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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07 12:10:07

하치만

하치만신
八幡神(팔번신)
파일:hachiman01.jpg
무(武)의 신, 국가 평안의 수호신
<colbgcolor=#c72b02> 습합 오진 덴노(応神天皇)
별칭 야하타노카미(八幡神)
하치만대보살(八幡大菩薩)
혼다와케노미코토(誉田別命)
신사 우사 신궁(宇佐神宮)
이와시미즈하치만구(岩清水八幡宮)
츠루가오카하치만구(鶴岡八幡宮)

1. 일본의 신
1.1. 유래1.2. 기타
2. 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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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본의 신

신토에서 섬기는 전쟁과 전사와 군인의 신. 가끔 전쟁 또는 군인, 검법의 신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정확히는 전쟁을 관장하는 신인 동시에 사무라이를 수호하는 군인신이다.

1.1. 유래

하치만 신앙의 총본산은 오이타현 우사시에 있는 우사 신궁(宇佐神宮)이다. 하치만신이 우사 신궁 본전의 제1전을 당당하게 차지하고 있다. 이 신궁은 참배 방식도 남달라서, 두 번 절하고 두 번 박수 치는 보통의 참배와 다르게 두 번 절하고 박수를 네 번 친다. 헤이안 시대 초기까지는 ‘야하타’라고 불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치만신은 우사 신궁의 신직을 담당하던 우사(宇佐)씨, 가라시마(辛島)씨, 오가(大神)씨의 세 가문이 모시던 신격이 융합되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먼저 우사 지역의 지역 호족인 우사씨와 가야계 도래인인 가라시마씨가 초기 하치만 신앙을 형성했다. 이후 치쿠젠국(筑前国)의 오가씨가 오진 덴노진구 황후에 관한 신앙을 여기에 습합하면서 오늘날의 하치만신이 되었다. 우사 신궁의 창건에 대한 기록으로 우사하치만구미륵사건립연기(宇佐八幡宮弥勒寺建立緣起)가 남아 있는데, 가라시마씨가 작성한 문서와 오가씨가 작성한 문서가 포함되어 있지만 우사씨의 전승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오가씨의 기록에 따르면 571년 우사의 오모토산 꼭대기에 오진 덴노의 신령이 출현하자 오가노히키(大神比義)가 모셔와 다카이사(鷹居社)라는 사당을 지었다고 하는데 가라시마씨의 기록에는 그러한 내용이 전혀 없다.
이세신궁과 대신사(大神社), 치쿠시(筑紫)의 스미요시 · 하치만(八幡) 2사 및 카시이궁에 사신을 보내어 재물을 바치고 신라의 무례한 상황을 고했다.[1]
속일본기 권 12 쇼무 덴노 덴표 9년(737) 4월 1일 #
하치만신이 사서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속일본기의 737년 기록이다. 이때부터 하치만신이 국가 수호의 신으로 대접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치만신은 신탁으로 유명하다. 749년에 하치만신은 조금 뜬금없어 보이는 신탁을 내렸다. ’하늘과 땅의 모든 신들을 이끌고 도다이지(東大寺)의 대불을 반드시 완성시키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대불을 완성시켜 불교에 의한 통치를 공고히하려는 쇼무 덴노의 의도가 담긴, 매우 정치적인 행위였다. 하치만신이 직접 도다이지로 행차하는 이벤트를 연 끝에, 하치만신은 불교와 밀접해져 하치만대보살(八幡大菩薩)이라고 불리며 최초의 신불습합 사례가 되었다. 하치만신으로부터 시작된 신불습합은 일본인의 정신세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사건이었다. 쇼무 덴노의 기획은 성공적이었고, 규슈의 지방신이던 하치만신은 국가신으로 지위가 상승하게 되었다.

769년에는 ‘우사하치만구 신탁 사건’이 일어났다. 쇼토쿠 덴노의 총애를 받던 승려 도쿄(道鏡)가 다른 자를 시켜서, “도쿄를 황위에 오르게 하면 천하가 태평할 것이다”라는 하치만신의 신탁을 거짓으로 꾸며 냈다. 그러나 이를 확인하러 우사 신궁에 도착한 칙사 와케노 키요마로(和気清麻呂)가 받은 계시의 내용은 전혀 달랐다. 그 내용은 “황위는 반드시 천황가가 이어야 한다. 무도한 자는 쓸어버려라”였다. 분개한 도쿄는 키요마로를 규슈 남부의 오스미국(大隅国)으로 유배를 보내 버렸다. 내심 도쿄를 천황에 오르게 하고 싶었던 쇼토쿠 덴노는 결국 차기 천황은 쇼토쿠 덴노 자신의 의지에 따라 결정할 것이라고 발표할 수밖에 없었다.[2] 가짜 뉴스를 흘려서 도쿄를 추대하는 분위기를 만들려고 했다가 실패한 것이다.

현대에는 일반적으로는 오진 덴노와 동일시되지만, 이는 후대에 와서 신격이 융합된 것이며 본래는 오이타 지역의 농업신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삼한을 정벌했다는 신공황후의 아들이라고 전해지며, 제국주의 시대에는 일본일본 황실의 수호자로 여겨지며 추앙받았다.

본래 인간이었고, 출가한 적도 없지만, 그의 사후[3] 약 400년이 지난 8세기경 불교 문화가 들어오면서 일본 조정오진 덴노가 죽은 뒤 출가했다는 신묘한 이론을 내놓으며 그가 불가의 신이 되었다고 주장하고, 이후 하치만 신은 하치만 대보살(八幡大菩薩: 팔번대보살)로 불리며 불가의 신격과 융합되었다.

자세한 것은 오진 덴노 항목 참조.

1.2. 기타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2005년 8월 27일, '남묘호렌게쿄 - 한국 창가학회(SGI)를 어떻게 볼 것인가'(352회)를 방영했는데, 창가학회가 아마테라스 및 하치만대보살을 섬긴다고 말하는 대목이 있었다. 방영 후 언론중재위원회의 직권조정결정문을 통해, 이것을 반박했다.
지난 8월 27일 방영된 “남묘호렌게쿄, 한국 SGI를 어떻게 볼 것인가!” 프로그램에 대한 언론중재위원회 직권조정결정문입니다…(중략) 한국SGI는… 천조대신과 팔번대보살은 SGI 신앙의 대상으로 섬기고 있지 않고, 마키구치 창가학회 초대 회장이 대동아전쟁의 책임을 한국 등 피해 국가들에게 있다고 전가한 사실은 없다고 밝혀왔습니다. 이 보도문은 언론중재위원회의 직권조정결정에 따른 것입니다.
언론중재위원회 직권조정결정문

2. 인명

약 14,000명이 성씨로 사용하고 있다. 인원 순위는 1,200위 수준.#


[1] ‘신라의 무례한 상황’이란 속일본기 735년 2월 27일 기사에 신라 사신이 국호를 왕성국(王城國)으로 바꾸었다고 한 일을 말한다. 자세한 것은 일본의 신라 침공 계획을 참고.[2] 여기에 대해서는 여성이었던 쇼토쿠 덴노와 도쿄가 그렇고 그런 사이여서 그랬다는 설, 도쿄가 대물이어서 그랬다는 설(…) 등이 있다.[3] 기록을 그대로 믿는다고 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