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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12 09:08:54

항백

項伯

(? - 기원전 192년)

1. 개요2. 생애3. 평가4. 초한지5. 삼국지평화

1. 개요

초나라 명장 항연의 아들이며, 항량과 형제, 서초패왕 항우의 숙부이다. '백(伯)'은 자고,[1] 이름(본명)은 '전(纏)'이다. 조카와 마찬가지로 본명보다 자가 더 유명하다. 항연의 아들 3명 중에서 유일하게 본명과 자가 다 알려졌다.

초나라 귀족이며 항우의 숙부인 만큼 당연히 반진전쟁 전부터 항우 측의 핵심인사였지만,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항우와 범증으로부터 유방의 목숨을 구하고 한제국의 개국공신이 되었다. 비꼬는 의미가 아니고 항백 역시 초한전쟁에서 살아남아 유방과 장량과의 인연 덕에 한제국의 신하가 되어 천수를 누렸다.

2. 생애

아버지 항연이 최후의 전투에서 전사하고, 초나라가 멸망하여 곤경에 처하자, 고향을 떠나 돌아다니다가 살인을 저질렀는데 유협을 모으며 잘 대해주고 있던 장량에게 몸을 의탁하였다. 이 당시 쌓은 장량과의 인연은 평생 이어진다.

이후 형제 항량과 조카 항우가 거병하자 찾아가서 동참하였으며, 항우 곁에서 좌윤(左尹) 벼슬을 하였다.

유방이 진나라를 점령하고, 항우가 뒤늦게 관중에 도착하면서 유방군과 항우군은 대립을 하게 된다. 항백은 이때 유방에게 의탁하고 있던 장량을 걱정하여, 유방의 진영을 방문하여 장량에게 "몸을 피하라"고 권고하지만 장량은 "유방을 저버릴 수 없다"며 거절했다. 항백은 장량의 주선으로 유방과 회견을 하고, 유방과의 회담을 주선한다. 이것이 바로 홍문연이다.

홍문연에서 항백의 중재 아래 유방과 항우는 회견을 하였으며, 유방이 항우에게 사과하여 두 영웅은 화해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때 범증은 유방을 놓치면 안 된다고 생각하여 항우의 사촌동생 항장을 보내서 칼춤을 추는 척하면서 유방을 살해하라는 계략을 실행한다. 하지만 이때 항백은 장량에게 부탁을 받고 항장의 칼춤을 상대한다며 자신도 칼춤을 추며 유방을 보호한다. 숙부와 조카가 칼춤을 가장한 대결을 한참 벌이다가, 번쾌가 난입하여 겨우 유방은 목숨을 건진다. 후에 이 일을 배경으로 조선에서 만들어진 춤이 바로 공막무다.

이후 촉으로 떠난 유방은 장량을 통해 항백에게 선물을 주고, 항백은 항우에게 부탁해서 파촉과 관중을 연결하는 입구인 한중 지역까지 유방에게 넘겨주었는데 이것이 엄청난 파급효과를 불러와 유방이 함양에서 출발한지 겨우 4달만에 다시 관중으로 튀어나와 3진왕들을 제압하고 구 진나라 지역을 완전이 확보할 수 있게 만들었다
기원전 204년, 구강왕 영포가 항우를 배신하자 항전은 항적의 명령을 받고 구강으로 가서 영포의 처자를 모두 죽였다. 이후 광무 대치 때 유방의 패드립[2]에 격분한 항적이 유태공을 정말로 솥에 삶으려고 하자 말려서 유태공을 구했다. 이유는 어차피 유방은 집안을 살피지 않으니 유태공을 죽여봤자 이득이 없다는 것이었으나 시체가 삶겨진 왕릉의 어머니의 처분 등을 생각하면 뒷북이랄지, 의도가 영 수상쩍은 면이 있다.[3]

항우의 세력이 쇠약해지자 아예 서초에서 이탈하여 유방의 한군에 항복한다.

논공행상에서 항백은 사양후(射陽侯)에 봉해졌으며, "항씨를 자칭하고서는 유씨의 세상에서 살 수 없다"는 이유로 유방에게 허락을 받고 유씨 성을 하사받아 유전(劉纏)으로 개명한다.[4] 192년에 사망하고 그 아들 유수(劉睢)가 뒤를 이었지만 기원전 186년(여후 2년)에 죄를 지어 봉국이 몰수되었다.

