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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6 21:51:57

페트로 포로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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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제5대 대통령
페트로 포로셴코
Петро́ Пороше́нко | Petro Poroshenko
파일:페트로 포로셴코 대통령.jpg
본명 페트로 올렉시요비치 포로셴코
Петро́ Олексі́йович Пороше́нко
Petro Oleksiyovych Poroshenko
출생 1965년 9월 26일 ([age(1965-09-26)]세)
소련 우크라이나 SSR 오데사주 볼그라드
(現 우크라이나 오데사주 볼흐라드)
재임기간 제5대 대통령
2014년 6월 7일 ~ 2019년 5월 20일
서명
파일:페트로 포로셴코 서명.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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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2f3f60><colcolor=#ffd500> 부모 아버지 올렉시 이바노비치 포로셴코
어머니 예브게니아 세르게예브나 포로셴코[1]
배우자 마리나 아나톨리예브나 포로셴코
자녀 장남 올렉시 (1985년생)[2]
차남 미하일 (2001년생)
쌍둥이 딸 예브게니아, 올렉산드르 (2000년생)
학력 키예프 국립대학교 (경제학 / 준석사)[3]
종교 정교회 (우크라이나 정교회)
신장 185cm
소속 정당
의원 선수 5
의원 대수 3, 4, 5, 7, 9(現)
복무 소비에트 지상군
1984년 ~ 1986년
우크라이나군
2014년 ~ 2019년
최종 계급 소령 (소비에트 지상군) }}}}}}}}}

1. 개요2. 약력3. 성향4. 생애5. 소속 정당6. 선거 이력7. 어록8. 별명과 밈9.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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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우크라이나의 제5대 대통령.

동유럽 일대를 주름 잡은 거대 제과 회사 '로셴'의 창업주로, 회장을 맡아 경영에 전념하다 정치에 입문한 뒤 지지자들을 규합한 신당 '페트로 포로셴코 블록(현 '유럽연대')'을 창당했으며 이들의 지지를 받아 2014년 대통령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우크라이나 정치권에서 대표적인 중도주의 성향의 지도자 중 한 명[4]이며, 친유럽·친서방 진영에 속하는 정치인으로 활동했다.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군대를 개혁하고 우크라이나 정교회의 독립을 이룩하였으며, 우크라이나어 진흥책을 펼치는 등 자국의 민족 정체성과 주권 독립성을 강화하는 정책들을 추진하였다. 특히 군사력을 육성한 안보 개혁은 훗날 2022년 러시아의 침공으로 인한 전쟁 국면에서 상당히 선전하는 데 매우 큰 도움이 되어 "우크라이나를 구한 정책이었다"는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재임 내내 동부 국경지대 친러 세력의 분쟁 조장과 러시아의 위협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결정적으로 정치권의 선진화를 막는 고질적 문제인 부정부패를 척결하는 데는 끝내 실패했다. 올리가르히 출신인 자신에게도 부정부패 혐의가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는데, 결국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채 2019년 대통령 선거에서 '반부패'를 외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에게 패해 재선에 실패하면서 단임 대통령으로 퇴임했다.

낙선 이후 우크라이나 의회(최고 라다) 의원으로 당선되어 정치 활동을 이어갔지만 부패 청산을 내세운 후임 젤렌스키 대통령과 갈등을 빚었고, 자신에 대한 부패 수사를 "정치적 탄압"으로 규정하고 후임 정부를 맹렬히 비난하다 체포를 피해 해외로 망명하였다. 그런데 러시아의 침공이 머지 않았다는 전쟁 위기론이 불거지던 2022년 1월 돌연 자발적으로 귀국하더니, 얼마 안 가 실제로 침략해온 러시아와의 전쟁을 맞이하여 젤렌스키 대통령과 함께 '피신 없는 결사항전'을 선언하고 민병대 조직과 물자 구매 등으로 전선에서 사력을 다해 싸우며 재평가받고 있다.

