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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셉티미우스 헤로디아누스 또는 하이란 1세 (라틴어: Septimius Herodianus, 아람어: Hairan) |
출생 | 미상 |
사망 | 267년 |
아버지 | 오다에나투스 |
이복형제 | 바발라투스, 하이란 2세, 성명 미상의 누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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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버지인 오다에나투스와 함께 팔미라를 공동 통치한 인물로 267년 마에오니우스에게 아버지와 함께 암살당했다.2. 생애
팔미라의 군주였던 오다에나투스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여인 사이의 장남이었다. '셉티미우스 헤로디아누스'로도 일컬어진다. 오다에나투스는 250년대 후반에 당시 17세 또는 18세였던 제노비아와 결혼해 바발라투스, 하이란 2세, 그리고 성명 미상의 딸 셋을 낳았다. 일부 학자들은 하이란 2세가 하이란 1세와 동일 인물이라고 주장하지만, 데이비드 S. 포터 교수는 앞면에 바발라투스의 이름이 새겨지고 뒷면에 '하이란'의 이름이 새겨진 인장이 발견된 것을 볼 때 제노비아의 아들 하이란이 실존했다고 주장한다. 《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는 제노비아의 두 아들의 이름을 헤렌니아누스(Herennianus)와 티몰라우스(Timolaus)라고 했지만, 현대 학계는 두 사람을 가상의 인물 또는 각각 하이란 2세및 바발라투스와 동일인이라고 추정한다.《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에 따르면, 하이란 1세 '헤로디아누스'는 '헤로데스'(Herodes)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그는 파빌리온을 황금 천으로 수놓은 천막 등 페르시아 스타일의 모든 사치품을 가지고 있었으며, 성품은 여성스러웠다고 한다. 신빙성이 떨어지는 역사서의 기술을 그대로 믿을 수는 없지만, 팔미라의 부유함이 상당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일 수도 있다. 또한 《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는 하이란 1세가 페르시아인(사산 왕조)을 상대로 잇따라 승리했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공을 세웠는지는 명시하지 않았다. 아마도 아버지 오다에나투스의 부관으로서 페르시아 원정에 함께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팔미라의 유적지에서 발견된 251년 10월경에 세워진 비문에는 하이란 1세가 팔미라 원로원의 의원이자 팔미라의 총독으로 기록되었으며, 252년의 또다른 비문에는 그의 아버지 오다에나투스가 같은 칭호로 기재되었다. 하이란 1세는 왕중왕(Mlk Mlk dy Mdnh)의 칭호를 팔미라 원로원으로부터 수여받았고, 팔미라의 두움비리(자치지역의 집정관)인 셉티미우스 우로드와 프로쿠레이터(재무관)인 율리우스 아우렐리우스가 하이란 1세의 대관식을 축하하기 위해 비문을 세워 헌납했다. 오다에나투스의 경우엔 그가 왕중왕이 되었음을 입증할 유물이 남아있지 않지만, 아들 하이란 1세가 왕중왕이 되었는데 그는 일개 왕이었을 가능성은 희박하므로, 그 역시 왕중왕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이란 1세는 일찌감치 부왕인 오다에나투스의 후계자로 공인된 것으로 보이나, 267년에 아버지와 함께 암살당했다. 《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는 오다에나투스와 하이란 1세 부자의 암살 사건에 대해 2가지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갈리에누스의 생애>에서는 오다에나투스의 조카 또는 사촌인 마에오니우스가 스키타이인[1]이 로마 제국을 침략하는 것을 막고자 오다에나투스 부자가 출정했을 때 그들을 배신하여 죽였다고 기록했다. <마에오니우스의 생애>에서는 마에오니우스가 오다에나투스를 질투했으며, 하이란 1세가 자기 아들보다 우선 순위에 있는 것을 견딜 수 없었던 제노비아와 동맹을 맺고, 그들을 죽였다고 기술했다.
조시무스는 암살이 오다에나투스의 친구 생일을 축하하는 연회가 개최되던 에메사에서 일어났다고 기술했다. 요안니스 조나라스에 따르면, 오다에나투스가 아들 하이란 1세와 함께 사냥을 나섰을 때 동물을 발견하고, 아들에게 사냥을 맡겼는데 마에오니우스가 창을 먼저 던져 짐승을 죽이자 마에오니우스에게 경고했으나, 마에오니우스가 또다시 같은 행동을 하자 그의 말을 몰수하고 나무에 쇠사슬로 묶었다. 하지만 하이란 1세가 아버지에게 사촌을 용서해달라고 한 덕분에 풀려났으나, 이 일로 원한을 품은 마에오니우스는 연회 석상에서 두 부자가 취한 틈을 타 죽여버렸다고 한다. 안티오키아의 요한에 따르면, 오다에나투스가 왕중왕을 칭하며 로마 제국으로부터 독립할 움직임을 보이는 것에 두려움을 품은 갈리에누스 황제가 암살을 사주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