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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폰 바이에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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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에른 왕국 왕위 요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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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DDEA5><colcolor=#000> 바이에른 공작
프란츠 폰 바이에른
Franz, Herzog von Bayern
파일:franz-the-duke-of-bavaria-birthday-picture-01.jpg
이름 프란츠 보나벤투라 아달베르트 마리아 폰 바이에른
(Franz Bonaventura Adalbert Maria von Bayern)
출생 1933년 7월 14일 ([age(1933-07-14)]세)
나치 독일 뮌헨
아버지 바이에른 공작 알브레히트
어머니 트라코스티안의 마리아 드라스코비치 여백작
형제 마리 가브리엘레, 마리 샤를로테, 막스
종교 가톨릭

1. 개요2. 바이에른 왕위 요구자 계승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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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바에에른의 왕위 요구자. 바이에른 군주제 복고에 진심이었던 증조할아버지, 할아버지, 아버지와는 달리 군주제 폐지 후에 태어난 첫 왕위 요구자이다. 1980년부터 토마스 그라인발트라는 남성과 동거하고 있기에 성소수자라는 설이 있고, 그래서 결혼하지도 않고 슬하에 자녀도 없다.

대신 미술, 음악, 건축 등 예술에 막대한 경제적 지원을 하고 후원사업도 활발히 하고 있기에 세간의 존경을 받고 있다. 가톨릭 교회에도 후원을 많이 하여 가톨릭 교회와도 연이 깊다. 거기다 프로이센호엔촐레른 가문은 대체로 나치에 부정적이긴 했지만 적극적으로 반나치 활동을 하지 않았고 빌헬름 황태자는 나치와의 유착 의혹이 있는 반면, 바이에른의 비텔스바흐 가문은 비록 왕정복고를 주장하며 공화국을 부정적으로 보았음에도 처음부터 반나치 노선을 뚜렷하게 잡고 적극적으로 반나치 활동을 했기에 호엔촐레른 가문보다 더 존경받는 면도 있다.

본인은 전혀 관심없어 하지만, 영국 왕위를 요구하는 자코바이트 계승권자이기도 하다. 자코바이트 지지자들에게는 프랜시스 2세로 불려지고 있다. 개신교계(성공회)인 영국 왕실과 가톨릭계인 비텔스바흐 가문 사이에선 종교 개혁 이후 오랫동안 직접적인 통혼은 없었지만 잉글랜드 국왕 찰스 1세의 막내딸인 헨리에타 앤이 프랑스의 오를레앙 공작 필리프 1세에게 시집갔고, 헨리에타 앤과 필리프 1세의 딸 안 마리(1669 ~ 1726)가 이탈리아 사보이아 공국비토리오 아메데오 2세와 결혼하게 되어 이탈리아로 갔다가 사보이아 직계가 끊기자[1] 사보이아 본가의 여계[2]를 통해 모데나 공가인 합스부르크-에스테 가문으로 갔고 혼맥을 통해 다시 비텔스바흐 가문으로 오게 되었다. 하지만 상술했듯 프란츠는 어디까지나 가설일 뿐 자신들과는 관련이 없다고 철저하게 선을 긋고 있다.

2. 바이에른 왕위 요구자 계승권

상술하듯 프란츠 본인은 결혼을 하지 않았고 자녀도 없어서, 프란츠 본인 사후엔 남동생 막스가 바이에른 가문의 수장 자리를 물려받는다. 허나 막스 역시 딸만 다섯인지라[3] 막스 사후에는 생존 중인 집안 사람들 중 프란츠와 막스와 촌수가 가장 가까운 6촌동생 루이트폴트 폰 바이에른이 수장 자리를 물려받게 된다.


[1] 이탈리아 통일을 달성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는 사보이아카리냐노 분가이다. 부왕 카를로 알베르토가 자녀가 없던 본가의 카를로 펠리체의 뒤를 이어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 국왕으로 즉위했다.[2]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1세의 장녀 모데나 공작 부인 마리아 베아트리체.[3] 장녀가 리히텐슈타인 공세자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