2. 약력

3. 성향

키이우와 드니프로에서 시위는 대체로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규모가 큰 유대인 집단의 지지를 받았다. 마이단 광장에서 자위 대대를 조직한 사람들 가운데는 이스라엘군의 재향군인이 한 명 있었는데, 그는 키이우에서 자기 밑에 있던 사람들이 자신을 "형제"라고 불렀다고 기억한다. 1월 마이단에서 처음 발생한 사망자 두 명은 아르메니아계인 세르게이 니호얀과 벨라루스 국적인 미하일 지즈넵스키였다. 2월에 벌어진 저격병 학살에서 사망한 사람들은 우크라이나 자체와 시위의 다양성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희생자 가운데는 우크라이나 동북단에 자리한 하르키우 출신으로 러시아어를 쓰는 환경 운동가 예브헨 코틀례프도 있었다. 이 학살에서 무장하지 않은 우크라이나 유대인 세 명이 살해됐는데, 그중 한 명은 붉은 군대 재향 군인이었다. 무슬림 난민 가정 출신으로 이중 언어를 구사하는 젊은이가 유럽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혁명에서 우크라이나, 러시아, 벨라루스, 아르메니아, 폴란드, 유대 문화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대통령 권한 대행과 임시 정부 성원들은 우파 민족주의자는커녕 대개 우크라이나 동부 출신의 러시아어 사용자였다. 대통령 권한 대행으로 뽑힌 국회의장은 우크라이나 동남부 출신의 침례교 목사였다. 이행기 동안 국방부, 내무부, 국가보안부 등이 러시아어 사용자들 손에 넘어갔다. 국방장관 직무 대행은 집시계였다. 내무장관은 아르메니아인과 러시아인의 피가 반반 섞인 사람이었다. 부총리 두 명 중 한 명은 유대인이었다. 러시아의 침공 위협을 받은 동남부주인 드니프로페트로우스크의 주지사 역시 유대인이었다. 2014년 봄 임시 정부 각료 열여덟 명 가운데 세 명이 민족주의 정당인 자유당 소속이었지만, 어떤 의미에서 보더라도 이 정부는 우파 정부가 아니었다.

쿠데타를 실행하는 사람들은 행정부의 권한 축소를 요구하지 않지만, 우크라이나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졌다. 쿠데타를 벌이는 이들은 권력을 양도하기 위해 선거를 요구하는 법이 없지만, 우크라이나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났다. 2014년 5월 25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는 우크라이나 남부 출신의 중도파 러시아어 사용자인 페트로 포로셴코가 승리했다. 초콜릿 사업가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당시 쿠데타 시도 같은 게 있었다면, 그것은 우크라이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해킹해서 극우파 정치인이 승리했다고 선언하려 한 러시아의 시도와 그 선언을 그대로 내보낸 러시아 방송의 발표였다.

2014년 5월, 극우파 정치인 두 명이 우크라이나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는데, 각각 전체 투표의 1퍼센트도 얻지 못했다. 둘 다 유대교 정강을 내건 유대인 후보보다 더 적은 표를 얻었다. 승자인 포로셴코는 계속해서 총선을 요구했고, 9월에 총선이 실시되었다. 이번에도 역시 쿠데타에서 흔히 예상할 수 있는 사태 진행과 정반대였고, 또한 우크라이나에서 극우파의 인기는 매우 제한적이었다.우크라이나의 우파 정당, 즉 자유당과 준군사 집단 라이트섹터를 바탕으로 생겨난 신생 정당 어느 쪽도 의회에 진출하는 데 필요한 기준선인 5퍼센트를 넘지 못했다.
티머시 스나이더, 『가짜 민주주의가 온다』(유강은 옮김), 서울 : 부키, 2019. p.206~208
후임자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현 대통령과 더불어 우크라이나의 대표적인 중도주의 지도자 중 한 명이다.

젤렌스키나 포로셴코나 중도파 정치인들이라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협력이 가능할 정도로 정치노선의 차이는 적다.[5][6] 2019년 대선 당시 포로셴코 대 젤렌스키의 대결도 '친러 대 반러'가 아니라 '부패 대 반부패'(젤렌스키 지지자)/'포퓰리즘 대 반포퓰리즘'(포로셴코 지지자)의 구도였고, 젤렌스키가 이긴 것이다. 심지어 한국의 조선일보도 2014년 포로셴코가 당선될 당시에는 그를 중도주의 정치인이라 보도했을 정도다. # 하지만 동유럽 정세에 특별한 관심이 없는 이들에게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전까지 이 점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

4. 생애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페트로 포로셴코/생애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5.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우크라이나 사회민주당(통합) 1998 - 2000 -

2000 - 2001 -
연대[7] 2001 - 2005 -
[[우리의 우크라이나|
우리의 우크라이나
]]
2005 - 2010 -


[[무소속(정치)|
무소속
]]
2010 - 2019 -

2019 - 현재 -

6. 선거 이력

<rowcolor=#fff>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1차 득표수 (득표율) 2차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98 제3대 우크라이나 국회의원 선거 12(빈니차)[8]

[[무소속(정치)|
무소속
]]
18,809 (17.44%) - 당선 (1위) 초선
2002 제4대 우크라이나 국회의원 선거 우리 우크라이나 53,058 (49.99%) 재선
2006 제5대 우크라이나 국회의원 선거 ? (?%) 3선
2012 제7대 우크라이나 국회의원 선거

