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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3 22:40:48

패트리샤 내치불

<colbgcolor=#D2DBC3><colcolor=#000000> 제2대 버마의 마운트배튼 여백작
패트리샤 내치불
Patricia Knatchbull, 2nd Countess Mountbatten of Burma
파일:22ecf9_20848f3b902e431393cfedb306395cdd~mv2.webp
이름 패트리샤 에드위나 빅토리아 내치불[1]
(Patricia Edwina Victoria Knatchbull)
출생 1924년 2월 14일
영국 잉글랜드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망 2017년 6월 13일 (향년 93세)
영국 잉글랜드 켄트주 머샴
배우자 제7대 브라본 남작 존 내치불 (1946년 결혼 / 2005년 사망)
자녀 노턴, 마이클존, 앤서니, 조아나, 아만다, 필립, 니콜라스, 티머시
아버지 제1대 버마의 마운트배튼 백작 루이 마운트배튼
어머니 에드위나 애슐리
형제 파멜라
종교 성공회
1. 개요2. 생애
2.1. 어린 시절2.2. 결혼2.3. 말년과 사망
3. 가족관계
3.1. 자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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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국귀족. 제1대 버마 백작 루이 마운트배튼의 장녀다. 필립 마운트배튼의 외사촌동생이고 현 영국 국왕 찰스 3세진외당고모[2]다. 찰스 3세의 대모였다.

2. 생애

2.1. 어린 시절

파일:루이 마운트배튼 가족들.jpg
왼쪽부터 아버지 루이 마운트배튼, 어머니 에드위나, 패트리샤 본인, 동생 파멜라.

1924년 영국 잉글랜드 런던 웨스트민스터에서 루이 마운트배튼과 에드위나 애슐리의 2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밑에 5살 아래 여동생 파멜라 힉스가 있다. 페트리샤의 가문 마운트배튼 가문은 본래 독일의 바텐베르크 가문이였고 헤센의 알렉산더 공자율리아 하우케귀천상혼하면서 파생된 가문이었다.[3]

1943년 19세의 나이로 여성 왕립해군에 입대했으며 영국의 연합 작전 기지에서 복무했다. 이후 1945년에 3등 장교로 임명되어 동남아시아의 최고 연합군 사령부에서 복무했다.[4]

2.2. 결혼

파일:패트리샤와 존의 결혼식.jpg
아버지 루이 마운트배튼의 보좌관이자 제5대 브라본 남작 마이클 내치불(1895 ~ 1939)의 차남인 제7대 브라본 남작 존 내치불[5]과 결혼했다.[6]

부부 관계가 굉장히 좋았는지 슬하에 6남 2녀라는 많은 자녀들을 두었다.[7]

2.3. 말년과 사망

1974년 패트리샤 공주의 캐나다 경보병 대령으로 임명되었다.[8] 마침 대령으로 임명된 보병 연대의 이름도 본인과 똑같은 패트리샤였다.

1979년 IRA의 테러로 아버지 루이 마운트배튼, 오남 니콜라스 내치불, 시어머니 도린 내치불이 사망하는 비극을 겪었다. 아버지가 사망하고 그의 작위를 계승해서 제2대 버마의 마운트배튼 여백작이 되었고 그 해에 장남 노턴 내치불의 결혼으로 시어머니도 되었다.[9]

파일:패트리샤와 파멜라.jpg
말년의 모습. 앉아있는 사람이 패트리샤, 서 있는 사람이 동생 파멜라. 테러의 피해자였던 본인도 거동이 불편해졌고, 파편들이 얼굴에 튀어 흉터가 점처럼 남아 있었다. 그러나 해군 제독이었던 아버지의 기개를 물려받아 일체 내색하지 않고 왕실과 지역 사회와 관련된 여러 사업에 기여했다.

이후 향년 93세의 나이로 영국 잉글랜드 켄트주 머샴에 있는 자택에서 사망했다. 장례식은 2017년 6월 27일 나이츠브리지 세인트 폴 교회에서 거행되었고, 필립 마운트배튼,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부부, 찰스 왕세자, 기타 왕실의 구성원들이 참석했다.

3. 가족관계

3.1. 자녀

자녀 이름 출생 사망 배우자/자녀
1남 제3대 버마의 마운트배튼 백작 노턴 내치불[10]
(Norton Knatchbull, 3rd Earl Mountbatten of Burma)
1947년 10월 8일 페넬로페 이스트우드
슬하 1남 2녀[11]
2남 아너러블 마이클존 내치불
(Hon. Michael-John Knatchbull)
1950년 5월 24일 멜리사 오웬
슬하 1녀
수잔 코츠
슬하 1녀
3남 아너러블 앤서니 내치불[12]
(Hon. Anthony Knatchbull)
1952년 4월 6일 1952년 4월 6일
1녀 레이디 조아나 내치불
(Lady Joanna Knatchbull)
1955년 3월 5일 위베르 뒤 브뢰유
슬하 1녀
아즈리엘 주커만
슬하 1남
2녀 레이디 아만다 내치불
(Lady Amanda Knatchbull)
1957년 6월 26일 찰스 엘링워스
슬하 3남
4남 아너러블 필립 내치불
(Hon. Philip Knatchbull)
1961년 12월 2일 아틀란타 코완
슬하 2녀
웬디 리치
슬하 2남
5남 아너러블 니콜라스 내치불[13]
(Hon. Nicholas Knatchbull)
1964년 11월 18일 1979년 8월 27일
6남 아너러블 티머시 내치불[14]
(Hon. Timothy Knatchbull)
1964년 11월 18일 이사벨라 노먼
슬하 2남 3녀

