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마길 | ||
도로명번호 | ||
4100520 | ||
다국어 표기 | ||
영어 | Pima-gil | |
한자 | 避馬街 | |
중국어 | 避马街 | |
일본어 | ピマ街 | |
기점 | ||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진동 광화문D타워 옆 | ||
종점 | ||
서울특별시 종로구 공평동 SC제일은행 본점 옆 | ||
연장 | ||
317m | ||
관리 | ||
서울시설공단 | ||
왕복 차로 수 | ||
1차로[1] | ||
주요 경유지 | ||
광화문D타워 ↔ 종로르메이에르오피스텔 ↔ 그랑서울 |
피맛골의 재개발 전 과거 모습 |
피맛골의 재개발 이후 현재 모습 |
1. 개요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가에서 종로6가를 잇는 종로의 뒷골목이자 도로이다. 행정상 도로명은 종로1가 부분만 피마길이나, 실질적으로는 종로와 평행을 이루면서 그 배후에 뻗어 있는 이면 도로, 즉 뒷골목을 피맛골이라고 불린다. 또한 아래 역사의 설명에서도 나오지만 목적이나 유래 자체가 서민들이 양반이나 왕의 행차를 피하기 위해 만들어진 길이다 보니 경복궁 이외에 창덕궁[2] 주변이나 사대문에서 궁으로 이어지는 대로 주변의 골목길등도 자연스레 피마길이 형성되었다.2. 역사
조선 시대 말을 타고 배복을 요구하며 종로를 행차하는 양반들을 피하기 위해[3] 서민들이 이 길을 걸었는데, 여기에서 '말을 피하는 길'이라는 이름의 피맛골(피마 避馬+골)이라는 지명이 유래했다. 참고로 피마길은 민본사상을 외친 정도전이 한양 도성을 설계할때 백성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만든 길이라고 한다.자연스럽게 서민들을 위한 주점, 음식점들이 피맛골을 중심으로 형성되었고, 근대화와 서울 도심의 팽창을 거친 21세기에도 그 명맥은 여전히 이어져 왔다. 특히 청진동 쪽의 해장국 음식점들이 매우 유명해서 종로 인근 사무실의 직장인들이 이곳에서 식사를 해결하고는 했다.
3. 개발 논란
피맛골은 서울에서 '서민적인 거리'를 꼽으라면 가장 먼저 꼽히는 곳이었다. 허나 2009년 청진동 재개발로 인해 이 피맛골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고, 이런 명소인 피맛골을 밀어버리고 재개발하는 것에 대해 많은 반대여론이 있었다. 또 이 일들이 오세훈 전 서울특별시장 재임시기에 일어난 일[4]이다 보니 당시 오 시장이 추진하던 디자인서울 사업과 관련되어 디자인서울 정책을 비판할 때 대표 사례로 거론되기도 했다.결국 우여곡절 끝에 종로3가 등의 일부 구간은 철거당하지 않고 그대로 남았다. 종로구에서는 보행환경 개선 사업 등을 거쳐 이 구간을 특화 거리로 조성하려는 계획을 2012년 6월 발표하였다.기사 하지만 종로1가 인근의 뒷골목은 싹 헐렸고 그 자리에는 르메이에르[5]라는 고층빌딩이 들어섰다.
그리고 과거 피맛골에서 성업하던 음식점들은 이 르메이에르로 자리를 옮겼는데,
보다시피 르메이에르 건물 통로에 '피맛골'이라는 표지판만 덜렁 달려있는 데다, 골목길의 느낌은 온데간데없고 평범한 상가 건물에 수십 년 전통이라는 맛집들이 들어서 있는, 과거 피맛골과는 완전히 이질적인 길목이 되어 아쉽다는 사람들이 많다.
단, 피맛골이라는 공간을 그동안 종로 1~3가로만 한정하다보니 이때 밀리면서 없어졌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종로1가서부터 동대문까지 쭉 이어지는 종로 대로 인근의 모든 골목이 피맛골이었기 때문에 종로4가 이후에 있는 피맛골은 그 이름이 사라졌을 뿐 여전히 과거 서울 구도심의 모습을 유지한 채 살아남아 있고 서울의 진짜 딥한 역사를 보고 싶어하는 외국인들이 오히려 이곳을 힙지로보다도 더 찾을 정도라고 한다. ###.
4. 여담
시위나 데모 같은 일이 벌어졌을 때 경찰이 대로를 길막하면 사람들이 이 피맛골을 이용하기도 했는데, 때문에 상술된 피맛골 재개발 사업을 프랑스 남작 조르주외젠 오스만이 1850년대에 진행한 파리 구시가지 정비사업에 빗대는 사람들도 있었다. 정비되기 이전의 파리도 옛날 피맛골처럼 골목길이 많았는데, 이는 시위대들이 잡동사니와 보도블럭 등을 쌓아 바리케이트를 만들기 쉬운 환경이었다. 그런데 오스망 남작의 정비사업으로 인해 대로가 늘어나면서 시위를 저지하는 효과가 생기게 된 것이다. 시위를 차단하려는 나폴레옹 3세의 의중을 반영한 산물이기 때문.과거엔 한국에서 좀 살았다는(?) 외국인들에게 숨겨진 명소로 꼽혔고, 해장국이나 생선구이를 먹으러 오는 관광객들도 꽤 있었다고 한다.
이 피맛골을 배경으로 한 피맛골 연가라는 창작 뮤지컬이 있다.
2021년 6월 29일 탑골공원 인근 '공평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부지'인 인사동 79번지에서 15~16세기 조선 전기에 사용된 갑인자로 추정되는 한자 활자 1000여 점과 한글 활자 600여 점이 출토됐다. 제작연대를 알 수 있는 출토품들 가운데 가장 시기가 늦은 유물이 1588년을 뜻하는 만력 무자년 간기가 새겨진 소승자총통이어서 일러도 1588년 이후에 묻힌 것이 확실하다. 인사동 피맛골 재개발 지구 유적을 발굴하던 수도문물연구원 오경택 연구원장은 “1592년 발발한 임진왜란과 시기적으로 가까워 당시 전란을 맞으면서 유물들을 항아리에 담아 땅속에 묻어두고 피난을 갔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했다.#1 #2 #3 #4
피맛골에 새로 지어진 상점가에는 식객(만화)의 라이센스를 얻어 만든 식객 실존 식당 프랜차이즈를 구현한 푸드코트인 식객촌이 있다.
[1] 재개발이 완료되어 보도전용이며, 골목의 모습도 거의 다 사라졌다.[2] 임진왜란 이후 소실된 경복궁은 흥선대원군때 재건하기 이전까지 창덕궁이 정궁이었다. 따라서 역사적으로도 경복궁 주변보다 창덕궁 주변이 더 오랜 기간 자연스레 피마길이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3] 현대 기준으로 비유하자면 대통령 모터케이드(교통통제)의 불편함을 피하기 위한 것과 심적으로 유사하다.[4] 후임 시장이던 박원순이 사망하면서 이후 보궐선거와 지방선거에서 연거푸 재선되어 2024년 현재도 서울시장으로 있다.[5] 당연히 건설사 르메이에르에서 지은 것. 뜻은 프랑스어로 '가장 좋은' 이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