schwung
오래된 전통을 가진 HA HO HE라는 응원문구도 유명하다. 현재 골송에서도 음악이 끝난뒤
HA HO HE Hertha BSC!
하 호 헤 헤르타 BSC!
라고 외친다.하 호 헤 헤르타 BSC!
5. 레전드
5.1. 세기의 팀(Die Jahrhundertelf)
창단 111주년이 되는 2003년에 헤르타는 팬 투표를 통해 "헤르타 BSC 세기의 팀"를 선정하였다.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Die Jahrhundertelf von Hertha BSC (4-4-2) | |||||||||||
Sturm 프레츠 (1996~2003) | Sturm 크루제 (1989~1991) / (1996~1998) | |||||||||||
Mittelfeld 마르셀리뉴 (2001~2006) | Mittelfeld 베어 (1971~1979) | Mittelfeld 조베크 (1925~1939) | Mittelfeld 렉달 (1997~2000) | |||||||||
Abwehr 스베리손 (1995~2003) | Abwehr 클리만 (1974~1980) | Abwehr 뮐러 (1972~1975) | Abwehr 프리드리히 (2002~2010) | |||||||||
Tor 키라이 (1997~2004) |
5.2. 기수(Fahnenträger)
6. 선수 명단
헤르타 BSC 1군 스쿼드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헤르타 BSC 2024-25 시즌 | |||||
등 번호 | 국적 | 포지션 | 한글 성명 | 로마자 성명 | 비고 | |
2 | DF | 페테르 페카리크 | Peter Pekarík | |||
3 | DF | 아구스틴 로헬 | Agustín Rogel | |||
5 | MF | 안드레아스 부할라키스 | Andreas Bouchalakis | |||
6 | MF | 디에고 데메 | Diego Demme | |||
7 | FW | 플로리안 니더레흐너 | Florian Niederlechner | |||
8 | FW | 빌랄 후세인 | Bilal Hussein | |||
9 | FW | 스마일 프레블랴크 | Smail Prevljak | |||
10 | FW | 이브라힘 마자 | Ibrahim Maza | |||
11 | FW | 파비안 레제 | Fabian Reese | |||
12 | GK | 탸르크 에른스트 | Tjark Ernst | |||
15 | FW | 미지안 마올리다 | Myziane Maolida | |||
16 | DF | 존조 케니 | Jonjo Kenny | |||
18 | FW | 루카 슐러 | Luca Schuler | |||
19 | MF | 예레미 두지아크 | Jeremy Dudziak | |||
20 | DF | 마르크올리버 켐프 | Marc-Oliver Kempf | |||
21 | DF | 안데르손 루코퀴 | Anderson Lucoqui | |||
22 | MF | 마르텐 빙클러 | Marten Winkler | |||
24 | MF | 벤스 다르더이 | Bence Dárdai | |||
25 | FW | 하리스 타바코비치 | Haris Tabakovic | |||
26 | MF | 구스타브 크리스텐센 | Gustav Christensen | |||
27 | MF | 미카엘 퀴장스 | Michaël Cuisance | |||
28 | FW | 켈리안 은소나 | Kelian Nsona | |||
31 | DF | 마르톤 다르더이 | Márton Dárdai | |||
33 | DF | 미하우 카르보프니크 | Michał Karbownik | |||
34 | DF | 데요바이쇼 제파이크 | Deyovaisio Zeefuik | |||
35 | GK | 마리우스 게르스베크 | Marius Gersbeck | |||
37 | DF | 토니 라이스트너 | Toni Leistner | |||
39 | FW | 데리 셰르한트 | Derry Scherhant | |||
40 | FW | 루카 볼슐레거 | Luca Wollschläger | |||
41 | DF | 파스칼 클레멘스 | Pascal Klemens | |||
43 | GK | 팀 골러 | Tim Goller | |||
44 | DF | 리누스 게흐터 | Linus Gechter | |||
48 | MF | 메수트 케시크 | Mesut Kesik | |||
# | MF | 케빈 세사 | Kevin Sessa | |||
# | MF | 펄코 다르더이 | Palkó Dárdai | |||
구단 정보 | ||||||
구단주: 베르너 게겐바우어 / 감독: 크리스티안 피엘 / 홈 구장: 올림피아슈타디온 베를린 |
7. 둘러보기
분데스리가 원년 멤버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2px -12px" | | | | |
| | | | |
| | | | |
| | | |
[대행] 카이 베른슈타인회장 사망 이후 대행[2] 'Fahnenträger', 구단의 공식 앰버서더 개념의 직책이다.[A] [4] 프리츠 린트너 & 막스 린트너 형제, 오토 로렌츠 & 빌리 로렌츠 형제[5] Thor- und Fußballbund Berlin, 약칭 TuFB.[6] Der Deutsche Fußball- und Cricket Bund, 약칭 DFuCB.[7] Verband Deutscher Ballspielvereine, 약칭 VDB.[8] 현 노르덴 노르트베스트 광장(Norden-Nordwest-Platz), 약칭 NNW 광장(NNW Platz).[9] 이전까지 BFC 헤르타 92라는 명칭이었다가 헤르타에 베를리너 SC의 BSC를 합쳐 헤르타 BSC가 된것.[10] 당시 분데스리가는 일정 금액 이상 선수 임금을 지급할 수 없도록 규정한 임금상한선 규정이 있었다. 이 규정은 1971년 선수들이 돈을 받고 승부조작에 가담한 사건이 나오면서 폐지된다.[11] 피옹테크는 골을 못넣는 공격수였고, 아스카시바르는 조금 괜찮은 모습을 보이다 십자인대부상으로 시즌아웃.[12] 한 술 더떠 해당 시즌 라이벌인 우니온 베를린이 챔스 진출에 성공하며, 이젠 헤르타는 우니온에게 오랫동안 지켜왔던 베를린의 맹주 자리를 사실상 내주었다.[13] 바로 아래 문단의 19-20시즌 더비에서는 아예 홍염이 선수단 벤치 앞에서 터지는 바람에 경기를 하다 말고 양 팀 선수단이 선수단 입장통로로 대피하는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