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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트리어트 미사일/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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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걸프 전쟁
2.1. 1991년 요격 실패 사고
3. 이라크 전쟁4. 2014년 7월 가자지구 분쟁5. 예멘 내전6.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7. 기타 기록

1. 개요

패트리어트 미사일의 실전 기록을 정리한 문서.

2. 걸프 전쟁

2.1. 1991년 요격 실패 사고

패트리어트 미사일은 1991년 2월 25일 걸프전 당시 소프트웨어 버그로 요격에 실패한 사고가 있는데, 군사용 컴퓨터와 관련된 사고사례중에 매우 유명한 사고 사례이다.

요격에 실패한 원인은 컴퓨터에서 실수를 표기할 때 발생하는 필연적으로 발생한 오차 때문이다. 당시 시점의 패트리어트는 24비트 부동소수점 계산으로 0.1초 주기로 시간을 측정하고 있었는데, 컴퓨터 연산에서 사용하는 이진법으로는 0.1을 깔끔하게 표기할 수 없어서 일정 자릿수 이하를 잘라버리고 반올림하여 계산하기에 오차가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장비를 너무 오래 기동하면 발생한 오차가 누적될 수밖에 없다는 것인데, 당시의 사고 상황에서는 100시간 연속으로 가동하여 0.3433초의 오차가 발생했고, 누적된 오차로 거리 측정이 687미터 가량 잘못 되어 요격이 불가능한 상황이 발생해버린 것.

PAC-2는 몇시간마다 한번씩 재부팅 해줘야 하는데 문젠 당시 재부팅을 안했다고 한다.

3. 이라크 전쟁

이라크 전쟁 당시 공화국 수비대가 전개중인 미군에게 발사한 이라크의 스커드 미사일 개량형인 아바빌 미사일을 PAC-2 GEM과 PAC-3가 성공적으로 요격한 전력이 있다. #

4. 2014년 7월 가자지구 분쟁

2014년 7월 가자지구 분쟁 당시 이스라엘 패트리어트 미사일이 하마스에서 날린 무인기 두 대를 격추했다고 한다. 패트리어트 미사일의 사상 최초 대항공기 실전 기록이다.

5. 예멘 내전

예멘 내전에서 사우디아라비아군이 소유한 PAC-3가 후티의 탄도탄 요격을 위해 활약중이다. 레이시온의 발표에 따르면 2015년 이후로 100발 이상의 탄도미사일을 요격해냈다고 한다.

3월 25~26일 사이 밤에 발사된 후티 반군의 단거리 탄도미사일인 보르칸-2H를 요격하기 위해서 사우디 방공부대가 PAC-2를 발사했으나 한기가 오작동으로 민간인 거주지역에 떨어지고 한기는 공중폭발하는 사고가 있었다. #

2017년 12월 4월, 뉴욕타임즈#는 공식 발표와 달리 패트리어트가 예멘 후티 반군이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에 발사한 탄도 미사일을 격추하지 못했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SNS에 게시된 사진과 동영상을 미사일 전문가들로 구성된 연구팀이 분석한 결과 사우디 방위포대가 들어오는 미사일에 5발을 발사했으나 격추에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2024년에는 사우디아라비아 방공군 소속 패트리어트가 후티에서 날린 탄도 미사일 6발을 48초 만에 격추하는데 성공했다.#

6.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우크라이나군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 국가들이 지원해준 패트리어트를 투입했다.

2023년 5월 16일, 킨잘 미사일을 요격하기 위해 패트리어트 미사일 30발이 발사되었으나, 요격에 실패하고 패트리어트 발사대 2대가 폭발하는 영상이 공개되었다. 영상 시작부터 2분 2초까지 30발의 패트리어트 미사일이 발사되었으나, 요격에 실패하고 2분 13초 경 패트리어트 발사대 2대가 손상되는 모습이 선명하게 찍혔다.#[1] 그러나 미 국방부의 관리들은 경미한 손상이었다고 일축했다. 해당 발사대들은 수리 후 재배치되었다.#

2024년 3월 8일 발사대 2대가 이동 중 9K720 이스칸데르 미사일 공격을 받아 완파되는 것이라 주장되는 영상이 촬영됐다. 러시아 국방부에서는 이례적이게도 이것이 패트리어트 미사일이 아닌 S-300 포대라고 주장했고 ISW는 단순한 물자 수송 트럭이라고 분석하여 초반에는 패트리어트가 아니라는 설이 많았으며, 이후 우크라이나 국방부 측은 이에 대해 코멘트하지 않았다. 나중에 추가정보들이 나오면서 파괴가 확인되었다.

또한 순항고도가 20km나 되는 1960년대 미사일인 Kh-22 부랴를 2023년 12월 29일까지 단 한번도 잡아내지 못했다.# 이는 우크라이나가 가진 기존 방공시스템 전부가 해당하는 문제이며, 덕분에 우크라이나는 여지껏 발사된 부랴를 죄다 손도 쓰지 못하고 얻어맞았다고 한다. 최초의 격추기록은 2024년 4월에야 보고됐다.#

7. 기타 기록



[1] 이 영상을 올린 현지인은 구속되었고 이후 폭발영상을 올린 것에 대해 공개 사과하는 영상이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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