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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30 14:36:51

오를레앙 공작 필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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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34><colcolor=#ffffff> 오를레앙 공작 필리프
Philippe d'Orléans
이름 필리프 도를레앙
(Philippe d'Orléans)
출생 1336년 7월 1일
프랑스 왕국 벵센
사망 1375년 9월 1일 (향년 39세)
프랑스 왕국 벵센
배우자 프랑스의 블랑슈 (1345년 결혼)
자녀 루이(사생아)[1], 마리(사생아)[2]
아버지 필리프 6세
어머니 부르고뉴의 잔
형제 장 2세, 마리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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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 왕국의 왕족. 초대 오를레앙 공작. 백년 전쟁 시기 형 장 2세의 휘하에서 푸아티에 전투에 참여했다.

2. 생애

1336년 7월 1일 프랑스 왕국 벵센에서 프랑스 국왕 필리프 6세와 부르고뉴 공작 로베르 2세의 딸인 부르고뉴의 잔 사이의 아들로 출생했다. 형으로 장 2세, 누이로 마리[3]가 있었다. 1344년 8살의 나이에 아버지로부터 새로 창설된 공국인 오를레앙 공작에 선임되었다. 1350년 왕위에 오른 형 장 2세로부터 Hôtel de Navarre(현재 파리 6구의 Saint-André-des-Arts 거리에 있는 건축물)를 넘겨받았다. 이 건축물은 나바라 왕국의 여왕 호아나 2세가 장 2세에게 물려준 것이었다.

1356년 9월 19일 형 장 2세가 푸아티에 전투를 치렀을 때 참여해 3번째 부대를 이끌었지만, 제1선과 제2선 부대가 잇따라 와해되는 걸 보고 공포에 질린 나머지 퇴각했다. 1360년 프랑스와 잉글랜드의 평화 협약인 브레티니 조약이 체결되었을 때 잉글랜드에 인질로 보내진 뒤 수년 간 런던에 억류되었다가 1365년에 석방되었다. 그는 1345년 샤를 4세의 딸인 프랑스의 블랑슈 공주와 결혼했지만 자녀를 두지 못했고, 사생아로 루이[4], 마리[5]를 두었다. 1375년 9월 1일 사망했을 때 적법한 자녀가 없었기 때문에, 오를레앙은 왕의 영지로 돌아갔다.


[1] ? ~ 1396, 푸아티에와 보베의 주교[2] ? ~ ?, 보빌리에의 기디언 5세의 아내[3] 1326 ~ 1333, 1332년 브라반트 공작 장 3세의 아들 장과 결혼했으나 이듬해에 사망했다.[4] ? ~ 1396, 푸아티에와 보베의 주교[5] ? ~ ?, 보빌리에의 기디언 5세의 아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