장남 노턴의 아내이자 패트리샤의 며느리인 페넬로페 내치불(일명 페니)[15]필립 마운트배튼의 당조카 며느리가 된다. 페니는 생전 필립 공의 특별한 총애를 입어 다른 친족들에 비해 여러 우대를 받았고 엘리자베스 2세와의 관계도 좋았다고 알려져 있다.[16] 실제로 코로나19 하에 치러진 필립 공의 장례식에도 친족 중 유일하게 초대되었다.

차녀 아만다(1957년생)는 과거 찰스 3세의 신부감으로 거론되기도 했는데 육촌 관계인 두 사람은 수 년 동안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 그리고 마침내 1979년[17] 여름에 찰스가 아만다에게 청혼했지만[18] 그녀는 청혼을 거절했다.

이후 찰스는 다이애나 스펜서와 결혼하고 아만다는 소설가이자 부동산 사업가인 찰스 엘링워스와 결혼하게 되었다.

[1] 혼전 성은 마운트배튼(Mountbatten)이다.[2] 아버지의 외종자매[3] 패트리샤의 아버지 루이가 알렉산더 공자의 친손자로 따라서 패트리샤는 알렉산더의 증손녀가 된다.[4] 엘리자베스 2세의 경우 영국 육군 여군 부대에 수송 병과 장교로 임관했다. 1945년 임관으로 종전이 임박하면서 실제 복무 기간은 길지 않았지만.[5] 형이자 제6대 브라본 남작 노턴 내치불은 1943년 독일군 포로로 잡혔고 탈출을 시도하다가 슈츠슈타펠에 체포되어 향년 21세의 나이로 처형당했다.[6] 조지 6세엘리자베스 왕비가 참석했고 그들의 장녀인 엘리자베스 공주가 들러리를 맡았다. 왕실과의 가까운 인연을 엿볼 수 있다.[7] 다만 3남 앤서니 내치불은 태어난 당일에 요절했고 5남 니콜라스 내치불은 1979년 15살의 나이에 IRA의 폭탄테러로, 본인의 외할아버지 루이 마운트배튼과 친할머니 도린 내치불과 함께 사망하면서 실질적으로 장성한 자녀들은 4남 2녀다.[8] 캐나다 육군의 보병 연대 중 하나로 1914년에 설립되었으며 당시 캐나다 총독이었던 코넛과 스트래선 공작 아서 왕자의 차녀인 패트리샤 공주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9] 영국의 귀족 작위는 대개 원칙적으로 남계 계승이지만, 국왕의 허가(칙허장)가 있으면 여성이 계승할 수도 있다. 다만 이런 경우에는 작위를 수여받을 때 미리 결정을 해 둬야 하고, 1대에 한해서만 허용된다.(딸→외손자는 가능하지만 딸→외손녀는 불가능) 루이 마운트배튼에게는 자식이 딸 둘밖에 없어, 1947년에 작위를 받을 당시 국왕 조지 6세의 허락 하에 특별히 딸들의 남자 후손이 계승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10] 아버지 존 내치불 쪽으로는 8대 브라본 남작이기도 하다. 현재 외아들 니콜라스가 이 브라본 남작위를 예우경칭으로 쓰고 있다.[11] 이중 막내딸인 레오노라 루이즈 마리 엘리자베스 내치불은 1991년 신장암으로 5세의 나이에 요절하여 실질적으로 장성한 것은 1남 1녀이다.[12] 태어난 당일에 요절했다.[13] 6남 티머시와는 쌍둥이로 1979년 IRA의 폭탄테러로 외할아버지 루이 마운트배튼, 친할머니 도린 내치불과 함께 사망했다.[14] 5남 니콜라스와 쌍둥이다.[15] 혼전 성은 이스트우드(Eastwood).[16] 이 때문에 넷플릭스 더 크라운 시즌 5에서 페니를 그의 내연녀로 묘사할 거라는 추측이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실제로는 시즌 5의 2화 "체제" 편에서 단짝 정도로 묘사되었다.[17] 이 해는 아만다의 외조부인 루이 마운트배튼, 친할머니 도린 내치불, 남동생 니콜라스가 IRA의 폭탄 테러로 살해당한 해이기도 하다.[18] 1977년 바하마에서 그들은 함께 휴가를 보내기도 했다. 그리고 1979년 스코틀랜드 해안의 서부 섬에 있는 배를 탔고 또 다른 여행에서 찰스는 아만다에게 청혼했다.