[[무소속(정치)|
무소속
]]
73,493 (71.52%) 4선
2014 제5대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 우크라이나 9,857,308 (54.70%) -[9] 초선
2019 제6대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 3,014,609 (15.95%) 4,522,320 (24.45%) 낙선 (2위)
2019 제9대 우크라이나 국회의원 선거 비례대표
1,184,620 (8.10%) - 당선(1번) 5선

7. 어록

CNN 앵커: 우크라이나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 같습니까? (How long, do you think you can hold out?)
페트로 포로셴코: Forever(영원히).
CNN, 개전 초 2월 25일 인터뷰에서, 8:53부터.
MSNBC 앵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군을 몰아내고 전쟁을 끝낼 수 있도록 도우려면, 서방 세계에서 무엇을 제공해야 하겠습니까?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세가지입니다. 무기, 무기, 그리고 무기. (Weapons, weapons, and weapons.)
첫번째 무기, 전차, 전투기, 대전차 체계, 대공 체계 등 국토 방어에 필요한 공세 무기입니다.
두번째 무기, 러시아의 경제를 완전히 무너뜨릴 더 강력한 경제 제제입니다.
세번째 무기, 러시아의 완전한 외교적 고립입니다.
MSNBC 4월 6일자 인터뷰에서, 5:47부터.
MSNBC 앵커: 포로셴코 대통령님, 러시아의 라브로프 외무부장관이 핵전쟁의 위험이 임박했다고 말한 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페트로 포로셴코: 제가 알기로 전세계를 핵전쟁으로 직접 위협한 나라는 둘 밖에 없습니다. 북한러시아입니다. (I know only two countries in the world which threatened the world with nuclear war. The name of these countries is North Korea, and Russia.)
페트로 포로셴코: 우리는 지금 러시아가 북한으로 변화하는 단계를 하나씩 지켜보고 있습니다. (We now observe the step-by-step transformation (of) Russia into North Korea.)
MSNBC 4월 27일자 인터뷰에서, 2:24부터.

8. 별명과 밈


국내 커뮤니티 유저들 사이에서는 상술한 개연성이 떨어지는 이중적인 행보에 대해 1회차에선 부패한 정치인으로만 살다가 나라가 망해서 죽고, 2회차에선 청렴한 정치인으로 개혁을 주도하다가 러시아의 손에 암살당하고, 3회차에서는 적당히 부패한 척하며 자국의 군 개혁을 이끌었지만 본인의 외교력만으로는 해외 지원이 모자라 패전하자, 4회차에서는 3회차에서 했던 준비와 더불어 악역을 자처하고 해외 지원을 이끌어낼 수 있는 젤렌스키를 내세워 조국을 지키고 있는 거라는 회귀물설(...)을 내놓기도 한다.포로셴코가 되었다

은하영웅전설에 나오는 자유행성동맹 정치인 월터 아일랜즈와 비슷하다는 얘기도 있다. 마찬가지로 방산쪽에서 비리를 챙겨먹은 무능한 부패정치인이었다가 전쟁이 터지자 뜬금없이 조국에 끝까지 남아 결사항전과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아 평가가 떡상한 인물이다.

9. 기타



[1] 혼전성은 그리고르추크[2] 부친의 지역구였던 제12선거구를 물려받아 2014년부터 2019년까지 우크라이나 최고 라다 의원을 역임했다.[3] 구소련 당시 기본 학위는 준석사 내지 석사부터였다.[4] 티머시 스나이더, 『가짜 민주주의가 온다』 p. 207~208 내용 중.[5] 단적인 예로 포로셴코, 젤렌스키는 둘 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EU 가입을 지지할 정도로 친서방 노선을 주장한다.[6] 따지고보면 푸틴과 러시아가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을 강행한 이유들 중 하나도 우크라이나 정치가 친서방 우세의 구도로 굳어진 점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서 더 이상 선거로 친러시아 세력이 우크라이나의 정권을 잡을 가능성이 낮아지니, 아예 자기들이 우크라이나를 무력으로 장악해서 친러시아 괴뢰국으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심산이었던 것이다.[7] 유럽연대의 전신.[8] 참고로 구소련권에서 국회의원 선거구를 보통은 지역명 없이 숫자로만 구분하며, 이는 우크라이나는 물론이고 러시아, 발트 3국, 몰도바, 아르메니아 등도 동일하다.[9] 과반 득표로 결선투표 미실시[10] 심지어 가장 큰 부정부패였던 키이우-오데사 고속도로 사업이 그때 사기친 것으로 인해 오히려 러시아의 진격이 저지되어 "사실 부정부패도 러시아의 정치적, 경제적 침략을 저지하기위하여 그랬다." 는 터무니 없는 가설이 돌기도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