3. 평가

유방 입장에서 보자면 정말 둘도 없는 은인으로 항백이 유방의 목숨을 구해준 것은 물론 노다지 땅인 한중까지 넘겨준 덕에 항우의 대항마 유방은 죽지않고 살아남아 한중을 바탕으로 세력을 키워나갔고 본인의 아버지를 삶아죽이려는걸 막아주기까지 했으니 큰 은인이다. 게다가 장량에 대한 우정과 의리를 위해 본인 입장에서는 최선을 다했으니 사적인 면으로만 보면 참 성격 좋고 의리 넘치는 좋은 사람이지만, 공적으론 자기 가문과 초나라의 장래를 망친 내부의 적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것을 마냥 항백의 탓만 하기엔 무리인게, 항백의 행동들이 최악의 결과로 돌아온 이유는 초나라의 군주인 항우야말로 실책만 반복하며 항백의 도움으로 목숨만 겨우 건진 유방에게 천하의 주도권을 넘겨준 진정한 원흉이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관중은 유방의 차지였는데 항우가 힘으로 멋대로 관중을 차지하고 유방을 벽촌이나 다름없는 파촉 땅으로 보내버린 거라 유방을 달랠 만한 것이 필요하긴 했고, 항우의 대항마 격인 유방은 둘째치더라도 각지에 항우를 싫어하는 사람은 넘쳐나서 제나라의 전영은 스스로 반란을 일으켰고 항우가 제대로 대우해주지 않아 불만이 컸던 팽월은 평생을 항우를 괴롭히며 항우가 유방과의 싸움에서 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

신안대학살 등으로 이미 민심은 항우 곁을 떠나있었던 데다 공신대접을 워낙 박하게 해 항우에게 불만을 품은 인물들이 워낙 많았기에 유방 하나만 어찌저찌 죽인다고 모든게 해결될 일도 아니었고 심지어는 항우의 부하였던 정공조차 팽성대전 당시 개털이 되어 도망치기 바쁜 유방이 자신이 천하를 통일하면 1순위 공신으로 책봉하겠다는 사탕발림에 넘어가 그를 놓아주었을 정도로 항우는 인색했기에 결과적으로 항우는 어찌 됐건 파멸할 위인이었으니 역사에 따른 결과만 보자면 우정과 의리를 지켜서 살아남은 셈이다.

항백과 같이 항복한 나머지 항씨들도 성은 버렸으되 나름 나쁘지 않은 여생을 보내며 후손을 이어갈 수 있게 되기도 했다. 애초에 조카놈이 제멋대로 수많은 학살을 자행 한것도 모자라 군주인 의제까지 시해하고 분봉까지 개판으로 한 시점에서 항우의 파멸은 예정되었으니 항우의 몰락이 항백의 책임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물론 항우도 나중에 가선 제나라와 손을 잡거나 건방진 제스처를 버리고 제후들에게 손내미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등 뭔가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주긴 하는데, 그때는 이미 유방이 형양 · 성고 전역으로 본인 세력권은 유지하면서도 초나라의 군세를 엄청나게 깎아먹었고 타 제후들은 이미 한신의 북벌로 초토화된지 오래였던지라 뭔가를 바꿔보지 못하고 해하 전투에서 첫 패배를 당해 그나마 자랑이던 군사적 위업마저 상실하자 패잔병으로 전락해 쫓기다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결론적으로 한 나라의 원로급 왕족씩이나 돼서 스파이 노릇을 하는게 후대 사람들 입장에선 얄미워 보일지 몰라도, 당대의 상황으로 보나 역사적으로 보나 항백은 의리와 신의를 중요시한 덕에 침몰하는 배에서 살아남아 승자의 편이 돼서 잘 먹고 잘 살다 죽은 인생의 승리자이므로 오히려 최고의 선택을 한 인물이다.

4. 초한지

대체 각 매체에선 항우의 숙부이긴 하지만 역사에 따라 스파이 노릇을 해야하는지라 대부분 항량의 동생으로 설정되어 항량보다 격이 떨어진 대우를 받는다. 그나마 의리를 중시해 장량과의 둘도 없는 미담을 남긴 덕에 우직하고 선량한 인물로 나오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고우영 초한지문정후 초한지에서는 해하 전투의 사면초가 때 항씨의 핏줄을 이어야 한다며 떠났지만 실제 역사의 항전은 성 갈았다. 실제로 초한전쟁 이후 항씨 유명인은 정말 가뭄에 콩 나듯이 찾기가 어렵다. 유씨 유명인은 세상에 차고 넘치는데 말이다...

요코야마 미쓰테루 항우와 유방에선 숙부 대접은 받지만, 서초 건국 이후 그냥 신하나 다름없게 된다. 게다가 정상적인 간언[5]을 해도 항상 폭언만 당한다. 물론 여기까진 여러 중신들과 세트로 욕을 먹은 것이지만 결국 마지막 해하결전에서 큰일이 터진다. 결전 전 이좌거가 귀순해오자 의혹이 들어 망설여도 일단 항적에게 추천했는데 항적은 기뻐하며 중용하지만 이좌거는 초군을 유인할 목적으로 온 첩자였다. 이에 항적은 이좌거 말이라면 무조건 믿던 것은 생각 않고 항전을 처벌하려고 든다. 처벌은 면했지만 항전은 자괴감에 빠지고 결국 이탈로 이어진다.[6]

영화 초한지: 영웅의 부활에서는 유방이 약속한 자식들과의 결혼을 통해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애를 쓰지만 여치의 주도하에 이루어진 토사구팽 작업으로 고향으로 돌아가던 중 암살 당한다. 물론 원래 역사에서는 잘먹고 잘살았다.

5. 삼국지평화

삼국지평화에서는 항적을 배반한 죄를 물어 안량으로 환생하게 된다. 그 후 관우로 환생한 항적에게 끔살.. 원래 삼국지평화가 그냥 민담 모음집이라 큰 고증은 기대 않는 것이 좋다. 당시 사람들은 전혀 동의하지 않을 유방이 쫌팽이라는 평이 이때부터 있던 것으로 보인다.


[1] 그런데 伯이라는 한자는 형제 중에서 첫째가 쓰게 되는데, 항우의 숙부라면 이미 항우의 친부이자 항백의 형이 있어서 문제가 된다.[2] 유태공을 높이 내걸고 협박하자 '너랑 내가 의형제인 것도 잊었나 본데, 네놈 애비를 삶든 말든 알바 아니니 다 끓거든 한 사발 담아서 보내면 잘 먹어주마!'라고 일갈했다.[3] 물론 그때 유태공을 죽였다면 가뜩이나 좋지않은 항우의 민심을 더욱 떨어뜨림은 물론이고, 초군 내에서도 반발이 심했을 것이다. 인질극의 의미가 없어지는 건 물론 손해만 볼테니 항백 입장에서는 조카를 위해서라도 말리는게 최선이었다.[4] 이외에도 공신후자연표에는 없는 도후, 평고후, 현무후는 항씨였었으나 유씨 성을 하사받고 후가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본인 외에도 항씨 집안의 인물들을 꽤 포섭했던 듯. 그야말로 유방에겐 충신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유방 최대의 적대세력 소속, 그것도 그 수장의 혈족이었고 꽤 늦게 합류했음에도 매우 후한 대우를 받았고 황제와 같은 성을 하사받아서 유씨에 합류했을 정도인데, 유방은 항백 덕분에 목숨도 구했고 아버지도 살릴 수 있었다. 심지어 딱히 뭔가 받을 목적으로 구해준 것도 아니다. 그저 있다면 장량에게 받은 은혜를 되갚는다는 것뿐? 어찌되었든 유방 입장에선 항백은 분명히 은인 중의 은인이며 정말 각별히 여겼을 가능성이 높다.[5] 학살하지 말아라, 팽월보단 유방을 중시해라 등[6] 물론 역사적인 사실과는 매우 거리가 멀다. 실제 항우는 항씨성 가진 이들이라면 편애에 가깝게 중용했다. 항전은 유방의 목숨을 구해주고도 항우의 친족이라 처벌은 커녕 계속 우대를 받은 케이스다. 그리고 했다는 간언도 역사적 근거가 없다. 미쓰테루의 만화는 그 베이스가 정사가 아니라 소설이라 역사와 거리가 멀지만, 이걸로 초한전쟁기를 배운 사람이 많아서 종종 역사적 사실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